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까지 활동했던 과학자 코페르니쿠스에게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는 허점투성이로 보였다.
코페르니쿠스는 천동설에 반대해 자신의 지동설을 주장하는 책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1543년 출간했다. 이 책의 핵심은 지구는 스스로 돌면서 태양 주위를 1년에 한 번 도는 한 행성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코페르니쿠스는 특히 대기권 안의 모든 것이 지구와 함께 돈다고 주장했지만 그 당시 세상으로부터 이단으로 매도됐다. 하지만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케플러, 갈릴레오, 뉴턴 등과 같은 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수정되고 보완돼 오늘날 불변의 진리로 받아들여진다.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이 이론적으로 검증되면서 천문학은 일대 전환기를 맞았다. 그 영향은 천문학을 기점으로 인문학과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 확산되면서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인간은 여러 행성들 가운데서도 비교적 작은 별에 거꾸로 매달려 돌아가는 미미한 존재임이 드러난 것이다.
철학적으로는 우주 안에서의 인간의 위치를 다시 생각해야 했으며, 세상의 중심이라는 부질없는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 코페르니쿠스는 중세붕괴의 첫 신호를 울린 사람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지난해는 1호에게는 다사다난한 한해였다.
국보 1호인 남대문의 경우 훈민정음이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한다는 여론에 시달렸는가 하면 우리나의 최초의 상업용 무궁화 위성 1호는 수명을 다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광복 50주년 기념 국책사업의 일환으로 1995년 8월 5일에 발사된 무궁화 1호 위성은 발사할 당시 보조로켓 중 하나가 분리되지 않아 4년3개월로 사용기간이 단축되는 우여곡절 끝에 우주의 쓰레기로 변했다.
1999년 상용서비스를 종료했지만 이후 프랑스 유럽스타에 임대돼 경사궤도에서 연장 운용되다가 총 10년 4개월간의 역할을 마치고 우주공간으로 사라진 것이다.
무궁화 1호 위성이 제 수명을 다하지는 못했지만 우리나라를 세계 22번째 위성보유국으로 발돋움시켰다. 또 이를 통해 다매체, 다채널 멀티미디어 위성서비스와 위성방송을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한편 항공 우주 산업의 불모지였던 국내 시장에서 관련 기술 개발과 사업이 시작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무궁화 1호 위성의 퇴역뿐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최근 1호 최고 과학자인 황우석 박사의 몰락을 지켜봐야만 했다.
황 박사의 연구가 희대의 사기극일 가능성이 크다는 언론의 보도가 이어질 때 국민들의 절대다수는 황 박사의 업적을 시기하는 이들의 투정이라고 받아들였다.
아니길 바랐지만 결국 황 박사의 연구결과는 희대의 사기극으로 결론이 났다. 황 박사의 논문 조작의혹이 사실로 확인된 만큼 `1호 최고과학자' 지위도 박탈될 것이 확실시된다.
지난해 6월말 처음으로 열린 최고과학자선정위원회 회의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선정된 바로 ‘1호 최고과학자’의 몰락이다.
황 박사가 2004, 2005년 사이언스 논문조작 사실이 서울대 조사위원회 발표로 드러난 만큼 1호 최고과학자 지위 박탈이 확정적이라는 것이 정부와 과학계 안팎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에 따라 황 박사는 연간 30억원에 이르는 연구비 등 그간 부여된 각종 혜택과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됐으며, 미집행분에 대한 연구비도 연구협약 해지 등의 절차를 통해 회수절차를 밟게 된다. 황 박사는 또 최고과학자 지위와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민간위원 자격도 자동 상실하게 된다.
황 박사의 몰락은 비단 황 박사 자신뿐만 아니라 해당부처의 장관이 교체되고 대통령 보좌관이 사직서를 제출하는 등 엄청난 파장을 몰고 있다. 심지어 국정감사까지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사태가 진실이 어느 정도 규명된 만큼 냉정을 되찾고 이번 사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최고 과학자 1호인 황 박사의 몰락으로 우리국민은 허탈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희생자가 돼버렸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황 박사의 파문을 통해 우리 과학계가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앞으로 누가 감히 연구논문을 조작하고 국민을 우롱할 수 있겠는가?
또 황 박사가 인간배아줄기세포 복제와 관련해서는 희대의 사기극을 벌인 것으로 결론났지만 복제 개 스너피는 아직 우리 과학계의 자랑이다.
물론 황 박사와 코페르니쿠스를 비교하는 것 자체는 어불성설이라는 반발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1호의 몰락에 대해 단지 속았다고 원통해하는 것보다 1호 최고과학자의 몰락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더 큰 진보, 더 큰 발전을 이뤄내자는 의지를 공유했으면 한다.
- 박지환 기자 daebak@heraldm.com
- 저작권자 2006-01-1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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