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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학
2004-04-15

토종개구리서 ‘슈퍼 바이러스’ 해결책 발견 [국민일보 공동] 이봉진 서울대 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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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 남용이 인류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어떤 항생제를 써도 듣지 않는 슈퍼 바이러스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때에 국내 연구진이 항생제 내성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국산 토종 개구리에서 추출한 ‘항생 펩타이드’를 이용하는 것이다. 세계 약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는 이 항생 물질에 대해 알아보자.


살아있는 개구리 입에 물어

세계 각국의 생활상을 살펴보면 개구리와 관련된 것들이 유독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입 안이 헐거나 상처가 났을 때 개구리를 잡아 산 채로 입에 물고 있게 한다. 개구리에서 분비되는 물질이 아픈 곳을 낫게 해 준다고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개구리 피부에서 채취한 액체를 화살촉에 발라 동물을 사냥할 때 쓴다. 화살에 맞은 동물은 마취돼 움직이지 못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개구리를 잡아 말린 후 곱게 갈아 기름에 섞어 상처, 부스럼 등 피부병이 난 곳에 발랐다. 일본에서도 이와 비슷한 용도로 사용한다.



개구리는 아주 연약한 몸을 가지고 있다. 다른 동물들처럼 딱딱한 껍질로 무장한 것도 아니고, 촘촘한 털이나 두꺼운 가죽으로 몸을 보호하는 것도 아니다. 징그러운 느낌이 들 정도로 축축한 피부가 전부다. 그런데도 개구리는 돌 틈이나 풀 속, 더러운 웅덩이 같은 곳에서 산다. 긁히고 찔려 상처가 나고, 거기에 세균이 감염돼 금세 죽을 것 같지만 끈질긴 생명력으로 그 수를 불려 나간다.

과학자들은 여기에 주목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뭔가가 개구리 몸에서 분비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1987년, 미국의 외과의사인 자슬로프 박사가 살아있는 아프리카 개구리의 배를 절개, 실험용으로 쓰기 위해 알을 채취했다.


그 후 배를 봉합하기는 했지만 깜빡 잊고 항생제를 투여하지 않았다. 얼마 뒤 살펴보니 그 개구리는 멀쩡하게 살아있었다. 절개한 부위도 깨끗이 아물어 있었다. 거기서 힌트를 얻어 자슬로프 박사는 개구리에서 분비되는 항생 펩타이드를 발견했다.

펩타이드는 생체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백질로, 인슐린이나 호르몬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이 가운데 항생 펩타이드는 외부에서 세균이 침입해 들어왔을 때 그것을 파괴하는 역할을 한다.

펩타이드는 50개 이하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돼 있다. 개구리에서 발견된 항생 펩타이드도 최고 46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제는 이 아미노산의 수가 너무 많다는 데 있다.

개구리에서 추출한 항생 펩타이드로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항생제를 만든다 하더라도 흡수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항생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미노산수를 줄여야 한다. 미국에서는 현재 23개의 아미노산을 갖는 개구리 유래 펩타이드로 3단계 임상실험을 마치고 신약허가를 기다리는 중이다.

하지만 최근 필자가 속해있는 ‘생체막 단백질 구조 연구실’에서 아미노산의 수를 11개로 줄인 천연 항생물질을 개발했다. 이 정도면 먹는 항생제를 만들어 내기에 충분하다.

연구팀은 토종 개구리인 청개구리와 참개구리, 옴개구리에서 항생 펩타이드를 추출, 핵자기공명법을 이용해 3차원 구조를 밝혔다. 놀랍게도 토종 개구리의 항생 펩타이드는 물에 잘 녹는 아미노산과 녹지 않는 아미노산으로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 경계부분을 자연계에 존재하는 20여개의 아미노산으로 일일이 바꾸어 보았다. 그 결과 ‘트립토판’이란 아미노산으로 교체했을 때 항생 효과가 가장 탁월했다.


인간에게는 무해

이 항생물질은 기존의 항생제와 전혀 다르게 작용했다. 지금까지의 항생제는 세균의 내부까지 들어가 그 속에 있는 성분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세균을 죽였다. 이 메커니즘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내성이다. 세균은 내부로 들어온 항생제의 구조를 파악,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방어벽을 즉각 구축하는 것이다. 항생제에 대한 세균의 내성 문제는 인류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가장 널리 쓰이는 항생제 암피실린의 경우 97%의 내성률을 가진 세균이 발견됐으며 최후의 항생제라 일컬어지는 반코마이신에도 33%의 내성률을 보이는 세균이 등장했다.

이에 비해 새로운 항생물질은 밖에서 성벽을 허물 듯 세균을 공격하기 때문에 내성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이 물질은 세균의 막 바깥쪽에 달라붙어 막에 구멍을 뚫는다. 물에 잘 녹는 아미노산은 구멍 안쪽에 위치하며 물에 잘 녹지 않는 아미노산들은 구멍바깥쪽에 자리잡아 막 내부와 결합, 구멍이 단단히 유지되도록 한다. 그 구멍을 통해 내부 물질이 흘러나와 세균은 결국 죽게 된다.

이 항생물질은 인간에 대한 독성도 거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인간의 적혈구로 실험을 했다. 만약 신물질이 인간의 적혈구를 공격한다면 막이 터져 내부의 붉은 물질이 흘러나오게 된다. 하지만 실험 결과 그 같은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인간의 세포를 가지고 실험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세균을 죽이는 데는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지만 인간에게는 전혀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었다.

또한 구성하고 있는 아미노산의 수가 작기 때문에 약물 제조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신약제조비용이 23개의 아미노산을 갖고 것에 비해 4분이 1밖에 되지 않는다.

개구리는 미래 신약의 원천으로 주목받고 있다.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많은 개구리들이 서식하고 있는데다 새로운 종이 꾸준히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풍성한 유전 자원을 통해 보다 다양한 천연 화학물질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미국, 영국, 일본, 이스라엘 등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개구리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의 제약회사에서는 개구리에서 인체 부작용이 적은 마취제를 개발하고 있으며 피부병에 잘 듣는 스테로이드 계통의 물질도 추출해내고 있다.


이봉진 생체막 단백질 구조 연구실 책임자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졸업

▲일본 오사카대학교 생물물리 박사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교수


<정리: 이성규 사이언스타임즈 객원편집위원>


더러운 동물이 인간에겐 유익

지구상에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나름대로 독특한 항생물질을 분비해 자신의 몸을 보호한다. 완벽한 자기보호시스템을 가동해 다양한 환경변화에서도 살아남는다.

과학자들은 이 가운데 아주 더러운 곳에서 사는 동물들에 주목한다. 각종 세균이 우글거리는 곳에서도 건강하게 살아간다면 그 동물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곤충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더러운 하수구나 시궁창에만 골라 알을 낳는 곤충이 연구 대상이다. 그 알들은 최악의 환경에서도 때가 되면 건강한 애벌레로 깨어난다. 그렇다면 그 알에서 세균들의 침입을 막는 물질이 분비된다는 뜻이다.

일본 과학자들은 시궁창 등지에서 곤충의 알을 수거해 여기서 항생물질을 찾아냈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크기였다. 이를 이용, 신약을 개발해 상용화하기에는 너무 아미노산이 많았던 것이었다. 사람이 경구용이나 주사용으로 사용했을 때 무리 없이 인체에 흡수될 수 있도록 일본에서는 아미노산을 줄이는 일에 모든 연구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한국의 토종개구리인 옴개구리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더러운 곳에 산다. 생긴 것도 거무죽죽하고 울퉁불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개구리는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한다. 항상 축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피부에는 곰팡이가 피는 적이 없으며 죽어도 잘 썩지 않는다. 그만큼 강한 항생물질을 분비하고 있는 것이다.

두꺼비도 연구 대상이다. 개구리와 비슷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구리와는 달리 두꺼비는 강한 독성을 갖고 있다. 어떤 두꺼비는 뱀과 싸워서 이길 정도다. 때문에 항생물질 개발 가능성 측면에서는 개구리에게 뒤진다고 볼 수 있다.





저작권자 2004-04-1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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