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방송된 법의학 드라마 ‘싸인’에선 선배의 비리를 발견하고 좌절하는 후배 과학수사관의 모습을 통해 일선 과학수사관의 애환이 그려졌다. 극중 두 선후배 과학수사관이 대화를 나눈다. “도대체 왜 그러신거에요. 마지막 사건이었잖아요?” “30년 동안 혈흔 찾고, 지문 찾겠다고 루미놀이니, SPR 시약이니 마구 뿌려댔더니만 그 놈들 덕분에 제명에 못 죽게 생겼어. 간까지 못쓰게 됐다고 하더구먼.” (중략)
“그래도 사명감을 갖고 일해 오셨잖아요. 진실을 은폐한 대가로 얼마 받으셨어요?” “현실은… CSI와 달라.”
드라마 내용처럼 CSI 드라마와 실제의 과학수사 현장은 과연 다른 것일까?
시약(試藥)은 화학 분석에서 물질의 검출이나 정량을 위한 반응에 사용하는 약품이다. 산·알칼리·염 등과 같이 용해·침전·산성도의 조절, 반응 등에 사용되는 각종 시약은 질병 진단은 물론 범죄 수사에서 미궁에 빠진 사건의 해결사로 활용되고 있다.
그중 혈흔 반응에 쓰이는 루미놀과 지문 채취에 활용되는 SPR 시약 등은 CSI 과학수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시약이다. 사소한 폭행 사건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에 이르기까지 범죄 현장에는 항상 혈흔과 지문이 남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범죄수사에 쓰이는 다양한 시약들은 반응성이 매우 뛰어난 독성물질이 대부분이어서 사용자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실제로 이는 과학수사 요원들에게 큰 어려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등 키자 사방에 흩어진 푸른 빛
과학수사의 대부 프랑스의 에드몽 로카르 박사는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경찰도 이 말을 과학수사의 제1원칙으로 받아들이며, 현장보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 과학수사관들은 “모든 범죄가 이런 원칙대로 돌아가진 않는다”고 말한다. 지난 2006년 12월과 2007년 1월, 충남 연기군과 아산시 외곽에서 연달아 두 명의 40대 남자 변사체가 각각 발견됐다. 충남 국도변에서 발견된 이 사체들로부터 특별한 증거들이 발견되지 않아 초동수사는 난항을 겪었다. 다행히 피해자들의 신원을 곧 밝힐 수 있었고, 경찰은 이들이 행방불명되기 전 행적을 추적했다.
그러던 중 이들이 노래방에 갔던 사실을 알아내고 노래방 업주 송 씨의 차량이 연기군 지역 CCTV에 찍힌 점을 고려, 업주 송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검거했으나 그는 완강하게 범행을 부인했다. 경찰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송 씨가 운영하는 노래방을 조사했지만 혈흔과 같은 결정적인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경찰의 심증을 굳히는 단서가 드러났다. 경찰이 두 명의 피해자가 놀았던 노래방의 불을 끄고 루미놀을 벽과 천장 등 사방에 뿌린 결과 방안 곳곳에 격렬하게 흩뿌려진 피의 흔적들이 푸른 빛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완강하던 송 씨도 경찰이 들이미는 여러 정황 증거에 범행 일체를 자백할 수밖에 없었다. 노래방 도우미 불법영업을 신고하겠다며 돈을 내지 않는 손님들을 송 씨가 목검으로 때려 살해하고, 시체를 유기한 것이다.
송 씨와 가족에 의해 노래방은 깨끗하게 치워졌지만 루미놀 반응이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다. 이에 심증을 굳힌 경찰이 철저하게 다시 조사한 결과, 노래방서 피해자중 한 사람의 혈흔을 찾아냈고 목검도 인근에서 발견됐다.
루미놀이 헤민과 만나면 형광 발광
CSI 드라마의 단골손님이 바로 혈흔 검사법, 즉 루미놀 테스트(luminol test)다. 알칼리 용액인 루미놀에 과산화수소수를 혼합, 여기에 혈색소 헤민을 작용시키면 강렬한 화학발광을 낸다. 이 반응을 이용하는 것이 바로 루미놀 시험이다.
시약 제조에는 루미놀 0.1g, 탄산나트륨무수물 5.0g, 30% 과산화수소수 15.0mℓ 등이 쓰인다. 이렇게 간단한 제법이지만 이 루미놀 시약을 암실에서 또는 밤에 혈흔 피검물에 분무하면 용의자의 간담이 녹아내릴 결정적인 단서를 드러낸다. 법의관에 따르면 루미놀 반응은 알칼리 조건에서 루미놀이 두 개의 수소를 잃고, 두 개의 산소원자가 6각형 고리의 중간에 다리 형으로 결합, 즉 산화하고, 질소가 기체로 날아가면서 생긴 중간체는 매우 불안정해 빠르게 빛 에너지로 바뀌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루미놀 안에 든 과산화수소와 혈액소 헤민이 만나서 빚어낸 현상이다. 과산화수소로 인해 헤민의 산소가 떨어져 나와서 루미놀을 산화시키고, 이 때 루미놀의 남은 전자들이 들뜬 상태가 됐다가 가라앉으며 푸르스름한 빛을 내는 것.
이는 심증으론 틀림없지만 물증이 없는 경찰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 계속적인 증거확보에 힘을 실어준다. 또 CSI 드라마의 경우엔 통쾌함을 주는 강력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나 일선 과학수사관들은 “CSI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과학수사의 세계가 멋있는 것만은 결코 아니다”고 말한다.
물에 젖은 표면 위에 묻은 지문을 뜨는데 쓰는 ‘SPR(Small Particle Reagent)’은 사용이 간편하고, 신속한 지문을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분말 성분 중 일부 성분이 납, 망간, 수은 티타늄 등의 독성이 있어 인체에 해롭다.
또 접착제인 ‘시아노아크릴레이트(cyanoacrylate)의 경우 지문 속에 함유된 염분, 지방분, 단백질 등과 화학반응을 일으켜 백색의 잠재지문을 검출하는데 많이 쓰인다. 피검물에 이 시아노아크릴레이트를 칠하고, 지문채취용 기계에 넣고 가열하면 기체가 증발되고 지문만이 남는다.
그러나 이 약품을 사용하려다 내용물이 눈에 튀거나 손에 묻어 붙으면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 과학수사 관계자는 “이 약품을 넣고 예열하면 하얀 연기가 나오는데 이는 인체에 매우 해로운 가스”라고 설명한다.
이는 시아노아크릴레이트가 몸속에 들어가면 1급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학수사관들은 암 발병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조행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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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1-01-1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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