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에 가면 ‘시에라네그라(Sierra Negra)’ 라는 이름의 화산이 있다. 한때는 활화산이었지만, 지금은 백두산처럼 분화를 멈춘 채 쉬고 있는 휴화산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화산의 해발고도 4000m의 위치에 올라서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구조물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바로 물탱크다.
한두 개 정도 놓여 있다면 원주민들이 쓰는 물탱크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정도가 아니다. 무려 300개가 넘는 물탱크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되어 거대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각각의 물탱크는 지름 7m와 높이 5m의 거대한 원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안에는 18만 L가 넘는 물이 보관되어있다.
이에 대해 과학기술 전문 매체인 피스오알지(phys.org)는 “미국 내 15개 기관과 멕시코 내 12개 기관이 협력하여 건설한 대형 과학관측 장비가 멕시코 고산 지대에 설치되어 있다”라고 소개하며 “장비의 이름은 ‘감마선을 관측하는 수중 측정기기(HAWC)’”라고 밝혔다. (관련 기사 링크)
물탱크 이용하여 감마선 관측
감마선이 무엇이기에 물탱크를 동원하여 관측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파악하려면 먼저 감마선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감마선은 전자기파의 일종으로, 파장이 수 피코미터(pm; 1조 분의 1미터)에 불과하지만 매우 큰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의 생명체가 감마선에 노출되었을 시, DNA에 변형이 오고 피부가 괴사하는 등의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다.
하지만 태양으로부터 방출되는 전하를 띤 입자와 지구의 대기층으로 인해 지표에 존재하는 생명체는 감마선으로부터 안전을 안전을 유지할 수 있다. 우주로부터 날아오는 감마선이 이 2개의 방어선에 대부분 가로막혀 지표까지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2개의 방어선으로 인해 감마선 대부분이 사라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간혹 여전히 강한 에너지를 보유한 채로 지표에 도달하는 감마선도 있다.
HAWC는 이 같이 지표에 도달하는 몇 안되는 감마선을 측정하는 장비다. 감마선이 물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빛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이동하게 되는데, 이런 경우 빛보다 빠르게 이동하는 감마선 입자들로 인해 파란색의 빛이 발광하게 된다. 이같은 발광현상을 가리켜 ‘체렌코프 현상(Cherenkov Effect)’이라 부른다
HAWC의 물탱크 속에는 4개의 광증폭 튜브(photomultiplier tube)가 달려있어서, 감마선이 물 속으로 들어가 ‘체렌코프 현상’을 일으켰을 때 나타나는 파란색의 빛을 증폭시킬 수 있다.
증폭된 파란색의 빛은 관측소 중앙에 위치한 제어실로 보내져 천문학자들이 연구할 수 있는 근거자료가 된다. 300여개에 달하는 물탱크가 각각 이같은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천문학자들은 취합한 300여개의 데이터로부터 감마선이 어느 방향에서 왔고, 얼마나 먼 거리에서 왔는지를 분석할 수 있다.
감마선 측정을 위해 물탱크를 동원하는 이유는 일반적인 망원경의 구조로는 이를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망원경은 거울이나 렌즈를 사용하여 빛을 반사하거나 모아야 관측이 가능한데, 감마선은 거울이나 렌즈까지도 통과하는 전자기파다.
일반적으로 전자기파는 에너지가 클수록 투과력이 좋다. 물질을 이루는 분자의 결합거리는 수 나노미터(nm; 10억 분의 1미터)이지만, 감마선의 파장은 수 피코미터(pm)에 불과하다. 나노미터보다 천분의 1이나 짧기 때문에 거울이나 렌즈까지도 통과할 수 있는 것이다.
감마선을 통해 마이크로퀘이사 관측할 수 있어
감마선 측정을 통해 천문학자들은 무엇을 알고자 하는 것일까? 천문학자들은 현재 HAWC로 자주 접할 수 없었던 특이한 천체를 관측하고 있다. 바로 ‘마이크로퀘이사(Micro Quasar)’라는 명칭의 천체다.
마이크로퀘이사는 아직까지 그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미지의 천체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퀘이사라고 하면 수십억광년 떨어져 있는 초기은하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천체를 떠올리기 쉽다.
수십억광년씩 떨어져 있는 만큼 희미하게 보여야 하지만, 퀘이사는 빛의 세기가 거의 은하의 밝기와 맞먹는 천체여서 지상에서는 별과 비슷하게 보인다. 때문에 ‘준 항성’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런데 마이크로퀘이사는 지구로부터 불과 15000광년밖에 안 떨어져 있는 매우 가까운 퀘이사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퀘이사와는 달리 빛의 세기가 강하지 못해 마이크로퀘이사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감마선을 발생시키는 마이크로퀘이사는 지금까지 발견된 숫자가 손에 꼽을정도로 적은 편이다. 따라서 천문학자들은 HAWC를 통해 마이크로퀘이사를 관측하며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천체들의 비밀을 파헤치려고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메릴랜드 대학의 조던 굿맨(Jordan Goodman)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HAWC를 이용하여 지구에서 15000광년 떨어진 마이크로퀘이사인 SS433을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굿맨 교수는 “감마선을 지상에서 검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HAWC는 획기적인 관측 장비”라고 소개하며 “앞으로 HAWC를 통해서 강력한 전자기파들을 내뿜는 블랙홀이나 초신성 등을 관측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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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8-10-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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