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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우주연구원 우주시험그룹의 최석원 박사는 최후의 순간까지 업무에 몰두하다 발사 1분 전에 계단을 뛰어올랐다. 발사장 내에 있는 조립동에서 위성이 올라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다.
영화에서는 커다란 화면에 로켓이 보이고 “텐, 나인, 에잇, …”하는 카운트다운과 함께 발사가 시작된다. 그러나 발사장 현지에는 카운트다운이 없었다. 러시아의 발사 엔지니어들은 카운트다운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부분의 한국 연구진과 참관단은 조립동 건물 4층에서 유리창을 통해 발사를 관람할 수 있었다. 4㎞ 이상 떨어진 로켓 발사대는 아예 보이지 않았다. 수풀 저 너머를 통해 뭔가 올라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릴 뿐이다. 오후 4시가 넘자 연구진들의 무전기가 바빠졌다. 이제 곧 발사가 시작될 것이라는 말에 모두 긴장하며 발사대 쪽을 향했다.
오후 4시 5분이 되자 발사대 쪽에서 연기가 솟아오르더니 붉은 구름이 발생했다. 이어서 `꽝'하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가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듯싶더니 로켓이 보였다. 로켓을 본 시간은 불과 6~7초. 잠시 한눈을 판다면 놓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잘 올라간 거지?”, “성공한 것 맞지?” 서로들 얼굴을 맞대는 가운데 무전기에서 발사에 성공했다는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그제야 모두 '와~'하는 함성을 질렀다.
연구원 중 한 명이 캠코더를 들고 발사 장면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조립동 2층에 있는 사무실에서 프로젝트 화면을 놓고 동영상을 돌렸다. 보고 또 봐도 감격스러운 장면, 그때만은 국경의 구분 없이 모든 사람들이 어우러져 성공을 기뻐했다.
위성 발사가 이루어지는 동안 직접 위성을 컨트롤하는 곳은 발사관제실이다. 플레세츠크 발사장의 발사관제실은 2층 규모로 겉보기에 허름한 작은 건물이었다. 관제실의 벽에는 두 개의 큰 프로젝터 화면이 걸려 있다. 왼쪽은 발사대에 놓인 로켓의 영상이다. 바로 현장에 있는 카메라에 의해 실시간으로 날아오는 현장 사진이다. 이 영상을 통해 로켓이 올라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른쪽은 발사된 로켓의 위치를 데이터로 표시해주는 화면이다. 화면에는 위성이 발사된 후 지나갈 예상궤적이 미리 그래프로 그려져 있다. 발사가 시작되면 위성이 올라가는 위치를 따라 새로운 그래프가 그려진다. 예상궤적과 진짜 위성의 좌표가 거의 일치하는 모습을 보이면 발사에 성공한 것이며 이들의 거리가 많이 떨어지면 실패한 것이다. 아리랑 2호는 거의 대부분이 이론치와 큰 오차가 없었다.
위성 발사는 보통 5분 내외의 오차가 생긴다. 아리랑 2호는 7월 28일 오후 4시 5분 43초에 발사되기로 프로그래밍돼 있었다. 실제 발사 시간은 딱 2초가 앞당겨진 오후 4시 5분 41초였다. 발사 후 48분 만에 위성체 분리가 이루어졌고, 분리 후 9분 20초 만에 태양전지판이 펼쳐졌다. 오후 5시 35분 26초에 아프리카 말린디 지상국과 교신이 이루어졌다.
로켓 발사를 본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모두들 짐을 싸들고 발사장을 빠져나와야 했다. 로켓은 발사했지만 위성이 성공적으로 궤도에 다다랐는지도 궁금한 순간이었다. 발사장을 나오는 차 안에서 아리랑 2호의 첫 교신이 무사히 이루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유로콧의 시스템 엔지니어인 슈마커 잉고는 재빨리 무전기로 자신의 부서에 이를 통보하며 한국 연구진들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플레세츠크 마을의 한 레스토랑에서 발사를 성공하는 커다란 리셉션이 열렸다. 과학기술부 임상규 본부장과 흐루니체프사 사장, 유로콧 얀 사장과 담당 연구진, 참관단 등 100여 명이 모두 모였다. 모두들 들뜬 분위기에서 보드카 잔이 오가며 분위기는 더욱 뜨겁게 타올랐다. 이들 중에서 누구보다도 감격을 느낀 사람들은 직접 위성을 운반하고, 조립하고, 컴퓨터를 운영한 우주시험그룹 연구진들이었다. 최석원 박사를 필두로 한 연구진들은 6월 20일 러시아에 도착한 뒤 한 달 동안 플레세츠크 마을과 조립동을 오가며 위성 발사에 만전을 기했다.
위성 발사는 수많은 연구진이 함께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하는 대규모 과학 프로젝트다. 발사 순간에 성공이냐, 실패냐가 결정되는 ‘all or nothing’ 게임이다. 수많은 제작진들이 수십 번, 수백 번 연습을 한 뒤 막을 올리는 공연처럼 위성 발사 또한 수많은 준비 끝에 막이 올라가는 종합예술이다. 위성 발사라는 공연의 한 부분을 담당한 연구진들은 다같이 얼싸안고 발사를 축하했다.
- 이은정 경향신문 과학전문기자
- 저작권자 2006-08-2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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