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개봉한 영화 ‘워낭소리’가 100만 관객을 동원하며 독립영화의 새 지평을 열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독립영화가 제2의 ‘워낭소리’로 주목을 받고 있다. 바로 ‘낮술’이다. 지난 2월 5일 개봉한 낮술은 15일까지 1만 581명의 관객이 관람(영화사 진진 집계), 독립영화 흥행의 기준이 되는 1만명을 가볍게 돌파했다.
단돈 1천만원으로 제작한 영화 낮술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영화는 실연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강원도 정선으로 여행을 떠난 소심한 청년이 5박 6일 동안 술과 여자의 유혹에 빠지는 과정을 유쾌한 시각으로 담아낸다. 특히 낮술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주구장창 술을 마셔대는 이 영화는 그 포스터 글귀가 압권이다. ‘첫 잔에 웃고 막잔에 눈물 쏙 빼는’ 낮술이다.
영화와는 관련 없는 얘기지만, 이 기사를 보고 있는 직장인이나 대학생 모두 말 그대로 낮술에 웃다가 울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평소 주량을 생각하고 마셨다가 예상보다 빨리 취해 고생한 경험 말이다. ‘아비 어미도 몰라보는 낮술’이라는 어르신들의 말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왜 낮술은 빨리 취할까?
왜 낮술은 빨리 취할까?
낮술이 왜 빨리 취하는가에 대한 근거로는 여러 가지 설이 주장되고 있다.
첫 번째로는 신체 리듬의 변화가 꼽힌다. 일반적으로 밤에 잠이 오고, 하루에 3번 배가 고픈 것과 같이 사람은 대개 일정한 신체 리듬을 가지고 있고, 이에 적응돼 있다. 보통 음주를 하는 시간이 저녁이기 때문에 낮에 마시는 술이 더 빨리 취한다는 것이다.
다른 견해도 있다. 아침이나 낮의 술은 신체 장기에 영향을 주고 밤의 술은 뇌에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다.
실험 쥐에게 알코올을 투여해 시간대별 신체조직의 감수성을 조사한 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몸 속 장기의 알코올 감수성은 저녁에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이는 감수성이 가장 낮은 시기에 비해 7배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즉 신체의 감수성이 고조되는 것은 아침이고 뇌의 감수성이 높아지는 것은 밤이라는 것이다. 온도 차이라는 가설도 있다. 낮에는 비교적 밤보다 기온이 높기 때문에 혈관이 확장돼 알코올이 혈관을 흐르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분석으로, 혈중 알코올 농도가 밤보다 빨리 증가한다는 것이다. 또한 낮 동안에는 신진대사가 빠르기 때문에 알코올의 흡수 정도도 빠르다고 한다.
한편 낮에는 몸의 활동이 활발하므로 에너지원이 필요한데, 에너지원으로 쓰이는 혈당이 부족해 신체기능이 더 저하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낮술이 빨리 취한다’는 것을 증명한 연구결과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설(說)은 어디까지나 說일 뿐이다.
실제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에서는 오전 7시·11시, 오후 7시·11시 등 네 가지 시간대별로 음주 후 인체 반응을 측정한 결과 오후 7시가 알코올이 가장 서서히 흡수되면서 취기가 많이 오른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실제 증명된 연구결과는 없어
낮술에 고생한 기억이 있는 독자분이라면 이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통계화된 연구결과는 없지만, 다행히 낮술에 한바탕 난리를 쳐본 사람들이 승복할 만한 가설이 하나 남아 있다.
바로 낮에 먹는 술은 짧은 시간 내에 많이 마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술에 취하는 정도가 마시는 속도와 양에 크게 좌우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니, 지끔껏 나온 가설들 중 가장 과학적 사실에 가까운 셈이다.
문제는 낮에 먹는 술이 ‘짧은 시간 내에 빨리 먹는다’는 행동양태가 ‘참’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만약 이 기사를 읽는 한 연구원이 실험에 성공한다면, 이그노벨상을 수상한 자랑스런 3번째 한국인이 될지도 모른다.
‘엽기노벨상’이라 불리는 이그노벨상은 1999년 권혁호 씨가 향기 나는 정장을 개발한 공로로 환경보호상을, 2000년 문선명 통일교 교주가 1960년 36쌍에서 시작해 1997년 3천600만 쌍까지 합동 결혼시킨 공로로 경제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 김청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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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09-02-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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