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은 회사 입구에서 출입카드 대신 손가락을 갖다 댄다. 순식간에 제롬의 혈액에서 DNA가 채취된 후, 출입 승인의 파란 불이 들어온다. 영화 ‘가타카(Gattaca, 1997)’ 속 한 장면이다. 신원 확인을 위해 개개인의 DNA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 해 관리하는 영화 속 모습은 더 이상 상상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랍에미리트 정부가 1년 안에 자국민은 물론 자국 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DNA를 채취하여 10년 안에 전 국민의 DNA(유전자) 데이터베이스를 완성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확보된 DNA 정보는 미제 사건 해결이나 재해로 인한 시신 신원 확인 등에 사용될 것이라고 한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에서는 이미 범죄자의 DNA를 채취해 범죄수사에 활용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성범죄나 살인 등 강력범죄자의 유전자의 데이터베이스를 반영구적으로 보관하기로 하는 관련 법률이 지난 20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1%도 안 되는 차이로 구별
DNA는 우리 몸 세포의 핵 안에 돌돌 감겨져 있는 상태로 존재한다. 인간의 1개의 세포 속 감겨져 있는 DNA를 풀면 그 길이가 1.8m나 된다. 인간의 DNA에는 23억 개나 되는 수많은 유전 암호를 담고 있으나 이는 전체 DNA의 2% 정도밖에 되질 않는다. 이를 엑손(exon)이라 한다.
나머지 98%는 아무 의미 없는 유전자들의 조합인 것이다. 학자들은 이 부분을 '쓸모없다' 하여 쓰레기 DNA(Junk DNA) 즉, 인트론(intron)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최근 이 부분이 유전 정보는 담고 있지 않으나 발생 진화, 유전자 발현 조절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연구를 진행 하고 있다.
이 쓰레기 DNA에서 사람마다 다른 염기 서열이 관찰되기 때문에 이 부분을 통해 누가 누구인지를 가려내게 된다. 하지만 인간의 DNA는 99% 이상이 서로 같은 염기서열을 갖고 있고 1%도 안 되는 일부분의 차이를 갖게 된다.
100억분의 1g만 있어도
DNA는 범인의 땀이 밴 복면이나 피다 버린 담배꽁초, 먹다 버린 음료수 캔에서도 채취가 가능하다. 아주 소량의 DNA만 있어도 분석이 되기 때문이다. 얼마나 소량까지 가능할까. 전문가들은 100억분의 1g만 있어도 정보는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앞서 설명했듯이 DNA는 혈액, 머리카락, 침, 땀, 정액 등에서 채취가 가능하며 아랍에미리트 정부는 볼 안쪽 상피 세포를 통해서 얻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볼 안쪽을 면봉으로 살짝 긁는 방법으로도 세포를 얻을 수 있다.
DNA을 분석하는 방법은 추출, 증폭, 분석의 3단계를 거치게 된다. 혈액이나 머리카락 등에서 추출된 DNA는 PCR이라는 중합효소연쇄반응으로 분석 부분 양을 100만 배 이상 증폭시킨다. 아주 소량의 DNA로도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이 증폭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증폭된 길이가 다른 DNA 가닥들을 전기영동장치, 즉 음극을 띠는 DNA를 양의 전극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해주는 전기 장치로 분리하면 DNA의 길이에 따라 이동되는 속도가 달라져 각각 다른 위치에 DNA가 놓이게 된다. 이 DNA 이동거리 차이를 그래프화 분석을 하게 된다.
범죄 확인 외에도 DNA 감식을 통해서 해결하는 사건들은 다양하다. 친자 확인, 간통 확인, 실험 결과 조작 확인 등 여러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개개인 DNA 정보는 편리성 뿐 아니라 정확성까지 갖춘 유용한 신분 증명임에 틀림없으며 그 활용 범위의 다양화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DNA 채취 및 보관은 인권침해냐 사회 안정망 구축이냐는 팽팽한 엇갈린 주장들로 그 이용에 한계가 있다.
- 김현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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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09-10-2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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