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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학
임동욱 기자
2010-12-17

먹는 상상만으로도 살이 빠진다? 사이언스지에 소개된 ‘상상 다이어트’의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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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딸이 열심히 밥을 먹는 모습을 바라보는 어머니들이 하는 말이 있다. “안 먹어도 배부르다”고. 어린 시절에는 이해가 가지 않는 표현이었다. 배가 부르다는 것은 음식이 뱃속으로 들어감으로써 소화기관이 뇌에게 신호를 보내야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인데 말이다. 그럼에도 많은 부모님들은 비슷한 대답을 한다.

이처럼 복잡하고 오묘하게 얽힌 몸과 마음의 관계를 재정의하는 논문이 최근 발표됐다. 사이언스지 최신호에 발표된 미국 카네기멜론대(CMU)의 실험 결과서다. ‘상상의 식사만으로도 실제 식사량이 줄어든다(Thought for Food: Imagined Consumption Reduces Actual Consumption)’는 제목의 이 논문은 음식을 먹는 상상을 하는 것으로도 식사 욕구를 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안 먹어도 배부른’ 일이 실제로도 가능한 것이다.

대표저자인 카네기멜론대 심리학과의 케리 모어웻지(Carey Morewedge) 박사는 “마음 속으로 초콜릿과 치즈를 먹는다고 상상만 했는데도, 실제로 먹은 것처럼 음식에 대한 욕구가 떨어졌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상상 다이어트(Imagine Diet)’가 가능하다는 실제 증거를 찾아낸 것이다.

상상만으로 ‘둔감화’ 가능하다는 최초의 발견

초콜릿이나 과자 등의 군것질거리를 볼 때마다 사람들은 고민에 빠진다. 먹고는 싶은데 살이 찔 것 같고, 맛만 보려 해도 일단 먹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 그러나 이제는 봉지를 만지작거리며 뜯을까 말까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초콜릿이나 과자를 먹는 상상만 해도 배가 부른 것처럼 식욕이 저하되기 때문이다.

카네기멜론대 실험에는 엠앤엠즈(M&M’s) 초코볼과 낱개 포장된 크래프트 체다(Kraft Cheddar) 치즈가 쓰였다. 미국에서 군것질거리로 각광받는 제품들이다. 정확히 말하면 실제 음식이 아닌 사진이 쓰였다. 피실험자들에게 음식 사진을 보여주며 마음 속으로 먹는 상상을 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연구진은 피실험자들을 세 그룹으로 나눴다. 첫 번째 그룹은 마음 속으로 세탁기에 동전을 넣게 했고, 두 번째는 상상으로 동전을 넣고 초코볼을 3개 먹게 했다. 세 번째 그룹은 초코볼 30개를 먹는다고 상상하게 했다. 대신에 3초에 한 번씩 초코볼 사진을 보여주며 한 알씩 먹는 상상을 하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실제 초코볼을 주자 세 번째 그룹이 가장 적게 먹었다. 마음 속으로 초코볼을 먹는 상상을 30번 반복하자 이른바 ‘둔감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5초마다 치즈 사진을 보여주는 실험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둔감화(habituation)는 반복적인 자극에 대해 심리적으로 적응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밝은 빛에 갑자기 노출되면 눈살을 찌푸리지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는 것도 둔감화의 일종이다. 고약한 냄새도 익숙해지면 견딜 만하다. 환경미화원이 묵묵히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도 둔감화 덕분이다.

둔감화와 더불어 음식에 대한 마음을 조절하는 것이 민감화(sensation)다. 민감화는 음식을 먹는 상상으로 인해 식욕이 더욱 커지는 현상이다. 출출한 밤 시간에 맛깔스러운 음식 사진을 게시판에 올렸을 때 “괴롭다”는 사람들의 반응이 나오는 것도 민감화에 속한다.

기존의 상식으로는 마음 속으로 음식을 떠올려봤자 민감화만 강렬해진다. 그러나 이번 실험은 “상상 만으로도 음식에 대한 욕구가 줄어드는 둔감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최초의 증거로 인정받았다.

상상 다이어트 응용한 상품 쏟아질 듯

이번 실험 결과는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도 충분하다. 상상 다이어트를 이용하면 음식마다 일일이 칼로리 계산을 할 필요도 없다. 살찌기 쉬운 음식을 먹는 데 대한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음식에 대한 둔감화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미국 버팔로주립대의 레너드 엡스타인(Leonard Epstein) 심리학과 교수는 음식과 다이어트 산업에 활용하기 위한 수많은 질문들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상상 다이어트의 영향력이 시간이 흐르면서 얼마나 줄어들지, 비만인에게도 동일한 효과가 나타날지, 모든 음식에 적용 가능한지 등등 여러 질문을 던지며 “임상적으로 유용하게 쓰이려면 반복 실험을 통해 결과와 범위를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상상 다이어트 방법을 배운 후에는 당근과 감자칩 중에서 어느 것을 먹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마음 속으로 감자칩을 하나씩 하나씩 30개 이상 먹은 후, 감자칩에 대한 식욕이 사라지면 다이어트에 좋은 당근을 먹으면 된다.

중독성 약물을 끊을 때 사용할 수 있다면 더욱 획기적이다. 담배를 피우는 구체적인 상상만으로도 실제로 담배를 피워야겠다는 욕구가 줄어드는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상상 속의 쇼핑을 통해 실제 신용카드 사용을 줄일 수도 있고, 마음 속으로 야한 장면을 떠올림으로써 실제 생활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방법이 잘못 쓰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 대한 욕정을 억제하고 싶다면 세부묘사까지 완벽한 가상의 에로영화를 상상하면 될 테고, 에로영화 제작자들은 예술 장르를 뛰어넘어 의약품 시장에까지 진출할 수도 있다.

앞으로 상상 다이어트를 소재로 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 등장할 것이고, 살찌기 쉬운 음식만을 잔뜩 모아놓은 사진첩이 발간될 수도 있다.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연구진들은 “다이어트 산업계에 새 바람을 불러 일으키는 것 아니냐”는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배부르다”

그러나 모어웻지 박사는 “둔감화 과정은 다양한 요소에 의해 촉발되고 억제되기 때문에 단순히 규정할 수 없다”며, 실험이 아직은 이론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음을 인정했다.

이와 더불어 “실제 행동을 억제할 만큼의 효과를 발휘하려면, 상상이 그만큼 구체적이고 자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테이크나 사탕을 머리 속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는 둔감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음식을 입에 넣고 씹으면 맛을 음미하는 구체적인 상상을 지속적으로 반복해야 효과가 있다.

그래도 ‘정신 차원의 상상이 실제 음식 소비행위에 관여할 수 있다’는 발견이 주는 의미는 크다. 어쩌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선언이 “나는 생각한다. 고로 배부르다”는 말로 바뀔 지도 모른다.

이제 한밤중에 누군가 맛있는 음식 사진을 업로드 해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자. 그 음식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마음 속으로 한 입 한 입 씹고 맛보고 즐기는 상상을 하자. 그러면 더 이상 주린 배를 움켜쥔 채 다이어트를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다.

임동욱 기자
duim@kofac.or.kr
저작권자 2010-12-1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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