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S-500’에 참여할 러시아 화성탐사 우주인들도 한국 고유의 우주식을 맛보게 될 전망이다.
한국식품연구원(원장 이무하) 산업진흥연구본부 김성수 박사팀은 지난 3월 15일 러시아연방우주청 산하 생의학연구소(IBMP)로부터 한식 우주식품 10종에 대한 미생물시험 결과, 모두 우주식품의 인증기준에 적합 판정 결과를 통보 받았다고 24일 밝혔다.
따라서 이번에 새롭게 개발한 한식 우주식품 10종은 지난 2008년에 이어 또 한 번 국제 우주인들의 식탁에 오를 수 있게 됐다.
식품연은 이미 지난 2008년 4월 IBMP로 부터 한식 6종을 우주식품으로 인증 받아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박사의 식단에 제공한 바 있다. 그 여세를 몰아 식품연은 러시아가 추진하고 있는 화성 유인 우주비행 모의실험 ‘Mars-500’ 프로젝트에서도 한국 고유의 우주식을 제공에 나섰으며, 지난 24일 까다로운 러시아 우주당국으로부터 합격 판정을 받은 것.
식품연 관계자는 “이번에 개발된 우주식은 근 일 년에 가까운 장기 우주비행 스케줄에 맞춰 고온고압 멸균처리 5% 수분 함량, 2중 진공포장 등의 규정을 더욱 강화한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우주식 개발이 까다로운 이유는 전 과정이 지구와 판이하게 다른 우주환경에 맞춰서 생산되기때문이다.
무중력에선 소금이 독(毒)으로 변해
1961년 우주공간에서 러시아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은 “지구는 푸른빛이다”고 말했다. 지구가 푸른 이유는 따뜻한 햇볕, 풍부한 공기 그리고 물, 적당한 온도와 습도 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구 대기권을 조금만 벗어나도 우주환경은 완전히 바뀐다. 지난 1995년 장장 438일간의 미르우주정거장 생활을 마치고, 지구로 귀환한 러시아 우주비행사 ‘발레리 폴랴코프’는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았지만 병자와 같이 초췌해진 그의 모습은 우주가 어떤 곳인지 잘 보여줬다.
지구와 우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중력 상황. 무중력에선 제대로 자리 잡고 앉아서 하는 식사는 상상조차 힘들다. 접시에 담긴 음식이 둥둥 떠다니다가, 공기정화기라도 막으면 큰 불상사가 벌어진다.
연구시설 등으로 좁아진 내부는 그 흔한 냉장고조차 갖추기 힘들다. 더욱 당혹스런 것은 우주에선 버너로 가열해도 온도가 섭씨 80℃ 이상 올라가지 않아 밥이 설익게 된다는 사실. 음식의 필수성분인 철분과 소금 성분도 이곳에선 달라진다.
소금은 몸속에 들어가서 녹으면 나트륨 이온과 염소 이온으로 분리돼 소변으로 배출되지만 무중력에선 지구와 달리 체내에 축적될 수 있으며, “염소이온이 쌓이면 강력한 독으로 변할 수 있어 위험하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또 무중력 상황에서 장기 체류하면 뼛속에서 칼슘이 지속적으로 빠져나가 남자들에게도 골다공증이 올 수 있다. “우주에서 1년 정도 체류하면 약 20%의 근육 단백질이 감소하고, 뼛속의 칼슘이 한 달 평균 1% 줄어든다”고 우주 과학자들은 보고하고 있다.
절대적인 운동 부족, 빛과 어둠만이 존재하는 단조로운 환경 등도 우주인의 입맛을 앗아가는 요인. 그래도 장시간 우주생활의 유일한 낙은 바로 음식이다. 우주식의 개발 과정은 까다로운 규정을 지키면서도 맛까지 생각해야 하는 어려움을 갖고 있다.
식품연 김성수 박사(식품자원이용연구본부장)는 “러시아연방우주청 산하 생의학연구소(IBMP)는 우주식품 선정을 위해 영양과 저장, 포장 등에 엄격한 기준을 정하고 있다”며 “이 기준을 반드시 통과해야 우주식으로 선정되는데 한 품목당 거의 1억 원의 비용이 들 정도로 까다롭다”고 밝혔다.
우주식은 역시 ‘톡’ 쏘는 맛이 최고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도 해마다 품평회를 열 정도로 우주식 개발은 중요한 분야다. 우주식 개발은 맛 이전에 반드시 지켜야 할 규정이 있다.
우선 우주식은 무중력의 우주선 안에서 먹기 쉽게 만들고, 엄청난 발사 비용 때문에 부피와 무게를 줄이기 위해 반드시 진공 밀폐 식으로 포장돼야 한다. 장기 체류로 인한 변질과 부패 방지는 물론 골다공증 예방을 위한 칼슘 성분 증가, 운동부족에서 오는 변비를 막기 위해 섬유소 성분의 증가, 염분 감소 등의 규칙을 철저히 따른다.
아울러 입맛을 잃기 쉬운 우주생활을 위해 혀를 자극하는 맛의 개발도 필수 요인. 과거 미국이나 러시아의 우주인들은 톡 쏘는 맛을 내는 향신료가 들어간 우주식을 즐겨 먹고, 일본 우주인들 역시 매운 맛 카레를 즐겨먹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착안한 우리나라 연구진은 지난 2008년 이소연 박사가 갖고 올라간 우주식 6종을 볶은 김치, 고추장, 된장국 등의 전통음식으로 만들어 미각을 살려 큰 성공을 거둔 바 있다.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박사는 지난 2008년 4월 12일 ‘유리 가가린의 날’에 ISS에 같이 있는 외국 우주인들을 초대, 이 고유의 6종 우주식을 대접했고, 큰 인기를 끌었다는 후일담. 이번에 새롭게 개발된 우주식은 외국인의 구미를 더 당기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주 프로젝트에서 식사는 큰 비중
‘MARS-500’은 러시아가 오는 2030년 화성 유인 탐사를 목표로 준비 중인 화성 탐사 모의실험. 이 프로젝트는 지상에 화성 탐사 우주선과 화성 표면을 모사한 밀폐 시설을 짓고, 6명의 우주인이 520일간 격리돼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여기에는 러시아와 EU, 아시아 및 아프리카 등 다국적으로 선발될 예정인 우주인 6명이 참여하는데 5개의 모듈로 이뤄진 밀폐시설에서 총 520일간 임무를 수행할 예정으로 식사 문제는 이번에도 만만치 않은 사안.
그러나 우리가 만든 우주식이 이번에도 해결사로 나섰다. 이 우주식은 화성탐사 270일 후 귀환 비행할 때, 120일 동안 메뉴에 반영돼 우주인들에게 제공된다. 이미 예비 선발된 러시아와 유럽우주인 11명에게 취식시험 및 관능평가를 실시한 결과, 10종 모두 기호도에서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식품연 개발자들은 “볶음김치의 경우, 생김치의 발효취와 맵고 자극적인 느낌을 줄이고, 약간 달짝지근하고 고소한 맛으로 김치 고유의 맛을 부드럽게 변화시켜 누구나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제조했다”고 밝혔다.
나머지 식품들도 한국인 특유의 매운맛과 짠맛을 감소시키고, 단맛을 증가시킨 부드러운 향미로 외국인도 쉽게 먹을 수 있도록 제조했다는 것이 식품연의 설명.
러시아 전문가들은 “아직 고추장과 볶음김치의 매운 맛에 적응이 되지 않은 우주인들이 있지만 이런 자극적인 맛은 장기간의 우주여행을 하는 우주인들의 입맛을 돋우는 좋은 식품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평가했다.
식품연에 따르면 전 세계 각국에서 현재까지 개발된 우주식품의 종류는 총 400종. 화성탐사에서 새롭게 채택된 우리 고유의 우주식품을 더하면 무려 420여종에 이른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우리 옛말은 우주에서도 그대로 통용되는 말인 것이다.
- 조행만 기자
- chohang2@empal.com
- 저작권자 2010-03-2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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