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케이블방송에서 뱀파이어병을 소재로 다룬 드라마가 방영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한 대학병원 법의학 사무실에 뱀파이어가 햇볕에 노출됐을 때처럼 피부에 이상한 화상과 기포가 형성된 한 구의 시체가 도착하게 된다. 드라마는 이를 둘러싼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렸다.
이 드라마에 나온 의문의 시체가 보이는 증상은 프로피린증(Prophyria)이라고 불리는 희귀병의 하나이다. 프로피린증은 인체 내에서 헤모글로빈 생합성이 저해 받을 때 나타나는 질환이다. 프로피린증은 유전성 질환이므로 근본적인 예방법은 현재까지 없으며, 초기 진단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사망률은 10~40%에 이른다고 보고됐다. 하지만 조기 진단을 통해 초기에 발견되면 포르피린을 만드는 성분을 투여해 정상생활이 가능하다.
프로피린증, 헤모글로빈 합성 저해
헤모글로빈은 적혈구 내 존재하는 색소단백질로서 우리 몸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역할을 한다. 사람이 숨을 쉬면 산소가 풍부한 폐에서 헤모글로빈이 산소와 결합해 혈관을 통해 인체를 돌면서 산소가 부족한 조직에 산소를 전달한다.
헤모글로빈은 철(Fe)과 포르피린으로 구성된 heme(헴), 그리고 단백질 글로빈의 결합이 하나의 구성성분을 이루며 이들 구성성분 4개 모여 하나의 헤모글로빈 분자를 이룬다. 철 원자 1개당 한 분자의 산소가 결합하므로 헤모글로빈 분자 하나 당 산소 4분자가 결합하게 된다. 인체의 피가 붉게 보이는 것은 이 헤모글로빈의 철 성분 때문이다.
heme은 heme은 구성하는 프로피린으로부터 8단계의 생합성 과정을 거쳐 생성된다. 이 8단계마다 각각의 합성에 관여하는 8개의 효소가 존재한다. 선천적 또는 후천적으로 8개 효소 중 첫 단계 효소 이외의 효소 중 하나라도 부족하게 되면 해당 효소가 관여하는 단계의 이전 물질이 몸에 축적되고 헤모글로빈은 생성되지 않는다. 이렇게 축적된 이전 물질로 인해 포르피린증(Porphria)질환이 생긴다.
포르피린증의 특징은 뱀파이어처럼 햇빛에 과민 반응을 보인다는 점이다. 피부에 누적된 포르피린 때문에 자외선에 민감해지기 때문이다. 포르피린증 환자들이 자외선에 노출되면 피부에 물집이 생기거나 눈이 따갑고 색소 침착이 일어난다. 포르피린증 환자들은 자외선을 쬐지 못하며 헤모글로빈 합성 저하로 빈혈까지 생겨 얼굴이 창백해지기 쉽다.
한편 최근 영국에서는 핏기 없는 피부와 날카로운 송곳니 등 뱀파이어의 외모와 상당히 비슷한 일명 ‘뱀파이어 증후군’을 앓는 형제들이 소개됐다. 이들 형제가 앓고 있는 질환이 전 세계 단 7천명이 앓는 희귀질환인 외배엽이형성증(Hypohidrotic Dysplasis)이다. 이 병을 앓는 환자는 햇빛에 노출되면 생명이 위험해지고 피부색이 창백해지며 치아가 잘 자라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늑대인간 증후군, 유전자 이상으로 밝혀져
마이클 니콜스 감독의 1994년작 영화 울프(Wolf)는 영화 제목처럼 평범한 직장인이 늑대인간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어느 일요일 밤 외딴 시골길에 차를 몰던 주인공 랜탈은 어둠 속 물체와 충돌을 하고 차에 치인 물체를 찾아간다. 정체불명의 물체는 다름 아닌 늑대. 이 늑대에게 팔이 물린 랜탈은 이후 점점 늑대인간으로 변해간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많이 회자된 늑대인간은 늑대인간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희귀병의 하나로 밝혀졌다. 늑대인간이 처음 널리 알려진 것은 1850년대 온몸과 얼굴에 털이 나고 입이 튀어나온 멕시코 여성 줄리아 파스트라나였다. 당시에는 원인을 알 수 없었지만 지난 2009년 중국의학과학원과 베이징연합의대 연구팀은 중국에서 보고된 늑대인간 가족을 조사한 결과 늑대인간 증세가 유전자의 이상 때문이라고 밝혔다.
늑대인간 증후군은 선천성 전신다모증의 하나로 온몸에 검은 털이 자라는 특징이 있다. 이 증후군의 하나인 선천성 불치 전신다모증의 경우에는 잇몸 조직이 커지는 증상까지 함께 진행돼 입 부분이 앞으로 튀어나와 늑대인간에 보다 더 가까운 형상을 띠게 된다.
중국 연구팀은 선천성 불치 전신다모증을 겪는 중국의 세 가족을 대상으로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17번 염색체의 이상으로 늑대인간 증후군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염색체의 결함이 DNA 복제 시 유전자 4~8개에 영향을 미쳐 늑대인간 증후군 증세를 일으키는 것으로 드러났다.
오돈 부부, ADL 질환 치료제 ‘로렌조 오일’ 개발
오돈 부부는 로렌조라는 5살 난 아들이 있다. 로렌조는 어느 날 원인도 치료법도 모르는 ALD라는 진단을 받고 곧 죽게 될 것이라고 의사는 말한다. 이때부터 오돈 부부는 병마와 싸우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마침내 인간승리를 하게 된다.
로렌조가 진단받은 ALD는 부신백질이영양증(Adrenoleukodystrophy)으로 성염색체인 X 염색체 유전자 이상으로 발병한다. ALD는 지방 구성성분의 하나인 긴사슬지방산이 분해되지 않고 뇌에 들어가 신경세포를 파괴하는 질환이다. 10세 이하 남자 어린이에게 주로 발생하며 5~10세 유아기 때 발병하는 소아형은 첫 증상이 나타난 지 6개월 만에 시력과 청력을 잃고 2년 내 식물인간이 된 후 사망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돈 부부는 각고의 노력 끝에 로렌조의 병이 포화지방산의 수치와 연관돼있음을 알게 되고 올리브유가 이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음을 밝힌다. 오돈 부부는 영국의 생화학자 돈 수데비 박사의 연구에 힘입어 올리브유 추출에 성공하고 이 올리브유를 처방한 결과 로렌조의 포화지방산 수치는 낮아진다. 바로 로렌조 오일의 탄생이다. ALD는 이 때문에 로렌조 오일이라고 불리며 조지 밀러 감독은 오돈 부부의 실화를 바탕으로 1993년 로렌조 오일이라는 영화를 제작했다.
색소성 건피증, 햇빛 쬐면 피부 말라 위축
2차 대전 직후 영국의 외딴 저택에서 남편을 잃고 사는 그레이스는 빛에 노출되면 안 되는 희귀병을 가진 두 자녀와 살고 있다. 그레이스는 두 아이를 빛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커튼은 항상 쳐져 있어야 하고 문은 항상 잠겨 있어야 한다’는 절대 규칙을 하인들에 가르치지만 새로운 하인들이 이 집에 오면서 그레이스 집안은 알수 없는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은 색소성 건피증과 스릴러 장르를 버무려 2002년 디 아더스(The Others)를 연출했다. 그레이스 아이들이 겪는 희귀질환이 색소성 건피증은 햇빛에 노출되면 얼굴과 손발 들이 점점 붉어지는 상태가 되풀이되고 모반 등의 반점이 생겨 피부가 말라 위축되는 질환이다.
1968년 J.E 클리버가 환자의 피부배양세포에서 자외선으로 생기는 DNA의 결함을 회복하는 효소에 결손이 있음을 발견했다. DNA는 자외선, 열 충격, 화학물질, 방사선 등 다양한 요인에 손상을 받을 수 있는데 인체 내 손상된 DNA를 복구하는 자연복구시스템을 갖고 있다.
색소성 건피증은 이 복구시스템에 이상이 생겨 DNA 손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증상이다. DNA가 제대로 복구되지 못하면 돌연변이가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 돌연변이 세포들이 계속 분열을 하면 암으로 발전하게 된다.
혈우병,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 몰락 초래 제기
혈우병은 X 염색체에 있는 유전자의 선천성, 유전성 돌연변이로 혈액 내에서 피를 굳게 하는 역할을 하는 응고인자가 부족해 발생하는 출혈성 질환이다. 퓰리처상 수상작가인 로버트 K. 매시는 아들이 혈우병이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혈우병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매시는 이 과정에서 역사상 가장 유명한 혈우병 환자였던 러시아의 마지막 황태자 알렉시스와 그의 부모인 니콜라스 2세, 알렉산드라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 이야기를 소설 ‘니콜라스와 알렉산드라’를 완성했다.
니콜라스 2세는 외아들 알렉시스의 혈우병을 고치기 위해 시베리아 출신의 신비주의자 라스푸틴에게 의지하게 된다. 황족의 절대 신임을 얻은 라스푸틴은 황후 알렉산드라를 등에 업고 절대권력 행사, 급기야 로마노프 왕조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프랑클린 J, 샤프너 감독은 1971년 동명소설을 영화로 제작해 아들의 혈우병을 고치기 위한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스2세의 노력이 세계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영화적 상상력으로 빚어냈다. 역사학계에서는 알렉시스의 혈우병 때문에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으며 라스푸틴이 없었다면 레닌도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도 제기됐다.
- 이성규 객원기자
- henry95@daum.net
- 저작권자 2010-11-2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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