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왓슨과 크릭이 DNA 이중나선구조를 밝힌 이래, 생명과학은 DNA의 기능을 규명하는 데 초점이 모아졌다. 지난 2001년 시작된 인간게놈프로젝트는 인간의 DNA 염기서열을 밝히면서 DNA를 이용한 다양한 의학연구에 기폭제로 작용했다.
DNA에 대한 연구가 이렇게 폭발적으로 이뤄지는 동안, DNA의 동생뻘인 RNA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면이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최근 작은 RNA(small RNA)가 인체 내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RNA에 대한 연구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DNA와 구조적으로 유사하면서 생명현상에 없어서는 안 될 RNA란 무엇인지 살펴보자.
RNA, 생명의 기원으로 입증, 유전정보와 효소기능 함께 갖고 있어
RNA가 DNA의 동생뻘로 여겨지는 이유는 ‘DNA가 복제를 통해 자기 자신을 만들고, 전사를 통해 RNA를 만들면, RNA가 해석을 통해 단백질을 만든다’는 생물학의 중요한 개념인 센트럴 도그마(Central Dogma) 덕분이다. 즉 생명현상은 DNA→RNA→단백질이라는 일련의 흐름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RNA는 DNA의 동생도 아닐뿐더러, DNA보다 먼저 세상에 등장한 생명의 기원이다.
RNA가 생명의 기원이라는 ‘RNA월드 가설’은 생명의 기원이 DNA냐, RNA냐, 단백질이냐에 대한 의문에서 비롯됐다. DNA가 자기복제를 하기 위해서는 복제의 기능을 담당하는 효소(단백질)가 필요한데, 그렇다면 이 단백질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하는 것은 과학자들의 오랜 의문이다. 즉 DNA(닭)가 먼저이냐, 단백질(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인데 과학자들은 그 해답을 RNA에서 찾았다.
여기에는 RNA가 효소의 기능(RNA를 스스로 복제할 수 있는 기능)도 할 수 있는 리보자임(Ribozyme)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DNA는 단백질 없이는 스스로 복제를 할 수 없는데 반해 RNA는 단백질(효소) 기능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효소 기능을 통해 DNA와는 달리 스스로 복제를 할 수 있으므로 초기 생명의 기원은 RNA일 것이라는 내용이 RNA월드 가설의 핵심이다.
이후 RNA가 유전정보는 보다 안정적 구조인 DNA로 넘기고, 효소기능은 단백질로 넘겨주도록 진화했을 것으로 과학자들은 추측한다. RNA가 유전정보를 저장하는 유전물질로써의 기능 이외에 스스로 복제할 수 있는 효소의 기능도 가지고 있다는 RNA월드 가설은 1986년 월터 길버트에 의해 제기됐다. 월터 길버트는 DNA 해석방법인 ‘맥섬길버트의 방법’을 찾아낸 공로로 1980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실제로 분자구조를 보면 DNA가 RNA보다 훨씬 안정적인 구조를 띄고 있다. DNA와 RNA는 모두 기본적으로 탄수화물의 일종인 오탄당(탄소 다섯 개로 구성된 당의 일종)을 기본 골격으로 가지고 있다. 이 오탄당에 산소가 붙어 있느냐의 유무에 따라 DNA와 RNA가 결정된다. 오탄당의 기본골격에서 산소가 제거되면 이를 DNA라고 부른다. DNA의 머리글자인 D는 Deoxy의 약자로 오탄당에서 산소를 제거했다는 의미다.
여기에서 산소가 있고 없고가 분자 구조의 안정성에 영향을 끼친다. 분자 구조적으로 산소가 있으면 이웃한 화합물과 상대적으로 반응이 더 잘 이뤄지게 된다. 때문에 산소를 갖고 있는 RNA의 경우 화학적으로 반응이 더 잘 일어나기 때문에 DNA보다 불안정하고, 상대적으로 산소를 제거한 DNA의 경우 반응이 덜 일어나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안정적인 것이다. 이는 RNA가 구조적으로 안정적인 DNA에 유전물질의 기능을 넘겨줬다는 RNA월드 가설에 힘을 실어준다.
DNA와 RNA 분자 구조의 안정성의 차이는 DNA바이러스와 RNA바이러스의 안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에이즈를 비롯한 RNA바이러스의 경우 DNA바이러스에 보다 상대적으로 불안정한 구조로 인해, 돌연변이를 자주 일으키고 이는 결국 항바이러스 치료제에 대한 내성을 키워 치료를 어렵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최근 과학자들은 RNA월드 가설이 옮음을 실험적으로 입증하기도 했다. 지난 2009년, 존서덜랜드맨체스터대 연구팀은 ‘DNA보다 RNA가 먼저’라는 가설을 입증, 과학저널 ‘네이처’에 발표했다.
작은 RNA, 전령 RNA기능 억제 통해 생명현상 조절자 역할
이처럼 생명의 기원으로 지목되는 RNA는 인체 내에서 운반 RNA (tRNA, transfer RNA), 리보솜 RNA (rRNA, ribosomal RNA), 전령 RNA (mRNA, messenger RNA), 작은 RNA (small RNA)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전령 RNA는 단백질 유전정보를 단백질 공장인 리보솜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운반 RNA는 이 유전정보에 맞는 아미노산(단백질은 20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돼 있다)을 리보솜에 전달한다. 리보솜 RNA는 리보솜을 구성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전령 RNA인데, 단백질은 이 전령 RNA를 주형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전령 RNA의 발현수준을 세포 내에서 조절하는 것은 생명현상을 조절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 RNA연구에서 주목받는 RNA는 작은 RNA이다. 이 작은 RNA가 바로 전령 RNA의 발현을 세포 내에서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작은 RNA에는 siRNA (small interfering RNA)와 마이크로 RNA (miRNA, micro RNA) 등이 있다. 이들 작은 RNA는 다른 RNA (전령 RNA, mRNA)에 상보적으로 결합해 전령 RNA의 기능을 조절하는 데, 이러한 현상을 RNA 간섭 (RNA interference, RNAi)이라고 부른다.
RNA간섭은 전사 후 유전자 침묵이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알려져 왔다. 앤드류 파이어와 크레이그 멜로는 예쁜꼬마선충(C. Elegance)에서의 RNA 간섭현상을 밝혀낸 1988년 논문의 공로로 200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siRNA와 miRNA 등 작은 RNA는 특정 유전자의 기능을 억제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세포내 RNA가 어떤 환경으로 RNA 절단 효소에 의해 절단되면 RNA간섭이 개시된다. 이렇게 절단된 짧은 조각을 siRNA라고 부르는 데, 이들은 세포내 단백질 복합체와 결합해 표적 전령 RNA에 결합한다.
siRNA와 전령 RNA는 서로 상보적이어서 결합이 가능하다. 이렇게 siRNA가 전령 RNA에 결합하면 전령 RNA의 절단을 유도해 표적 전령 RNA가 단백질로 번역되는 과정이 붕괴된다. siRNA는 목표 전령 RNA와 완벽한 결합(perfect match)을 통해 목표 전령 RNA의 기능을 붕괴한다.
한편 마이크로 RNA(miRNA) 역시 RNA절단 효소에 의해 잘려져서, 목표 전령 RNA에 결합하는 기작은 siRNA와 동일하지만 siRNA와는 달리 완벽한 결합을 하지는 않는다. 이를 완벽한 결합에 비해 부분 결합(partial match)이라고 부른다. 즉 마이크로 RNA는 부분 결합을 통해 전령 RNA를 붕괴(degradation)하는 역할과 단백질 번역을 억제하는 역할 두 가지를 수행한다.
이 중 어느 쪽의 역할이 마이크로 RNA의 주된 역할인지는 아직 연구 중에 있다. 마이크로 RNA는 전령 RNA를 붕괴하는 역할, 단백질 번역을 억제하는 역할, 이 두 기작을 동시에 하는 역할 등 3가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이 같은 RNA간섭기술에 착안해 작은 RNA를 응용, 암이나 여러 난치성 질환 치료제 개발에 활용한다. 즉 암과 관련된 유전자가 세포 내에서 과발현 됐을 경우 이 과발현된 암 유전자에 작은 RNA 기술을 접목, 전령 RNA 수준에서 암 세포를 억제하는 것이다.
목표 전령 RNA에 상보적인 siRNA를 실험실에서 디자인해 인체 내로 주입하면 이 siRNA와 목표 전령 RNA가 결합을 통해 전령 RNA 기능이 억제된다. 과학자들은 siRNA 기술을 적용한 다양한 항암제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이 외에도 마이크로 RNA는 형태형성 시간을 조절하거나 줄기세포와 같이 미분화되거나 불완전하게 분화된 세포 유형을 유지하는 등의 발생 과정을 조절할 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마이크로 RNA는 동식물 기관 형성, 생명체 탄생과 성장, 신호 전달, 면역, 신경계 발달, 사멸 등 생명 현상 전반에서 중요한 작용을 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과학자들은 “작은 RNA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지의 세계이며, 이를 통해 인류는 질병치료 등 다양한 의학적 발전을 이룰 것”으로 기대했다.
- 이성규 객원기자
- henry95@daum.net
- 저작권자 2010-07-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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