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SBS 수목드라마 ‘싸인’의 방영 날짜가 공개되면서 시청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드라마 싸인이 주목 받는 이유로는 “한국에서 제작된 적이 없는 ‘법의학’이란 새로운 소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사전 홍보자료에 따르면 싸인은 미해결 사건의 희생자들이 남긴 흔적을 통해 죽음의 원인을 밝혀내는 천재 법의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메디컬 수사드라마라는 것.
그동안 외화 CSI 시리즈가 오랫동안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끌고, 간간이 스크린, 케이블 TV에서 과학수사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방영된 적은 있다. 하지만 공중파 TV에서 본격적으로 한국판 법의학 드라마가 제작된 적은 없어 싸인의 방영은 이례적이다.
이에 대해 국내에서도 법의학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성공할 수 있는 토양이 조성됐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크다. 30분마다 한 번씩 발생하는 성폭행 사건을 비롯, 갈수록 지능화하는 범죄와 억울한 피해자의 양산, 무엇보다도 증가일로에 있는 잔혹범죄 등이 바로 그 이유라는 것이다.
한편으로 과학수사 드라마에 식상한 시청자들에게 법의학 드라마는 새로운 시도란 분석도 있다. 과학수사가 진범을 가려내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법의학은 범죄 그 자체보다는 살인 후의 흔적이나 사체에 나타난 증거들에 더 초점을 맞춘다. 즉, 인간 내면의 잔혹성, 억울한 죽음에 따른 진실과 거짓 등이 드라마의 소재로 쓰이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법의학의 세계를 들여다보자.
사망 추정시각은 가장 중요한 단서
영국의 법의학자 버나드 나이트 박사는 “사망시각 추정은 지난 수세기 동안 범죄수사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져 왔다”며 법의학에서의 사망시각 추정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범인의 알리바이 입증뿐 아니라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데 결정적인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1992년 11월29일 오전 서울시 관악구 D 여관 203호에서 18세 젊은 여자의 변사체가 발견됐다. 죽은 여자의 신원은 카페 여종업원 L양으로 밝혀졌으며 사인은 교살이었다.
이 사건을 신고한 사람은 그날 새벽 3시 반쯤 L양과 이 여관에 같이 투숙했던 애인 김 순경이었다. 김 순경은 경찰 진술에서 “나는 오전 7시쯤 혼자 여관을 나와 근처에 있는 직장에 출근했었다”며 “내가 L양을 깨우러 여관에 다시 왔을 때에는 이미 10시가 지났고, 그 때 이미 L양은 죽어있었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드러난 여러 정황은 김 순경에게 완전히 불리했다. 우선 숨진 L양과 함께 투숙한 점. 또 전화로 확인도 안하고, L양을 깨우러 다시 왔다는 점과 둘 사이에 결혼을 둘러싸고, 강제 낙태 등에 의한 갈등이 존재했던 점 등이 결정적 단서로 작용했다.
오전 7시부터 10시까지 여관에 외부인의 침입 흔적이 전혀 없고, 여관 주인이 아침 8시에 모닝콜을 부탁한 김 순경을 실수로 7시에 인터폰으로 깨웠을 때, 김 순경이 즉시 전화를 받았다는 점도 매우 의심스런 대목이었다.
이는 용의자 김 순경이 오전 7시 이전에 이미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됐기 때문이다. 김 순경은 자살로 신고했지만 결론은 김 순경에 의해 목이 졸린 타살로 결론이 났다. 경찰은 김 순경을 다그쳐 하루 만에 범행 일체를 자백 받았다.
경찰은 부검 및 국과수에 의한 사후경과 시간 추정 등의 법의학 절차까지 마쳤다. 그리고 서울지검에 김 순경을 송치했지만 김 순경은 검찰에서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다. 그는 93년 5월 27일 제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제 3심이 진행되는 도중에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다. 93년 12월 3일에 L양의 진짜 살인범 서 씨가 검거돼 김 순경의 억울한 진실이 밝혀진 것.
황당한 사건으로 이미 세간에 잘 알려진 봉천동 김 순경 사건의 아이러니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한 사람의 운명이 달린 법의학 소견
김 순경 사건 당시에 법의학자들은 L양의 사망 시각을 오전 3시에서 5시경으로 추정했으나 실제로 L양은 오전 7시쯤(범인 서씨가 여관에 침입한 시각)에 살해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전문가들은 “사망 시각을 잘못 추정한 게 이 사건을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 간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법의학자들이 변사자의 사망시각을 추정하는 토대는 시체 현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사람이 사망하면 그 즉시 나타나는 물리, 화학, 생물학적인 초기 변화들이 있는데 호흡 및 혈액순환의 정지, 혈색 변화, 근육 이완, 동공 정지 현상 등이 바로 그것.
법의학자들은 “이런 시체현상은 사람이 사망해도 개별 세포 하나하나는 일정 기간 동안 살아있어 구조와 기능이 유지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후에 시간이 지나면서 사체에는 여러 가지 법의학 증거들이 새겨진다. 이때 가장 중요한 용의자의 알리바이를 밝힐 사망시각 추정에 관여하는 현상이 바로 시반과 시강이다.
사람이 사망한 후에 혈액순환이 정지하면 중력에 의해 붉은 색의 적혈구가 하부에 모이고, 피부를 통해 검붉은 색깔로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시반이다. 시반은 사망 후 30분에서 1 시간 사이에 생길 수도 있으나 보통은 사망 후 2~3 시간이면 나타나고, 12시간이 경과하면 최고조에 달한다.
시체의 체위가 변하면 중력에 의해 시반도 이동한다. 그러나 사망 후 15시간이 경과하면 혈구내의 혈색소가 염색돼 시반의 이동이 없어진다.
이에 비해 시강은 사체의 시간적, 공간적 경직도에 따라 사망시각 추정의 단서를 제공한다. 사람은 사망 후 각 조직에 혈류 중단으로 산소결핍이 일어나고, 각 근육은 ATP 감소로 경직상태가 시작된다. 이는 부패로 인해 풀어질 때까지 지속된다.
일반적으로 사후 2~3 시간 후에 시작, 5~6 시간이 경과하면 전신이 강직상태가 되며, 15 시간 전후에 최고조에 이른다. 시체경직이 일어나는 순서도 턱관절, 목관절, 손, 발 등 순차적인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사망추정 시각의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법의학자들은 “시체경직의 시간적 변동의 폭이 매우 커서 시강만으론 사망시간 추정의 증거적 가치는 매우 적다”고 말한다. 실제로 법정에서 법의학 증거들은 아직도 참고자료일 뿐이지 결정적 증거로 채택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법의학은 날로 발전하고 있어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동안 외화 CSI 시리즈가 오랫동안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끌고, 간간이 스크린, 케이블 TV에서 과학수사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방영된 적은 있다. 하지만 공중파 TV에서 본격적으로 한국판 법의학 드라마가 제작된 적은 없어 싸인의 방영은 이례적이다.
이에 대해 국내에서도 법의학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성공할 수 있는 토양이 조성됐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크다. 30분마다 한 번씩 발생하는 성폭행 사건을 비롯, 갈수록 지능화하는 범죄와 억울한 피해자의 양산, 무엇보다도 증가일로에 있는 잔혹범죄 등이 바로 그 이유라는 것이다.
한편으로 과학수사 드라마에 식상한 시청자들에게 법의학 드라마는 새로운 시도란 분석도 있다. 과학수사가 진범을 가려내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법의학은 범죄 그 자체보다는 살인 후의 흔적이나 사체에 나타난 증거들에 더 초점을 맞춘다. 즉, 인간 내면의 잔혹성, 억울한 죽음에 따른 진실과 거짓 등이 드라마의 소재로 쓰이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법의학의 세계를 들여다보자.
사망 추정시각은 가장 중요한 단서
영국의 법의학자 버나드 나이트 박사는 “사망시각 추정은 지난 수세기 동안 범죄수사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져 왔다”며 법의학에서의 사망시각 추정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범인의 알리바이 입증뿐 아니라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데 결정적인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1992년 11월29일 오전 서울시 관악구 D 여관 203호에서 18세 젊은 여자의 변사체가 발견됐다. 죽은 여자의 신원은 카페 여종업원 L양으로 밝혀졌으며 사인은 교살이었다.
그러나 드러난 여러 정황은 김 순경에게 완전히 불리했다. 우선 숨진 L양과 함께 투숙한 점. 또 전화로 확인도 안하고, L양을 깨우러 다시 왔다는 점과 둘 사이에 결혼을 둘러싸고, 강제 낙태 등에 의한 갈등이 존재했던 점 등이 결정적 단서로 작용했다.
오전 7시부터 10시까지 여관에 외부인의 침입 흔적이 전혀 없고, 여관 주인이 아침 8시에 모닝콜을 부탁한 김 순경을 실수로 7시에 인터폰으로 깨웠을 때, 김 순경이 즉시 전화를 받았다는 점도 매우 의심스런 대목이었다.
이는 용의자 김 순경이 오전 7시 이전에 이미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됐기 때문이다. 김 순경은 자살로 신고했지만 결론은 김 순경에 의해 목이 졸린 타살로 결론이 났다. 경찰은 김 순경을 다그쳐 하루 만에 범행 일체를 자백 받았다.
경찰은 부검 및 국과수에 의한 사후경과 시간 추정 등의 법의학 절차까지 마쳤다. 그리고 서울지검에 김 순경을 송치했지만 김 순경은 검찰에서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다. 그는 93년 5월 27일 제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제 3심이 진행되는 도중에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다. 93년 12월 3일에 L양의 진짜 살인범 서 씨가 검거돼 김 순경의 억울한 진실이 밝혀진 것.
황당한 사건으로 이미 세간에 잘 알려진 봉천동 김 순경 사건의 아이러니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한 사람의 운명이 달린 법의학 소견
김 순경 사건 당시에 법의학자들은 L양의 사망 시각을 오전 3시에서 5시경으로 추정했으나 실제로 L양은 오전 7시쯤(범인 서씨가 여관에 침입한 시각)에 살해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전문가들은 “사망 시각을 잘못 추정한 게 이 사건을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 간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법의학자들이 변사자의 사망시각을 추정하는 토대는 시체 현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사람이 사망하면 그 즉시 나타나는 물리, 화학, 생물학적인 초기 변화들이 있는데 호흡 및 혈액순환의 정지, 혈색 변화, 근육 이완, 동공 정지 현상 등이 바로 그것.
법의학자들은 “이런 시체현상은 사람이 사망해도 개별 세포 하나하나는 일정 기간 동안 살아있어 구조와 기능이 유지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사람이 사망한 후에 혈액순환이 정지하면 중력에 의해 붉은 색의 적혈구가 하부에 모이고, 피부를 통해 검붉은 색깔로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시반이다. 시반은 사망 후 30분에서 1 시간 사이에 생길 수도 있으나 보통은 사망 후 2~3 시간이면 나타나고, 12시간이 경과하면 최고조에 달한다.
시체의 체위가 변하면 중력에 의해 시반도 이동한다. 그러나 사망 후 15시간이 경과하면 혈구내의 혈색소가 염색돼 시반의 이동이 없어진다.
이에 비해 시강은 사체의 시간적, 공간적 경직도에 따라 사망시각 추정의 단서를 제공한다. 사람은 사망 후 각 조직에 혈류 중단으로 산소결핍이 일어나고, 각 근육은 ATP 감소로 경직상태가 시작된다. 이는 부패로 인해 풀어질 때까지 지속된다.
일반적으로 사후 2~3 시간 후에 시작, 5~6 시간이 경과하면 전신이 강직상태가 되며, 15 시간 전후에 최고조에 이른다. 시체경직이 일어나는 순서도 턱관절, 목관절, 손, 발 등 순차적인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사망추정 시각의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법의학자들은 “시체경직의 시간적 변동의 폭이 매우 커서 시강만으론 사망시간 추정의 증거적 가치는 매우 적다”고 말한다. 실제로 법정에서 법의학 증거들은 아직도 참고자료일 뿐이지 결정적 증거로 채택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법의학은 날로 발전하고 있어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조행만 기자
- chohang2@empal.com
- 저작권자 2010-12-31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