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을 밝게 빛낸 누리호 4차 발사 하이라이트 다시 보기 (우주항공청 제공)
첫 야간 발사의 성공, 새벽 하늘을 수놓은 불꽃
2025년 11월 27일 새벽 1시 13분,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의 밤하늘이 환하게 밝아졌다.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굉음과 함께 지축을 울리며 우주를 향해 솟구쳐 올랐다. 이번 4차 발사는 대한민국 우주개발 역사에서 민간 주도 우주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역사적인 순간으로 기록되었다.
누리호 4차 발사는 국내 우주발사체 역사상 처음으로 야간에 진행되었다. 발사 시각이 새벽으로 결정된 것은 주탑재 위성인 차세대중형위성 3호의 과학 임무 때문이었다. 이 위성에 탑재된 오로라 관측 장비가 태양 반대편인 자정 무렵의 오로라 활동을 포착해야 하므로, 목표 궤도 진입 시점을 맞추기 위해 새벽 발사가 불가피했다.
당초 발사는 0시 55분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발사 10여 분을 앞둔 시점에서 엄빌리컬(발사체와 발사대를 연결하는 장치) 회수 압력 센서에서 이상 신호가 감지되었다. 발사관제팀은 즉시 자동운용을 중단하고 점검에 들어갔다. 다행히 압력 상태 자체는 정상으로 확인되어, 18분 지연된 1시 13분에 발사가 재개되었다.
점화와 함께 300톤의 강력한 추력을 내뿜으며 이륙한 누리호는 발사장 주변을 대낮처럼 환하게 밝혔다. 혜성처럼 밤하늘을 가르며 상승하는 누리호의 모습은 현장을 지켜본 연구진과 국민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18분 25초의 "완벽한 비행", 예상보다 빠른 임무 완수
누리호는 발사 후 모든 비행 시퀀스를 정상적으로 수행했다. 이륙 후 122.3초(약 2분 2초)가 지난 시점, 고도 약 65.7km에서 1단 로켓이 분리되고 2단 엔진이 점화되었다. 230.2초(약 3분 50초) 후에는 고도 약 211.1km에서 위성을 보호하는 페어링(덮개)이 분리되었고, 263.1초(약 4분 23초) 후 고도 약 263km에서 2단이 분리되며 3단 엔진이 점화되었다.
[단독공개] 누리호, 최초 야간 발사 체감 영상 (우주항공청 제공)
발사 741.2초(약 12분 21초)가 지난 시점에 누리호는 목표 궤도인 고도 600.5km에 도달했다. 이는 발사 성공 기준인 600km±35km 범위를 충족하는 수치였다. 이후 790.9초(약 13분 11초)부터 주탑재 위성인 차세대중형위성 3호와 12기의 큐브위성을 약 20초 간격으로 차례로 분리했다. 발사 18분 25초 만에 모든 비행 추적이 종료되며 누리호 4차 발사는 완벽하게 마무리되었다. 이보다 더 완벽한 성공이 있을까?
주목할 점은 총 비행 시간이 당초 예상했던 21분 24초보다 약 3분이나 단축되었다는 점이다. 박종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고도화사업단장은 "엔진 성능이 추정치보다 높게 나와 예상보다 빠르게 발사가 종료됐다"고 설명했다. 이는 누리호의 엔진 기술이 지속적으로 고도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위성 13기 궤도 안착, 우주과학 연구의 새 장을 열다
이번 4차 발사에서 누리호는 총 13기의 위성을 우주로 운반했다. 이는 2023년 5월 3차 발사 때 탑재했던 8기(차세대소형위성 2호 1기 + 큐브위성 7기)보다 약 1.6배 늘어난 규모다. 탑재 위성들은 각각 고유한 과학 임무를 수행하며 대한민국의 우주과학 연구 역량을 한 단계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주탑재 위성인 차세대중형위성 3호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총괄 개발한 516kg급 위성이다. 이 위성에는 세 가지 핵심 탑재체가 실려 있다. 첫째로 한국천문연구원이 개발한 오로라·대기광 관측기 'ROKITS'는 700km 폭의 관측 영역에서 오로라의 발생 범위와 변화를 고해상도로 촬영한다. 태양에서 방출된 고에너지 입자가 지구 대기와 충돌하며 발생하는 오로라를 관측함으로써 우주환경 예측에 필수적인 자료를 제공할 예정이다. 두번째로 KAIST 인공위성연구소가 개발한 'IAMMAP'은 고도 100~1000km 사이의 전리권에서 플라스마 특성과 자기장 변화를 정밀 측정한다. 이 장비는 위성통신 및 GPS 교란을 유발하는 전리권 교란 현상을 연구하는 데 활용된다. 마지막으로 한림대학교가 개발한 '바이오캐비넷(BioCabinet)'은 국내 위성 최초로 우주의학 실험을 수행한다. 미세중력 환경에서 3D 바이오프린팅 기반 줄기세포의 3차원 분화배양을 검증하는 이 실험은 향후 우주 신약 개발의 가능성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부탑재 위성인 12기의 큐브위성들도 다양한 임무를 수행한다. 우주로테크의 '코스믹'은 수명이 다한 위성이 스스로 대기권에 재진입하여 소멸하는 우주쓰레기 폐기 기술을 검증한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에트리샛'은 6G 이동통신 기술을 검증하고, KAIST의 'K-HERO'는 150W급 초소형 위성용 홀추력기의 우주 작동을 실증한다.
한편, 차세대중형위성 3호는 발사 42분 만인 오전 1시 55분, 남극 세종기지 지상국에서 첫 교신에 성공하여 태양전지판 전개 등 위성 상태가 정상임을 확인했다. 큐브위성들도 순차적으로 지상국과 교신하며 상태 점검을 진행했다.
우주항공청 출범 후 첫 발사, 민간 주도 뉴스페이스 시대 개막
이번 4차 발사는 2024년 5월 27일 출범한 우주항공청(KASA, Korea AeroSpace Administration) 설립 이후 첫 누리호 발사라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우주항공청은 우주항공 기술 확보, 우주항공 산업 진흥, 우주 위험 대비 등의 사무를 총괄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중앙행정기관으로, 경상남도 사천에 본청을 두고 있다. 우주항공청 출범과 함께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 소관부처: 우주항공청)과 한국천문연구원이 산하 기관으로 편입되어, 대한민국 우주개발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윤영빈 우주항공청장은 발사 직후 브리핑에서 "지난 누리호 3차 발사 성공에 이어 오늘 4차 발사까지 성공하며, 누리호의 신뢰성을 높임과 동시에 우리나라의 자주적인 국가 우주개발 역량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며 "발사체 본연의 역할인 위성 발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관련 기술을 확보했고, 체계종합기업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제작 총괄을 주관하고 발사 운용에 참여하여 역할을 완수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발사는 민간 기업이 처음으로 발사체 제작과 조립을 주도했다는 점에서도 역사적이다. 그동안 1~3차 발사는 항우연이 주관했지만, 4차 발사부터는 체계종합기업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발사체의 제작과 조립을 총괄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22년 10월 체계종합기업으로 선정된 이후 기술 이전을 받아 발사체 제작 역량을 축적해왔으며, 이번 발사에서는 우주항공청·항우연과 함께 민관이 공동으로 발사를 준비했다. HD현대중공업은 발사시스템을 총괄했고, KAI는 1단 추진체 제작과 발사체 총조립을 수행했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4차 발사 성공은 대한민국이 독자적인 우주 수송 능력을 갖췄음을 다시 한번 입증한 것일 뿐만 아니라, 정부와 민간, 국가 연구소가 하나의 팀이 되어 수행한 최초의 민관 공동 발사"라며 "우리나라 우주산업 생태계가 정부 중심에서 민간 중심으로 바뀌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미국의 스페이스X처럼 민간 기업이 우주 발사를 주도하는 '뉴스페이스' 시대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우주항공청이 정책과 전략을 총괄하고, 항우연이 기술을 지원하며, 민간 기업이 제작과 운용을 담당하는 새로운 우주개발 거버넌스가 이번 발사를 통해 첫 결실을 맺은 것이다. 2010년 개발 사업 착수 이래 15년 8개월 만에 이룬 쾌거이다.
향후 전망: 5차·6차 발사와 상업 발사 서비스의 미래
2021년 1차 발사에서 '절반의 성공'이라는 아쉬움을 남겼던 누리호는 2022년 2차 발사 성공을 시작으로 3차, 그리고 이번 4차까지 연속 성공을 거두며 발사체의 신뢰성을 입증했다. 이제 대한민국은 '한 번의 성공'이 아닌 '반복 가능한 발사'를 논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다. 2025년 11월 26일 새벽, 남도의 밤하늘을 수놓은 누리호의 불꽃은 대한민국 우주산업의 새로운 장을 여는 신호탄이자, 민간 주도 우주시대를 향한 위대한 첫걸음이었다.
물론 누리호의 여정은 계속된다. 2026년 6월에는 5차, 2027년 9월에는 6차 발사가 예정되어 있다. 5차 발사에서는 차세대소형위성 3호와 초소형군집위성 7~11호, 소자·부품 검증위성 3호 등이 탑재될 예정이다. 목표 궤도는 4차와 마찬가지로 500km 태양동기궤도다.
앞으로 민간의 역할은 더욱 확대된다. 박종찬 단장은 "4차까지는 발사 운용에서 항우연이 더 많은 역할을 했지만, 앞으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참여 영역이 넓어질 것"이라며 "이후 차수부터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발사를 더 주도할 수 있도록 기술 이전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6차 발사 이후에는 본격적인 민간 발사 서비스가 시작된다. 기술검증플랫폼 위성 3기(2027~2029년), 6G 저궤도 통신위성 3기(2029년 이후), 포집위성 2호 등이 누리호로 발사될 예정이다. 누리호가 단순한 기술 실증 단계를 넘어 상업적 발사 서비스의 플랫폼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누리호 개량형(KSLV-IIA) 개발도 추진 중이다. 현재 1.5톤급 위성을 600~800km 궤도에 투입할 수 있는 누리호의 성능을 더욱 향상시켜 국제 상업 발사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계획이다.
- 김민재 리포터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5-11-2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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