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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이라는 보험이 인류 구한다 [신종플루 특집] 기초과학이 중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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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네이쳐지에는 스페인 독감을 유발한 바이러스를 분리한 결과가 발표되었다. 염기서열 분석결과 그 바이러스는 H1N1 형인 것으로 알려졌고, 특히 조류에서 인간으로 전염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연구자들의 의견이 실렸다.

당시 조류독감으로 몸살을 앓고 있던 세계는 다시 스페인 독감의 악몽이 재현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하지만 해당 논문의 결론은 여전히 논쟁 중이며 스페인 독감의 원인 바이러스가 어떤 종류였는지에 관한 결론도 확실하지 않다. 특히 이중면역확산 검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바이러스를 제대로 분류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1.

스페인 독감의 공포사회학

문제는 이러한 과학적 사실이 아니다. 스페인 독감이 조류에서 건너온 신종 바이러스였을지도 모른다는 단순한 기술만으로 대중이 공포에 사로잡힌 것이 더욱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모든 인플루엔자 A형 바이러스는 조류를 숙주로 한다. 16가지의 HA 단백질과 9가지의 NA 단백질이 모두 발견되는 것은 조류 뿐이다.

또한 다양한 포유류에도 바이러스가 존재하고 항원 대변이를 통해 바이러스의 유전체가 뒤섞일 수 있기 때문에, 스페인 독감의 원인 바이러스가 조류에서 건너왔다는 것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해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놀라운 일이 아니다.

특히 대유행을 유발할 수 있는 바이러스의 아형과 그 독성 및 전염력이 거의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와의 유사성은 별다른 중요성을 갖지 못한다.

독감이 유행할 때마다 부정확한 정보로 인해 공포가 조장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해 수십 년간 연구해온 과학자들의 연구결과가 버젓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언론은 해마다 이러한 공포를 조장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유행하는 모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변종이다. 나아가 대유행을 초래하는 바이러스는 항원 대변이를 통해 드물게 발생하는 신종이다. 따라서 '신종플루'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대유행을 유발하는 모든 바이러스가 신종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정부가 어떤 기준으로 유행하는 바이러스에 이름을 붙이는 것인지는 몰라도, 그 명명만으로 수 많은 양돈업자와 양계업자들이 영향을 받고, 국민들이 쓸데 없는 공포에 휩싸인다는 것은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대중들에게 확실히 알릴 필요가 있다. 그것은 증상이 무엇이고, 언제 백신을 맡아야 하며, 언제 치료제를 먹어야 하는 지와 같은 의학적 정보 뿐만 아니라, 바이러스가 어떻게 전파되며, 어떤 경로로 대유행이 시작되고, 종간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 인지와 같은 과학적 정보와, 나아가 백신의 개발이 어떻게 이루어지며, 치료제의 개발에 장애가 되는 것은 무엇인지에 관한 경제학적/사회학적 정보를 모두 포함해야 한다2.

오히려 과학적인 관점에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이미 정복되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자들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생활사를 아주 상세하게 알고 있다. 백신의 개발도 원리적으로 아주 간단한 일이며 치료제의 개발을 위한 준비도 끝난 상태다. 문제는 과학이 아닌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과학자들이 만들어준 기회를 정부와 세계가 어떻게 현명하게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다. 백신을 생산하는 공정을 단순화하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일, 조금 더 효과적인 치료제를 개발하는 일은 더 이상 과학의 문제라기보다는 누가 자본을 투자할 것인가의 문제가 되었다. 경제학과 인류학, 그리고 사회학의 영역이라는 뜻이다.

독감의 인류학

예를 들어, 2009년 신종플루가 유행한 직후 의료 '인류학(Medical Anthropology)'라는 저널에서는 신종플루의 인류학이라는 주제로 특집호를 꾸렸다. 이들이 주목하는 것은 신종플루로 인해 야기되는 문제들이 단순한 과학과 의학의 영역이 아니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류학적인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3.

예를 들어 소외계층에 치료제를 공급하는 문제와 저개발 국가에 백신을 공급하는 문제는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독감의 확산을 모니터링하고 이러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모으는데 인터넷을 이용하는 문제도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나아가 독감의 대유행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보건의학자와 예방의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해당 분야의 인력을 창출하는 일도 정치와 행정의 영역이지 과학자가 나설 수 있는 분야는 아니다. 어느 정도의 자본을 어떤 연구에 투자할 것인지의 문제도 경제학자들이 나서야 하는 분야다. 신종플루라는 현상은 과학과 의학만이 아니라 인류학, 사회학, 그리고 경제학이 총동원되어야 하는 종합학문의 영역인 것이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과학자들은 할 일을 다했다는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순수한 인본주의로 과학자들이 거둔 승리를 누가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다. 천문학적인 투자를 필요로 하는 치료제의 개발에 뛰어들 국내 제약회사는 없다.

그렇다면 정부는 어떻게 치료제를 확보하고 이를 공급할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해마다 터지는 홍수에 미온적으로 대처해온 역사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라는 새로운 홍수에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언제까지 땜질을 계속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진화가 땜질의 역사라 해서 사회의 발전이 땜질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는 허버트 스펜서가 생각했듯 자연선택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면역반응을 이용해 죽은 바이러스를 백신으로 쓸 생각을 하는 것인 인간이라면, 과거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워 미래에 대처하는 것도 인간이다. 또한 정부와 행정당국은 그러한 인간들의 집합인 것이다.

과학의 면역학

나아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둘러싼 과학의 역사를 조망해볼 필요가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과학자들이 때로는 우연하게, 때로는 조직적으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비밀을 해부해왔다. 우리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백신을 만들 수 있게 된 이유는 그러한 다양한 과학자들이 존재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처럼 다양한 과학자들이 존재할 수 있도록 투자했던 정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연구의 역사는 면역학의 역사와 궤를 함께 한다고 말했다. 이 비유를 다시 사용해보자면 과학에 대한 투자는 면역계가 항체를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우리 몸은 닥쳐올 지 모를 모든 위험에 대비해 무작위적으로 항체를 생산한다. 그것이 경제적으로는 무의미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기나긴 진화의 역사에서 유기체의 면역계는 그러한 방법을 선택했다. 거의 대부분의 항체를 만드는 백혈구는 그 항체에 맞는 항원이 침입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하지만 그 다양함의 레퍼토리는 언제고 침입할 미지의 항원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대응책이다.

과학에 대한 투자도 이와 같다. 당장의 경제적인 이익만 생각하는 집중적 투자는 장기적으로는 여러 가지 위험에 대한 면역력을 감퇴시킨다. 다양성의 보험이 견고하게 성을 쌓아 놓았을 때에야, 예측 할 수 없는 미래의 위험이 사라지게 된다. 그것이 기초학문에 대한 장기적인 안목의 투자가 절실한 이유다. 무의미해 보이지만 그렇게 다양하게 자라난 과학자들 중 누군가는 언제가 인류의 가장 위험한 순간에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지식을 제공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유정란을 이용해 백신 개발의 초석을 다진 에른스트 굿파쳐는 1946년 <연구와 의학적 실천>4 이라는 글을 통해 의학자들에게 기초연구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더불어 그는 많은 질병들이 의학 단독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임으로 역설한다. 계란으로 백신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함으로써 많은 생명을 살린, 하지만 우리에겐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던 이 과학자의 말로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의사들이 권위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다양한 영역, 즉 질병의 사회적 측면이라는 영역이 존재합니다. 만약 의사들이 환자의 가족, 유전, 집안 환경, 경제적 능력 등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사무실에 앉아 판단하는 현재보다 더욱 양질의 진단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중략)

연구와 사회적 고려는 의사라는 직업에게 함께 고려되어야 합니다. 갈수록 의학연구는 자연과학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사회과학과 인문학이 의학에 줄 수 있는 긍정적인 면들을 고려해보았을 때, 이 분야들의 상호작용은 의과대학이 사회에 기여하는 데에 크게 일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5"

1. Molecular virology: Was the 1918 pandemic caused by a bird flu? Mark J. Gibbs and Adrian J. Gibbs. Nature 440, E8 (27 April 2006)
2. How to win trust over flu. Nature 461, 698 (8 October 2009)
3. Medical Anthropology, Volume 28, Issue 3 July 2009
4. Research and Medical Practice. Goodpasture EW. Science. 1946 Nov 22;104(2708):473-476.
5. 굿파쳐의 전기는 < ERNEST WILLIAM GOODPASTURE. October 17,1886-September 20,1960
BY ESMOND R. LON> 미과학회보를 통해 무료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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