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젬픽은 얼마나 더 많은 병을 고칠 수 있을까?
오젬픽(Ozempic), 위고비(Wegovy), 마운자로(Mounjaro), 젭바운드(Zepbound). 이 약들은 모두 GLP-1 작용제(GLP-1 agonist) 계열에 속하며 세마글루타이드 또는 티르제파타이드를 주성분으로 한다. 이들은 처음에는 2형 당뇨 치료제로 시작했다. 그다음은 비만 치료 주사로 주목받았다. 그리고 지금, 이 약들이 치료할 수 있는 질환의 목록은 계속 길어지고 있다.
현재까지 과학적 근거가 쌓인 GLP-1 작용제의 효능만 나열해도 적지 않다. 심혈관 질환 위험 감소, 신장 및 간 보호, 염증과 통증 완화, 수면무호흡증 완화, 관절염 개선, 그리고 최근에는 약물 중독과 물질 남용 억제까지 더해졌다. 매 두세 달마다 새로운 적응증이 보고될 정도이다.
이는 하나의 약이 원래 개발된 목적을 넘어 여러 다른 질환에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의학계에서 '약물 재창출(drug repurposing)'이라고 부르는 현상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GLP-1은 왜 이렇게 많은 것에 효과가 있는가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은 원래 음식을 섭취한 뒤 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혈당을 낮추며 포만감을 지속시키는 역할을 한다. GLP-1 작용제는 이 호르몬의 작용을 모방하거나 연장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이 약들이 광범위한 효과를 내는 데는 인체의 연결성이 핵심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체중이 줄면 대사 전반이 개선된다. 혈당이 안정되면 신장과 간에 가해지는 부담이 줄어든다. 염증 반응이 완화되면 관절염을 비롯한 여러 만성 질환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즉, 각각의 효과가 독립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연쇄적으로 서로를 강화한다.
수면무호흡증이 좋은 예이다. 2024년 발표된 임상 연구에서 티르제파타이드(마운자로·젭바운드)를 투여받은 비만 환자들에서 수면무호흡 증상이 크게 개선됐다. 이를 근거로 미국 FDA는 비만을 동반한 수면무호흡증 치료제로 젭바운드를 승인했다. 관절염도 마찬가지이다. 2026년 초 발표된 연구에서 세마글루타이드 또는 티르제파타이드를 3년 이상 복용한 무릎 골관절염 환자들은 그렇지 않은 환자에 비해 무릎 인공관절 수술이 필요한 경우가 약 5%포인트 낮았다. 연구진은 이를 바탕으로 해당 기준에 해당하는 환자 전체가 복용하면 미국에서만 연간 최대 1만 4,400건의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줄일 수 있다고 추산했다. 2025년 1월에는 세마글루타이드(오젬픽)가 2형 당뇨와 만성 신장 질환을 동시에 가진 환자에서 신장 질환 악화 위험을 24% 낮춘다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FDA 승인을 받았다.
중독 억제 효과는 특히 흥미롭다. GLP-1 수용체가 뇌의 보상 회로에도 분포해 있어, 알코올이나 약물, 니코틴에 대한 갈망을 줄이는 효과가 관찰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체중이 줄어서 생기는 이차적 효과가 아닌, 중추신경계에 직접 작용하는 기전으로 보인다.
약물 재창출은 어떻게 생명을 구하는가
GLP-1 작용제의 확장은 의학사에서 반복돼 온 패턴이다. 한 가지 병을 치료하려 개발된 약이 다른 병에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발견되는 것이다. 이 과정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것이 코로나19 팬데믹이었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 새로운 치료제를 개발할 시간은 없었다. 과학자들은 이미 존재하는 약 중 염증을 억제하는 것들로 눈을 돌렸다. 덱사메타손은 원래 관절염, 천식, 다발성 경화증, 혈액 질환 등 다양한 염증성 질환에 쓰이던 스테로이드 약물이다. 코로나19 환자에게 써보자 효과가 있었다. 2021년 영국 NHS는 덱사메타손이 영국에서 2만 2,000명의 목숨을 구했으며 전 세계적으로는 약 100만 명의 사망을 막은 것으로 추산했다.
바리시티닙도 마찬가지였다. 류마티스 관절염과 중증 아토피 피부염, 원형 탈모 치료에 쓰이던 이 약은 코로나19 중증 환자에서 나타나는 '사이토카인 폭풍'을 억제하는 데 효과를 보였다. 사이토카인 폭풍은 면역 시스템이 과활성화되면서 오히려 심각한 전신 염증을 일으키는 현상으로, 코로나19 사망의 주요 기전 중 하나였다.
역사 속 약물 재창출의 사례들
이런 사례는 코로나19가 처음이 아니다.
랄록시펜은 원래 골다공증 치료제로 개발됐다. 25개국에 걸쳐 진행된 대규모 연구에서 골다공증이 있는 폐경 후 여성에게 랄록시펜을 3년간 투여했더니 침습성 유방암 발생 위험이 7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FDA는 이를 근거로 유방암 고위험군에 대한 예방 약물로 랄록시펜을 승인했다.
탈리도마이드는 1950년대 임산부의 입덧 치료제로 쓰이다 심각한 태아 기형을 유발하는 것이 밝혀져 퇴출된 약이다. 그러나 약 60년 뒤 FDA는 이 약을 다발성 골수종이라는 불치의 혈액암 치료에 덱사메타손과 병용하는 방식으로 재승인했다. 즉, 약은 같지만 목적이 달라지면 평가도 달라진다.
100년 된 결핵 백신인 BCG(바실루스 칼메트-게랭)는 1형 당뇨 환자에서 혈당을 조절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발견됐다.
그리고 아마 가장 유명한 사례는 비아그라일 것이다.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됐다가 임상 시험에서 예상치 못한 효과가 발견된 이 약은 발기부전 치료제로 방향을 바꿔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약 중 하나가 됐다.
과거에서 온 경고
새로운 쓰임새가 발견될 때마다 기대는 커진다. 하지만, 비아그라의 역사는 GLP-1 작용제를 둘러싼 현재의 분위기를 돌아보게 한다. 1998년 영국 의학 저널에 실린 한 논평은 비아그라를 두고 "마케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미디어가 알아서 홍보해 주는 약"이라고 썼으며, 한 때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지만, 과대 홍보 뒤에는 부작용에 대한 뒤늦은 발견도 이어졌다. 또한, 최근 연구에서는 비아그라가 일부 환자에서 비정상적인 심장 박동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GLP-1 작용제도 지금 비슷한 국면에 있다. 체중을 빠르게 줄이는 과정에서 근육량 감소(전체 감량의 15~25%)가 동반될 수 있고, 비타민 B12, 비타민 D, 마그네슘 결핍도 보고되고 있다. 다만, 이 약들이 수년, 수십 년의 시간을 두고 어떤 장기적인 영향을 남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 김민재 리포터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6-06-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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