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하늘을 날아갈 때 ‘비행운(contrail)’이라는 가늘고 긴 꼬리 모양의 구름이 생기곤 한다. 이러한 비행운이 지구 온난화에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지구에서 방출되는 열을 대기권에 가둘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영국 연구팀의 연구에 따르면, 일부 항공기의 운항 고도를 현재보다 조금만 더 높이거나 낮춰도 비행운이 기후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이 연구 결과는 지난 12일 ‘환경과학기술(Environmental Science & Technology)’ 저널에 게재됐다.

항공기가 8km 이상 고도를 운항할 때, 엔진에서 나온 뜨거운 배기가스와 찬 공기가 만나면서 미세 탄소 입자에 수증기가 달라붙어 비행운이 생성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구름은 보통 몇 분 동안만 지속한다.
비행운의 주성분은 비록 얼음 결정체일 뿐이지만, 완전히 무해한 것은 아니다. 때때로 다른 비행운이나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권운(卷雲, 새털구름)과 함께 섞여서 ‘비행 권운(contrail cirrus)’이라는 커다란 구름을 형성하기도 한다. 이때는 18시간 동안 유지될 수 있다.
인위적으로 생성된 권운은 지구에서 방출되는 열을 가두어 대기를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이런 경우에는 태양으로부터 지구에 도달하는 복사에너지의 양이 다시 우주로 빠져나가는 열량을 초과하여 ‘복사강제력(radiative forcing)’이라는 불균형이 발생한다.
이전 연구에 따르면, 항공기에 의한 복사강제력은 전체 항공 산업의 누적 이산화탄소 배출량만큼 지구 온난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준이다.

운항 고도를 2000피트만 바꿔도 큰 효과 있어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과학자들은 2012~2013년 사이에 일본 영공을 통과한 항공기들의 데이터를 이용해서 컴퓨터 모델을 개발했다. 비행운과 온난화의 연관성을 연구하기 위해서다. 분석 결과에서는 조사 기간 동안 일본 영공에서 발생한 복사강제력의 80%가 단 2%의 항공편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결과는 극히 소수의 항공기가 습한 공기층을 주로 비행하는데, 그곳이 효율적인 운항 경로라서 연료를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당 항공기들의 고도를 2000피트(약 610m) 가량 높이거나 더 낮추면 습한 공기층에서 벗어날 수 있다. 컴퓨터 모델 분석에서는 약 1.7%의 항공편이 운항 고도만 변경해도 복사강제력을 59%까지 줄일 수 있었다.
만약 해당 항공기들이 변경된 운항 고도로 비행하면 10% 미만의 연료를 추가로 사용하게 되어 오히려 더 많은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그런데도, 복사강제력의 감소 효과는 온실가스 증가분보다 훨씬 컸다.

연구를 주도한 마크 스테틀러(Marc Stettler) 박사는 “이 연구를 통해서 아주 적은 항공편의 고도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항공기로 인한 온난화를 크게 줄일 수 있음을 알아냈다”라면서 “간단한 방법이지만, 항공 산업의 전반적인 기후 변화 영향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항공수요가 계속 증가하면서 비행기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량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여기에 비행운의 온난화 효과까지 더해지면 항공 산업이 기후 변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커지고 잇다.
2011년 독일 항공우주연구센터(DLR) 연구팀은 “항공기가 만드는 비행운이 지구 온난화에 끼치는 영향은 항공기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보다 더 크다”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또 다른 연구에선 2050년경이 되면 비행운이 기후 변화에 미치는 영향은 현재의 3배가 될 것으로 추정했다.
이번 연구에서는 터보프롭 항공기가 발생시킨 비행운은 복사강제력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주된 운항 고도가 습한 공기층과 겹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 세계 항공편의 대부분은 제트 항공기가 차지하고 있다. 그중에서 비행운을 많이 발생시키는 일부 항공기의 운항 고도를 제한하려면 더 많은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 심창섭 객원기자
- chsshim@naver.com
- 저작권자 2020-02-1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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