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세포 연구의 성과는, 원리적으로, 의학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일 것이며 난치병들의 퇴치에 중요한 도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1998년 11월 미국의 두 연구팀에 의해 인간줄기세포 연구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되었다. 위스콘신대학과 존스홉킨스대학 연구진들이 각각 세계 최초로 인간의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한 것이다. 이때부터 인간줄기세포 연구는 커다란 주목을 받게 되었다. 세계적 과학학술지「Science」는 줄기세포를 이용해 인체의 장기와 조직을 만들어 내기 위한 연구를 1999년도 과학계의 최대업적으로 선정하였으며, 생명공학 벤처기업들이 잇달아 줄기세포 연구에 뛰어 들었다.
나는 줄기세포 연구의 가능성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조금도 없다. 그러나 실용화가 정말 가능할지, 또 실용화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누구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지금, 그 ‘원리적’인 가능성을 가지고 잠재적 수혜자인 환자와 가족들에게 당장 기적이 도래하는 듯한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언행은 연구자의 윤리면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적 도리의 측면에서도 제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불행히도 기대가 깨어지는 경우 의학계·과학계가 떠안아야 할 엄청난 부담을 생각할 때도 역시 그러하다.
그런 한편,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국가적·사회적 지원이 시급히 요청된다. 그것은 줄기세포 연구가 갖는 경제적·산업적 가치 때문이 아니라 줄기세포 연구 성과의 ‘의학적 유용성’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인간줄기세포 연구는 윤리적·법적 논란의 소지가 (거의) 없는 성체줄기세포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의학적 조치를 비롯하여 인체에 대한 어떠한 개입도 반대하는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문제는 그 윤리적 장점 외에, 인간성체줄기세포 연구가 과학적으로도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보다 우월성을 갖는가 하는 데에 놓여 있다. 만약 인간성체줄기세포 연구가 과학적으로도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보다 우월함이 확인된다면,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입지가 대폭 축소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로는 인간성체줄기세포 연구가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보다 학문적으로 훨씬 우월하다는 증거를 제시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인간성체줄기세포 연구와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의 학문적·기술적 우월성 문제에 관한 논의는 앞으로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더욱 활발히 벌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과학적 우월성과 윤리적 장단점을 함께 견주는 논의는 보다 광범위한 사회구성원들의 참여 하에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줄기세포 연구에 관련된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는 줄기세포의 한 가지 공급원인 인간배아를 둘러싼 윤리적 논쟁이다.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과정에서 배아는 필연적으로 파괴될 수밖에 없는데, 배아를 인간생명체로 본다면 그 파괴는 곧 살인행위가 된다. 반면에 배아를 단순한 세포덩어리로 보는 입장에서는 다른 세포조직을 이용한 것과 마찬가지로 허용 가능한 연구가 된다. 인간배아의 지위에 대한 의학적․윤리적 논란은 앞으로도 종식될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것은 진위의 문제라기보다는 신념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원천적으로 사회적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커다란 사회적 갈등을 일으킬 소지를 지닌다. 그렇다고 인간배아줄기세포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를 포기하는 것은 그 의학적 유용성으로 인해 용납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성체줄기세포 연구가 충분히 발전할 때까지는 사회적 부담과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병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생명윤리와 의학 발전을 균형있게 생각하는 이들의 대체적 판단이다.
줄기세포 연구 목적으로 인간배아를 생성하는 것은 금지하는 반면, 불임치료를 위해 인공수정 방법으로 창출된 인간배아 가운데 인공수정에 사용하고 남은, 잔여동결배아를 줄기세포 연구의 소재로 허용하자는 주장은 윤리적 갈등을 (상대적으로) 줄이면서 의학적 유용성을 살리기 위한 절충적 입장의 산물이다.
지난 2월에 발표된 연구성과, 즉 체세포 핵치환을 이용한 배아복제는 줄기세포 연구에서 면역거부반응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고 줄기세포의 분화기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등 학문적으로 유용한 측면이 많다.
줄기세포를 이용하여 필요한 세포조직을 얻었다 하더라도 거부반응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세포이식치료술은 난관에 봉착할 것이다. 거부반응을 해결하는 방법은 ‘줄기세포 은행’과 더불어, 체세포복제기술을 이용해 환자 자신의 체세포로부터 배아를 창출(복제)하고 이로부터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것이다. 인간배아복제를 허용하자는 사람들은 줄기세포 분화 기전의 이해 등 줄기세포 연구 자체를 위해서도 배아복제 방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간배아복제는 일반적인 인간배아 연구 이상으로 커다란 윤리적 논란을 낳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배아복제를 이용한 줄기세포 연구를 허용하는 것은 엄청난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한 연구를 허용할지 결정할 시기는 잔여동결배아와 다른 생물체의 배아복제를 이용한 것 등 다른 방법들을 이용한 줄기세포 연구가 많이 진척되어 실용화가 머지 않았을 때, 특히 거부반응 문제 해결이 유일한 과제로 남게 되었을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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