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탐사선을 달에 보내기 위해서는 발사체를 이용하여 탐사선을 지구 저궤도에 투입한다. 그 후 달 전이 기동을 통하여 탐사선을 약 38만km의 거리에 있는 달에 투입하는데, 다양한 요소들로 인하여 선택하는 궤적이 달라진다.
호만 전이 궤도
궤도 역학에서 호만(Hohmann) 전이 궤도는 같은 평면에서 서로 다른 두 원궤도를 이동하는 데 쓰이는 타원궤도이다. 그림에 나타난 바와 같이 1번의 궤도에 놓인 탐사선을 3번 궤도로 전이하기 위해서는 2번에 해당하는 호만 전이 궤도가 필요하다. 호만 전이 궤도는 1번 궤도에서 3번 궤도로 가기 위해 필요한 연료 소모를 최소화할 수 있어 대부분의 탐사선이 궤도 기동을 할 때 이 궤도를 이용한다.
달 탐사 관점에서 보면 지구 저궤도에 위치한 탐사선이 1번에 해당하며, 지구 주위를 도는 달은 3번에 해당한다. 따라서 탐사선을 지구 저궤도에서 달 궤도에 투입하기 위해서는 2번에 해당하는 호만 전이 궤도가 요구되며 이 궤적이 지구-달 전이 궤적에 해당한다.
직접 전이 궤적
냉전 시대에 달 탐사를 수행했던 미국과 소련은 달에 도달하기 위해 직접 전이 궤적을 이용했다. 냉전 시대 이후에도 미국의 루나 프로스펙터(‘97) 및 LRO(‘08)는 지구에서부터 달에 도달하기까지 약 4∼6일이 소요되는 직접 전이 궤적을 이용하였다.
이 궤적은 달에 가는 궤적 중 기간이 가장 짧아서 임무 궤적 설계가 다소 간단하며 위성을 운영해야 하는 지상 관제국 운영자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 궤적은 달까지 도달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짧기 때문에 발사체 분리 이후 태양전지판 전개, 중간 경로 수정 기동 등 운영적인 부분에 대한 경험이 충분해야 한다.
또한 달 탐사선을 지구 저궤도에서 고도 38만km에 해당하는 거리까지 한 번에 투입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밀도 및 성능을 갖춘 발사체가 요구되어, 이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발사체의 경우 계약 단가가 다소 높다는 단점이 있다.
위상 전이 궤적
위상 전이 궤적은 냉전 시대 이후 달 탐사를 처음 하는 기관들이 주로 선택한 궤적이다. 중국(창어 1호, ‘07), 인도(찬드라얀 1호, ‘08) 및 일본(셀레네, ‘07)가 위상 전이 궤적을 이용하여 달에 도달하였다.
위상 전이 궤적을 이용할 경우 지구를 여러 번 회전한 후 달에 도달하기 때문에 전이 기간이 20일 이상으로 길다. 따라서 처음 발사하는 달 궤도선의 경우 궤도선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오류 들을 수정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확보되어 안정적으로 달에 보낼 수 있다.
NASA의 달 궤도선 라디(‘13)의 경우에는 발사체의 투입 정밀도 영향으로 위성 전이 궤적으로 달에 도달하였다. 이 궤적을 이용할 경우 발사체 분리 오차로 발생한 궤적의 변화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고, 오차를 보정하는 기동의 양도 크지 않다. 이 궤적은 발사체가 투입해주는 첫 번째 원지점의 고도가 달 평균 고도인 38만km보다 낮기 때문에 궤도선 자체의 연료를 이용하여 고도를 높여야 한다.
따라서 탑재해야 하는 연료량이 직접 전이 궤적을 선택한 위성보다 다소 증가한다. 또한 지구를 여러 번 돌면서 추가적인 기동을 수행하기 때문에 달 임무 설계의 복잡성이 증가하고, 지상 관제국 운영자들의 부담을 증가시키는 단점이 있다.
대한민국은 2021년에 위성 전이 궤적을 이용하여 시험용 달 궤도선(KPLO)은 발사할 계획이다. 현재 3.5회 회전하는 위상 전이 궤적을 고려하고 있으며, 발사체가 투입한 고도(약 32만km)를 달 평균 고도인 38만km까지 올리기 위해 2번의 추가적인 기동을 계획하고 있다. 이에 발사 후 달 궤도에 도달하기까지 약 30일이 소요될 전망이다.
WSB(Weak Stability Boundary) 전이 궤적
1998년 이 궤적의 창시자인 벨브루노(Belbruno)가 처음 이 궤적을 제안했을 때 아주 큰 비관론에 직면했고, 엔지니어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심했었다. 하지만 1991년에 발사된 일본의 히텐(Hiten)이 궤도 진입에 실패하고, 처음으로 WSB 궤적을 적용해 달 궤도에 진입함에 따라 WSB 전이궤적은 궤도 역학 분야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히텐 이후에 미국 로켓추진연구소(JPL)에서 그래일(GRAIL, ‘11)이라는 쌍둥이 위성을 발사하였다.
이 궤적은 궤도선을 그림에 표기된 EL1이라는 지구와 태양 사이의 평형점에 보냄으로써 달 궤도 진입에 요구되는 에너지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궤도선이 EL1 지점에 도달하면 아주 약한 힘에도 태양으로 가거나 지구로 되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안정성이 약한 경계면(WSB)이라고 이름을 정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EL1에서 지구로 되돌아오는 궤적이 되도록 설계한다면 달 궤도에 진입하기 위한 에너지를 기존의 궤적보다 최대 25%까지 감소시킬 수 있다.
다만, 이 궤적은 지구로부터 최대 150만km까지 멀어지며 전이 기간도 3∼4달 정도로 길다는 특징이 있다. 이 궤적을 이용한 궤도선은 기존의 달 탐사선보다 훨씬 먼 곳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통신계의 보강이 필수적이며, 지상 안테나의 사양도 굉장히 중요하다.
나선(Spiral) 전이 궤적
유럽 연합은 2003년 9월 27일 스마트 1호를 발사했다. 이 위성은 달 탐사를 위한 목적으로 발사되었으나, 여느 탐사선과는 다른 여러 가지 특징이 있다.
전통적으로 달 탐사에 사용되는 추력기는 하이드라진을 연료로 사용하는 단일 추력기와 연료와 산화재를 사용하는 이원 추력기가 있다. 하지만 스마트 1호는 제논을 연료로 사용하는 태양 전기 추력 방식의 추력기다. 그래서 전통적인 추력기에 비해 추력은 매우 낮고, 비추력은 매우 높다. 이 말은 주어진 연료를 기동에 사용하는 에너지 변환 효율은 높으나, 힘이 약해 오랜 기간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동일한 궤도 변화에 소요되는 연료량은 전통적인 추력기에 비해 적다.
태양 전기 추력기를 스마트 1호에 장착한 이유는 해당 추력기를 시험하고자 함이다. 하지만 태양 전기 추력기를 탑재하는 순간 기존의 달 탐사선과 같은 궤적으로 갈 수 없어서 그림에 나타난 바와 같이 궤도를 나선 모양으로 점점 크게 키우고, 지구와 달의 중력 평형점 근처에서 크게 휘어 달 궤도에 점점 다가가는 궤적이 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전이 궤적은 추력기의 신뢰성에 따라 임무의 성공과 실패가 결정된다. 추력기를 매우 빈번하게 사용함에 따라 자세제어 및 임무 궤적 설계에 큰 부담이 존재한다.
또한 달에 도달하기까지 14개월, 달의 임무 궤도인 2200km × 4600km에 도달하기까지 22개월이 소요되었다. 뿐만 아니라 임무 연장이 달 임무에 도달하기 이전인 발사 이후 17개월에 선언됨에 따라 지구에서 달로의 전이 자체가 이 궤도선의 임무가 되었다.
이렇듯 스마트 1호는 기존의 달 탐사선과는 아주 다른 개념으로 달에 도달하였으며, 이러한 시도 자체가 추력기를 검증하고 새로운 궤적을 만든다는 관점에서 큰 의미를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운영 경험 및 발사체 성능에 따라 궤적 선택
많은 국가가 달 탐사를 위해 다양한 궤적을 이용하였다. 각 국가가 선택한 전이 궤적은 각자의 운영 경험 및 발사체 성능에 따라서 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일반인 입장에서는 더 다양한 궤적과 더 효율적인 방식의 궤적이 출현하기를 기대할 수 있지만, 안정적으로 탐사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궤적은 주로 직접 전이 궤적이나 위상 전이 궤적이다.
우리나라도 2021년에 발사할 달 궤도선의 기준 궤적을 위상 전이 궤적으로 선정하였다. 그 이유는 안정적으로 달에 도달하고, 향후에 개발될 한국형 발사체(KSLV-II)를 이용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 최수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선임연구원
- 저작권자 2019-08-1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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