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가 기승이다. 하지만 신종플루에 대한 국내의 정보는 대부분 치료제나 백신, 그 위험성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사이언스타임즈>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한 과학적인 사실들과, 백신 치료제의 개발에 관해 국내에서 조명하고 있지 않은 이야기들을 준비했다.
1932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최초로 분리된 이후, 과학자들은 이 바이러스가 어떻게 매년 유행할 수 있는지, 또 백신 개발이 왜 어려운지를 밝혀낼 수 있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만큼 오랫동안 자세히 연구된 바이러스는 별로 없다. 하지만 백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또 타미플루라는 치료제의 개발은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에 관해 알려주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독감 백신을 계란으로 만든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비롯한 많은 바이러스 백신이 유정란을 이용해 생산된다. 특히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조류와 인간 모두를 감염시킬 수 있기 때문에 유정란을 이용해서 바이러스를 대량 생산하는 것이 가능하다.
백신의 원리는 단순하다. 우리 몸의 면역계에 병원균에 대한 정보를 흘리는 것이다. 면역계는 우리 몸에 침입한 외부물질에 대한 정보를 기억했다가 다시 똑같은 물질이 침입했을 때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기억력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계란에서 대량으로 복제된 바이러스를 비활성화 시킨 후에 몸에 주사하면 기억력이 생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경우 껍질 단백질이 강력한 항원으로 기능하기 때문에, 비활성화 시킨 바이러스는 복제를 할 수 없지만 면역반응을 유도할 수는 있다. 그렇게 우리 몸 속에는 바이러스에 대한 기억이 생성된다.
계란의 이름으로: 닭의 역설바이러스의 배양에 계란을 이용하자는 엉뚱한 생각은 1931년 앨리스 우드러프와 에른스트 굿파쳐(Alice Miles Woodruff and Ernest W. Goodpasture)라는 두 과학자에 의해 시작되었다1. 굿파쳐의 제자였던 우드러프가 닭에 감염되는 계두 바이러스(Fowl pox virus)를 유정란과 닭 배아를 이용해 증식하고 분리 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 방법의 개발로 인해 천연두 바이러스를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바이러스를 유정란을 이용해 증식하고 분리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백신의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바이러스의 대량증식과 분리가 가능해진 것이다2.
우드러프가 한 일은 아주 단순한 장난이었다. 계두 바이러스에 감염된 계란에 빛을 비추면 봉입체(Inclusion Body)라고 불리는 검게 죽은 세포들로 이루어진 덩어리를 볼 수 있다. 우드러프는 쉽게 구분 가능한 이 죽은 세포들을 조심스럽게 떼어다 닭의 피부 위에 살짝 발랐다. 결과는 놀라웠다. 닭이 계두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다. 봉입체가 바이러스를 다량으로 함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931년 바이러스의 배양이 가능해진 후, 2차 세계대전 중인 1940년 미군에서 최초로 비활성화된 바이러스를 백신으로 사용하게 된다. 현재 전세계에서 약 3억 개의 백신이 매해 생산된다. 얼마나 많은 수의 유정란이 사용될 것인지는 상상해보지 않아도 자명해 보인다.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말처럼, 조류에서 유래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엄청난 수의 조류를 역으로 이용하는 셈이다. 조류독감이라는 용어 때문에 수많은 닭들이 폐사 당하고, 닭고기 소비가 줄어들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오히려 철새들이 독감을 유행시키는 1차 원인이고, 닭은 사람들을 구하는 백신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기 때문이다. 조류독감이 유행할 때, 닭이 없으면 백신도 없다는 사실을 한번쯤은 기억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독감 치료제의 정치경제학
독감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백신이지만,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처럼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병원균의 경우엔 최초 감염자들을 치료할 치료제가 필요하다. 언론에서 매일 언급되는 '타미플루(tamiflu)'가 바로 그 치료제 중 가장 선두에 서 있는 물질이다. 타미플루라는 이름은 오셀타미비르(Oseltamivir)라는 물질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타미플루와 함께 사용되는 약으로 리렌자(Relenza)가 있다. 두 약 모두 바이러스의 껍질 단백질인 NA의 기능을 저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NA는 바이러스가 세포에서 세포로 이동하기 위해 필요한 단백질이다. NA는 HA 단백질과 세포막의 사이알릭 산과의 결합을 끊음으로써 바이러스가 다른 세포로 이동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역사적으로 가장 먼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치료제로 사용된 것은 리만티딘(rimantidine)과 아만타딘(amantadine)이다. 이 약들은 인플루엔자 A형 바이러스만이 가지고 있는 M2라는 단백질을 저해하는 물질들이다. 하지만 중추신경계에 대한 부작용이 발견되고 내성을 지닌 바이러스가 자주 등장한다는 이유로 현재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가장 이상적인 치료제의 표적은 바이러스가 세포 내로 침입하는 데 필요한 HA 단백질이다. 하지만 HA 단백질의 돌연변이율이 매우 높은데다, HA를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물질의 개발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돌연변이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NA 단백질을 표적으로 삼아 약을 개발한 것은 효과적인 전략이었고 성과가 있었다.
NA 단백질은 효소다. NA 단백질의 저해제를 개발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의 지식이 총동원되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이 단백질의 기능을 알아내기 위해 많은 분자생물학자들이 노력을 기울였다. 이후 구조생물학자들이 NA 단백질의 구조를 풀어냈다. 효소가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활성화 영역(active site)의 아미노산들이 결정되었고, 효소의 작동방식이 규명되었다.
이 후 이 활성화 영역에 들어맞는 저해제인 Neu5Ac와 단백질 복합체의 구조가 풀렸다. 이후 많은 화학자들이 달려들어 약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리렌자로 불리는 자나미비르(zanamivir)는 이러한 과학자들의 노력에 의해 탄생한 최초의 NA 저해제다.
특히 지속적인 구조생물학자들의 노력으로 NA 단백질의 활성화 영역이 인플루엔자 A형과 B형 모두에서 보존되어 있다는 점이 밝혀지면서, NA를 표적으로 한 신약개발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주로 제약회사에서 진행된 이 연구의 주된 임무는, 활성화 영역에 좀더 잘 들어맞고, 효과적인 약을 디자인하고 합성하는 일이었다. 지속적인 제련작업이 이루어졌다.
이후 시키믹 산(shikimic acid)을 주형으로 하는 합성물질들이 사용되면서 GS 4071이라는 물질이 발견된다. 이 물질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전염을 효과적으로 저해한다는 사실은 당시 길리어드사에 근무중 이던 한국인 과학자 김정은 박사의 주도로 진행되었다. 그것이 1997년의 일이었다3.
이런 엄청난 발견이 2005년 황우석 박사의 경우처럼 화제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경이롭다. 이후 경구복용을 위해 약간의 구조가 변경되었고 GS 4104라는 이름의 타미플루가 세상에 등장했다
타미플루가 좋은 약이기는 하지만, 여기서 개발이 끝나서는 안 된다4. 타미플루를 합성하기 위해 필요한 최초물질은 시키믹 산으로 중국에서 자라는 식물인 팔각회향에서 원료를 추출한다. 문제는 팔각회향이라는 식물이 약을 값싸게 대량생산하는 데에는 그리 적절한 원료물질이 아니라는 데 있다.
따라서 N-글루코사민과 같은 값싼 재료로 NA 저해제를 만드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아무리 제약회사가 기업이라지만 독감약이 터무니없이 비싸고 귀하다는 것은 독감이라는 전염병의 위험성을 고려했을 때 말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기업만이 아니라 정부와 WHO가 적극적으로 치료제의 개발에 나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학자의 인본주의적인 영혼은 기업의 수지타산에 쉽게 묻혀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나아가 HA 단백질 및 바이러스의 복제효소에 대한 저해제의 개발도 필수적이다. 여러 가지 약을 칵테일로 복용했을 때 일반적으로 효과가 높기 때문이다5.
하지만 누가 이러한 개발에 자본을 투자할 것인가가 문제다. 왜냐하면 로슈사와 같은 거대제약회사가 또 다른 타미플루를 개발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그리고 독감의 대유행이 단순히 과학으로 끝나지 않는 한 가지 이유다.
1. AM Woodruff, EW Goodpasture. The American Journal of Pathology, 1931 2. Cures Out of Chaos: How Unexpected Discoveries Led to Breakthroughs in Medicine and Health. By M. Lawrence Podolsky. Amsterdam, Harwood Academic, 1997 3. Influenza neuraminidase inhibitors possessing a novel hydrophobic interaction in the enzyme active site: design, synthesis, and structural analysis of carbocyclic sialic acid analogues with potent anti-influenza activity. Kim CU, Lew W, Williams MA, Liu H, Zhang L, Swaminathan S, Bischofberger N, Chen MS, Mendel DB, Tai CY, Laver WG, Stevens RC. J Am Chem Soc. 1997 Jan 29;119(4):681-90. 4. A Global Lab Against Influenza. SCIENCE. VOL 293. 7. SEPTEMBER 2001 5. The war against influenza: discovery and development of sialidase inhibitors. Mark von Itzstein. Nature Reviews Drug Discovery 6, 967-974 (December 2007) |
- 김우재 UCSF 박사후 연구원(포스텍 바이러스학 박사)
- korean93@postech.ac.kr
- 저작권자 2009-12-1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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