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1호 항공기인 ‘부활호’가 자취를 감춘 지 51년 만에 복원됐다. 공군은 22일 공군 제81항공정비창 주기장에서 부활호 복원 기념식을 가졌다. 이날 행사에 공군 관계자 이외에 부활호의 최초 조종사였던 민영락(79)씨, 부활호 설계자 이원복(78)씨 그리고 ‘부활’ 이라고 이름을 지어준 이승만 전 대통령 아들인 이인수(73)씨가 참가한 가운데, 부활호가 우리 공군의 주력 훈련기인 국산 KT-1과 나란히 활주로를 질주했다.
1953년 제작된 2인용 프로펠러 경비행기인 부활호는 국내 기술진에 의해 처음으로 개발된 경비행기로 중량 380킬로그램, 상승고도 4천9백미터 그리고 최대속도 시속 180킬로미터의 성능을 보유했다. 부활호는 2년간 공군의 연락기 등으로 활용된 뒤 한국항공대(대구경상공고 전신)에 기증된 후, 54~60년까지 한국항공대의 학생들의 연습기로 활용됐다. 그러나 대구 달서구에 있던 항공대가 이전하고, 그 자리에 경상공고가 설립되면서 부활호의 존재는 점차 잊혀졌다.
부활호의 복원작업은 제작 당시 설계자였던 이원복와 문용호(78세, 작고)씨 등이 ‘우리 항공기를 되찾아야겠다’는 일념에 1990년 무렵부터 부활호 찾기에 적극 나섰고, 지난해 모 일간지에 ‘부활호의 소재를 찾는다’는 기사를 내면서, 올해 1월 경상공고 퇴직자가 녹슨 뼈대만 남은 부활호가 경상공고 지하창고에 있다고 연락하면서 발견됐다.
이원복씨와 공군은 부활호 제작 당시 제작인원과 동일한 27명의 제81항공정비창의 전문요원으로 복원전담팀을 구성하여 4개월 간의 노력 끝에 복원에 성공했다. 하지만 당시의 설계도가 남아 있지 않아 남은 뼈대의 치수를 재 부품의 크기 등을 일일이 계산하는 역설계 방식과 자료사진 등을 이용하여 200여장의 설계도를 만들었다.
그리고 복원팀은 복원과정에서 필요한 50여년 전의 비행기 부품을 구하기 위해 미국 항공기 제작사와 중고시장 등을 뒤져 동일한 엔진을 구한 뒤, 기계 대신 망치로 알루미늄을 두드리는 전통식 타출방식으로 동체를 만들고, 컴퓨터 그래픽으로 당시 제호를 살려 비행기 원형대로 복원했다.
복원 작업 성공으로 이미 반세기 전 항공기를 제작했던 우리의 훌륭한 항공 역사가 사장되지 않은 채, 수십 년이 지난 뒤에 다시 부활한 것은 ‘부활호’라는 이름이 그 운명을 예고한 것은 아니었을까. 51년 만에 복원된 부활호는 공군사관학교로 옮겨져 우리나라 항공산업의 소중한 유물로 보존된다.
- 공채영 객원기자
- 저작권자 2004-10-2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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