한국 최초의 우주인 탄생, 천리안 발사 등으로 항공우주과학이 전국의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항공우주과학에 대한 이해를 돕고, 관심을 고취시키고자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발행중인 웹진 카리스쿨의 콘텐츠를 주 1회 제공한다.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하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34명의 합창단원이 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모두 60세 이상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로 이뤄진 울산의 ‘한사랑실버합창단’이 그 주인공입니다. KBS ‘남자의 자격’에서 방송된 이 장면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이 들고 몸이 약해진 노인이지만 다른 누구보다 멋지게 사는 모습에 감동 받았기 때문이에요.
이처럼 나이가 많으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랜 직장생활을 마치고 멋지게 새로운 일을 계획하면서 즐겁게 생활하시는 것처럼 오랫동안 사용된 항공기도 퇴역 후 제 2의 인생을 꿈꾸기도 합니다.
보통 퇴역한 항공기들은 ‘항공기 무덤’이라고 불리는 저장소로 옮겨진답니다. 미국의 에리조나 공군기지나 프랑스의 샤도르 비행기 폐기장 같은 곳이죠. 이런 곳에 옮겨진 비행기는 다른 곳으로 팔려가거나 알루미늄 같은 재활용 재료들을 떼어내고 폐기돼요.
하지만 항공기 중에도 합창단원처럼 새로운 도전에 성공해 감동을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래되고 낡았지만 다른 쓰임새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죠. 대표적인 예가 바로 미군 해군에서 사용했던 ‘S-3B 바이킹’ 항공기입니다.
기상관측 비행기로 재탄생한 ‘S-3B 바이킹’
이 항공기는 35년 동안 미국 해군에서 최선을 다하고 2009년 1월 물러났습니다. ‘S-3B 바이킹’은 미국 해군에서 상대방의 잠수함을 찾아내고, 바다를 감시하는 일을 했던 항공기, 즉 ‘대잠기’입니다. 1974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대잠기, ‘S-3 바이킹’이 조금씩 발전한 형태죠. 특히 ‘S-B 바이킹’은 육지로 물건을 옮기거나 하늘에서 다른 비행기에 기름을 넣어주는 특별한 임무도 담당했답니다. 그런데 구 소련과 미국이 대립하던 냉전 시대가 끝나면서 이 항공기가 할 일이 줄어들었습니다. 미국 해군은 낡은 항공기부터 차례로 퇴장시켰죠.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이들 항공기 중 몇 대를 받아갔습니다. 그리고 항공기 제조사 보잉에 부탁해 새로운 기능을 더하면서 ‘S-3B 바이킹’을 고치기 시작했죠. 덕분에 이 항공기는 기상관측용 레이더와 위성통신용 안테나를 붙인 새로운 항공기가 됐답니다. NASA가 사용하는 전용 기상관측 항공기로 다시 태어난 것이에요.
NASA의 글렌(Glenn)연구센터에 있는 과학자들은 ‘S-3B 바이킹’을 이용해 지구의 기후와 항공기 안전에 대해 연구하고 있답니다. 이 항공기는 최대 12km 높이까지 올라갈 수 있고, 한 시간에 800km를 이동할 수 있어요. 특히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씨에도 비행할 수 있어서 날씨에 따른 항공기 안전을 연구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답니다.
낡은 항공기 이용해 만들어진 교실
영국에서는 비행기를 이용해 교실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2009년 3월에 공개된 이 교실은 영국의 초등학생이 낸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습니다. 영국 정부가 진행하던 창조적 학습프로그램에서 학생들에게 ‘꿈의 교실’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라고 하자, 한 학생이 “낡은 항공기를 이용해 교실을 만들자”는 의견을 냈던 거죠.
이 이야기는 영국 킹스랜드(Kingsland) 초등학교의 교장, 데이비드 로렌스(David Lawrence)에게도 전해졌습니다. 그는 학생의 생각을 꼭 이뤄주고 싶었죠. 그래서 36인승 비행기 ‘쇼트 360(Short 360)’을 사들여 교실로 만들었습니다. 전체 길이가 약 22m 정도 되는 ‘쇼트 360’ 비행기는 책상과 의자가 30개씩 들어가는 컴퓨터실로 고쳐졌답니다.
주로 아일랜드나 스페인, 영국을 잇는 교통수단으로 활약한 쇼트 360 비행기의 가격은 약 3천900만원이었습니다. 이동식 교실을 하나 새로 만드는 것보다 절반 정도 싼 값이었죠. 새로운 아이디어 덕분에 ‘쇼트 360 항공기’는 새로운 길을 찾았고, 교장 선생님은 적은 돈으로 좋은 교실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상상만 하던 ‘항공기로 만든 교실’에 환호성을 질렀답니다.
제설차로 변신한 전투기 엔진
낡은 항공기 엔진을 이용해 눈을 치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러시아는 은퇴한 ‘미그15(Mig-15) 제트전투기’의 엔진을 이용해 눈을 치우는 자동차를 만들었답니다. ‘미그 15 전투기’는 한국전쟁 때 처음 등장했고, 베트남 전쟁과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크게 활약한 항공기입니다.
이 항공기는 점점 쓸모가 줄어들어 퇴장해야 했지만 러시아는 ‘미그 15 전투기’의 뛰어난 제트엔진을 그냥 버리지 않았습니다. 제트엔진을 떼어다 눈을 치우는 장비로 만든 거죠. ‘미그 15’의 제트엔진으로 만든 제설장비는 뜨거운 열로 러시아에 쌓인 눈을 녹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41년 간 공군에서 활동하며 하늘을 지킨 ‘F-4D 전투기’ 엔진으로 제설차를 만들었습니다. ‘SE-88’라는 이름의 다목적 제설차는 제트엔진의 불꽃 배출구 부분을 떼어내서 만든 장비입니다. 총 6개의 불꽃 배출구가 있고 폭이 13.5m에 이를 정도로 크기가 큽니다. 덕분에 ‘마징가’라는 별명도 있답니다.
이 제설차는 제트엔진이 돌아갈 때 나오는 엄청난 바람으로 활주로에 쌓인 눈을 20~30m 밖으로 날려버립니다. 또 400~500도에 이르는 온도로 눈을 순식간에 녹여서 없애버리죠. 이 장비를 이용하면 활주로 전체에 눈이 쌓였다고 해도 한나절 만에 치울 수 있답니다.
이처럼 다양한 항공기들이 오랫동안 했던 일에서 물러난 뒤에도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습니다. 우리도 항공기처럼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한 뒤에 물러나면 새로운 도전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간다면 그동안 쌓인 경험과 지혜가 많을 테니 더 멋진 삶을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난 항공기처럼 말이에요.
- 글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 저작권자 2011-01-3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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