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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 트라우마를 약으로 막는다? 스트레스 스위치를 끄는 차세대 신경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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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의 트라우마가 위험한 이유

너무 가슴 아픈 말이지만, 어릴 적 겪은 학대나 결손 등 유년기의 비극, 트라우마(Trauma)는 성인이 된 후에도 평생 심리적·사회적 상처로 남는다. 슬픈 일을 겪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이러한 트라우마는 그냥 슬픈 기억이 아니라, 인생 자체를 바꿔버릴 정도의 충격을 안겨준다. 그리고 지금까지 의학계는 이미 발생한 트라우마를 상담이나 약물로 '관리'하고 '치유'하는 데 집중해 왔다.

어릴 적 겪은 학대나 결손 등 유년기의 비극, 트라우마(Trauma)는 성인이 된 후에도 평생 심리적·사회적 상처로 남는다. ©Getty Images
어릴 적 겪은 학대나 결손 등 유년기의 비극, 트라우마(Trauma)는 성인이 된 후에도 평생 심리적·사회적 상처로 남는다. ©Getty Images

최근 독일 뮌헨 막스 플랑크 정신의학 연구소와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 공동 연구진은 유년기 트라우마가 뇌에 각인되는 과정 자체에 대한 실험을 시작했다. 연구진은 생후 초기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생쥐들을 관찰했는데, 겉보기에는 건강하게 자란 것처럼 보였지만, 성인이 된 후 이들은 집단 내 사회적 계급 싸움에서 일관되게 최하위로 밀려났다는 것을 발견했다. 유년기의 결핍이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생애 전반의 사회적 적응력을 떨어뜨리는 '숨은 각인'을 남긴 것이다.

 

고장 난 스트레스 끄기 스위치: FKBP51 단백질의 비밀

널리 알려진 대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체내에는 '코르티솔(Cortisol)'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출된다. 문제는 위기가 지나간 후 호르몬 분비를 멈추게 하는 '꺼짐 스위치(수용체)'의 작동 여부이다. 유년기 재난을 겪으면 체내에 'FKBP51'이라는 단백질이 과도하게 생성된다. 이 단백질은 꺼짐 스위치의 감도를 떨어뜨려, 위험이 사라진 후에도 뇌가 스트레스 호르몬을 계속해서 내뿜게 만든다.

스스로는 스트레스에 잘 견딘다고 착각할 수 있지만, 몸속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계속 뿜어져 나와 뇌를 손상시키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판단된다. ©Getty Images
스스로는 스트레스에 잘 견딘다고 착각할 수 있지만, 몸속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계속 뿜어져 나와 뇌를 손상시키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판단된다. ©Getty Images

뮌헨 연구소의 마티아스 슈미트(Mathias Schmidt) 교수는 "코르티솔 반응은 본인이 스스로 느낄 수 없다"며 "스스로는 스트레스에 잘 견딘다고 착각할 수 있지만, 몸속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계속 뿜어져 나와 뇌를 손상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것이 유년기 상처가 더 위험한 이유이다. 

 

'SAFit2' 약물이 보여준 트라우마 차단 효과

단비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독일 뮌헨 막스 플랑크 정신의학 연구소와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 공동 연구진은 유년기 트라우마가 뇌에 각인되는 과정 자체를 ‘약물로 사전 차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FKBP51 단백질의 작동을 막는 'SAFit2'라는 화합물을 개발해, 스트레스 환경에 노출된 어미 쥐에게 투여했다. 약물은 모유를 통해 새끼 쥐들에게 전달되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약물을 복용한 새끼 쥐들은 유년기 결핍을 겪었음에도 성인이 된 후 정상적인 사회적 지위를 유지함이 발견되었다. 뇌의 유전자 활성화 분석 결과, 약물이 감정 조절을 담당하는 '전두엽 피질'과 보상 체계인 '측좌핵'의 이상 변화를 완벽하게 막아낸 것으로 확인된 셈이다.

다만 이 연구의 핵심 한계는 약물이 '트라우마가 일어나는 도중에' 투여되어야만 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이미 발생한 트라우마를 나중에 되돌리는 '치료제'가 아니라, 손상이 각인되는 것을 막는 '예방제'인 셈이다.

 

기존 항우울제의 한계와 미래 의학의 방향

현재 트라우마 후 스트레스 장애(PTSD)나 관련 우울증 치료에는 주로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가 쓰인다. 그러나 이는 증상을 완화할 뿐 근본 원인을 치료하지 못하며, 환자 중 상당수에게는 아예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반면 FKBP51을 표적으로 삼는 방식은 스트레스 반응의 근본 원인을 직접 제어한다는 점에서 차세대의 치료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간과 동물의 스트레스 메커니즘이 매우 유사한 만큼 임상 적용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Getty Images
인간과 동물의 스트레스 메커니즘이 매우 유사한 만큼 임상 적용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Getty Images

물론 전문가들은 상용화까지 최소 1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전망하지만, 인간과 동물의 스트레스 메커니즘이 매우 유사한 만큼 임상 적용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미래에는 유전적으로 스트레스에 약하거나 FKBP51 수치가 높은 고위험군을 미리 판별하고, 대형 재난이나 사건 직후 신속하게 약물을 투여해 트라우마의 각인을 막는 정밀 의학 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김민재 리포터
minjae.gaspar.kim@gmail.com
저작권자 2026-09-0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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