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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건강하게 살기를 희망한다. 이런 바람은 옛날부터 존재하던 것이었겠지만 웰빙(well-being)이 트렌드로 자리 잡은 요즘만큼 건강한 삶이 강조된 적도 없는 것 같다.
웰빙 열풍은 처음에는 유기농 식품과 같은 무해하고 몸에 좋은 음식을 섭취하거나 꾸준한 운동을 하려는 모습으로 나타나더니,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의학 상식을 올바르게 알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으로까지 나타난다. 지상파 방송에서 의학 상식을 퀴즈로 풀어보는 쇼 프로그램이 등장했다는 것은 의학 상식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잘 반영하고 있다. 나라에서 국민들에게 의무적으로 국민건강보험에 가입하게 하여 국민 누구나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의학이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있어 꼭 필요한 분야라는 것을 말해 준다.
이렇게 의학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있어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학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세상에 존재한 이후로 지금까지의 시간 동안을 의학이 함께 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보편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의술을 생각하면 무언가 이상한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서도 분명 예전부터 우리만의 의학이 있었을 텐데, 현재 널리 행해지는 의술은 서양에서 들여온 것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만의 의학은 없는 걸까?
‘의학’이라는 말을 떠올린 직후에는 서양의 그것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는데 한 번 더 생각하니 우리에게도 그 명맥을 이어오는 의학 분야가 있다. ‘한의학’. 한의학은 누구나 동의하고 자랑할 만한 우리 고유의 의학이다. 떠오르는 것이 있어 다행이긴 한데 한의학이 우리의 고유 의학이었다는 사실이 아주 자랑스럽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과학적으로 잘 설명되는 서양의학과는 달리 한의학은 과학적 설명이 힘들고 무언가 모호한 개념인 것 같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의학은 병을 고치는 근본적이고 중심적인 치료를 한다는 생각보다는 서양 의학의 들러리 역할로 병원에서 받은 치료 효과를 더 좋게 하려는 목적의 치료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어쩌면 이러한 현상은 한의학의 한계점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우리 고유의 의학인 한의학의 과학성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한의학이란 무엇일까?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한의학의 기원을 알아야 한다. 한의학이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되어 왔는지에 대해서는 사료가 많지 않아서 자세히 파악하기가 어렵다. 다만 먼 옛날부터 조상들은 오랜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약초를 발견하여 사용했고, 돌침(石鍼)으로 병을 치료하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의 한의학이 그 이론적 체계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고구려 평원왕 시대에 중국 오나라의 지총이란 사람이 164권의 의학서를 가지고 고구려를 거쳐 일본에 귀화하면서부터이다. 그 때 전해진 책 중 『황제내경』은 한의학을 비롯한 중국의 중의학, 북한의 동의학 등 동양의학 전반의 사상적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이 후 삼국시대에는 주로 중국의 의학 서적이 유입되면서 우리 민족 고유의 민족의학과 융합하여 한의학의 이론적 토대가 탄탄하게 갖춰지기 시작했다.
고려시대에 들어서 한의학은 조금 더 자주적인 성격을 가지고 발전하기 시작했다. 조정에는 병원에 해당하는 상약국과 지금의 보건복지부에 해당하는 태의감이 설치되어 운영되었다. 그 밖에도 동서대비원, 제위보, 혜민국과 같은 국가 의료기관이 존재했고 의료 관련 인재 등용도 이루어졌다. 고려의학이 발달함에 따라 『제중입효방』, 『신집어의촬요방』등의 새 의료도서가 편찬되기에 이르렀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고려시대에 물려받은 의학을 바탕으로 조선의학을 완성해 나갔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약재인 향약(鄕藥)의 연구를 집대성하여 세종 7년에 『향약집성방』 85권을 편성하였고, 우리나라에 전래된 중국의 의방서를 분류하고 정리하여 세종 25년에는『의방유취』 365권을 완성하였다. 이러한 서적의 편찬은 중국의 의학으로부터 우리 의학을 온전히 자립시키려는 조상들의 의도가 숨어 있었다.
이를 토대로 우리 고유의 의학은 끊임없이 발전하여 허준의 『동의보감』의 편찬으로 조선의 의학은 독자적인 위치를 굳히게 되었다. 동의보감은 매우 보기 쉽게 쓰여 있었으므로 중국에 역수출되기까지 했다. 조선 말기에는 이제마가 『동의수세보원』을 통해 체질에 따른 독특한 병리를 설명하고 치료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한의학의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이렇게 발전을 거듭할 것이라 여겨졌던 한의학이 큰 위기를 맞게 되었으니, 때는 조선 후기 문호가 개방되면서 서양의 문물이 물밀듯이 들어오는 시기였다. 이 때에 서양의 의료기술이 도입되었음은 물론이거니와 서양의 가치관까지도 빠르게 침투하기 시작했다. 서양의 가치관으로 바라본 한의학은 말 그대로 ‘경험의학’일 뿐이었다. 또한 인문학과 과학이 분리된 사고의 틀을 통해서 바라본 한의학은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사상이나 종교의 개념으로 치부되었고, 한의학으로 질병이 나은 사례가 있다면 그것은 치료에 의한 것이 아니라 환자의 마음가짐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반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한의학은 비과학적 학문일까? 한의학은 실제로 철학적이고 증명하기 어려운 사상들에 바탕을 두고 있다. 대표적으로 우주나 만물의 생성을 음(陰)과 양(陽)으로 이원하거나 목, 화, 토, 금, 수의 오행으로 설명하는 음양오행 사상이 한의학의 바탕이 된다. 또한 ‘연속적인 유체로서의 공기와 비슷한 그 무엇’으로 생각되는 기가 자연의 세계를 형성하는 기초적인 존재라는 기 사상도 중요하다. 인체의 모든 현상을 음과 양, 오행, 기 등의 철학적 단어로 설명을 하니 서양화된 시각에서 보기에 한의학은 비과학적으로 비춰지기 쉽다.
그러나 서양문화가 들어오기 전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론으로 맞든 틀리든 주위의 모든 환경을 설명하고 논리를 전개했다. 한의학은 동양적 사고 안에서 철저하고 정밀한 사물의 ‘관찰’을 통해 형성된 학문인 것이다. 한의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곧 관찰자가 되는 것이었다. 어떠한 방식으로 관찰이 이루어졌는지 한 가지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춘추전국시대 때 어떤 사람이 한 그루의 큰 고목을 오랫동안 살펴보았다. 그는 나무를 관찰한 결과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나무의 색은 푸른색이고, 전체의 길이는 휘어짐이 없이 곧으며, 밑둥치는 크고 튼튼하고, 나무의 끝은 단단하지만 작다. 그러니 바람에도 나무 자체는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가지와 잎은 번성하고, 그 끝은 가늘고 부드럽다. 그리고 가지와 잎은 바람 따라 흔들리고 소리를 낸다. 이런 나무는 벌목을 하면 좋은 목재로 사용할 수 있다. 이 나무는 봄, 여름에는 나무가 번성하여 튼튼하겠지만 가을, 겨울이 되면 낙엽이 떨어지고 나무도 수분이 빠져 마른다.”
이번에는 『내경』을 살펴보자. 이 책에 인체를 목, 화, 토, 금, 수의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체질을 감별하는 부분이 있다. 여기서 목(木)형으로 구별되는 인간의 체형과 성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피부는 창백하며 체형을 살펴보면 머리는 작으나 전체적으로 큰 편이며 어깨가 넓고 등은 곧으며 팔과 다리는 가는 편이며 수족의 놀림이 좋다. 품성은 재능이 있으며 걱정과 우려함이 많고 체력은 없으나 일에는 열심이다. 이런 형의 사람은 봄, 여름에는 건강하나 가을, 겨울에는 건강이 좋지 않으며 병이 날 수 있다.”
위에서 관찰된 나무와 『내경』의 목형의 인간은 서로 유사점이 있다. 체형과 나무를 비교해 보면, 나무가 푸른색이므로 목형에 분류되는 인체의 피부는 창백해서 푸르며 나무의 끝은 작으므로 머리가 작다. 그렇지만 나무는 장대하므로 신체는 큰 편이고, 가지와 잎이 윗부분부터 번성하므로 인체의 윗부분인 어깨 부분이 넓다. 또한 나무는 곧으니 등이 곧고, 나무의 가지 끝은 바람 때문에 쉴 새 없이 움직이니 목형의 사람은 수족의 놀림이 발달했다.
품성과 나무를 비교해 보아도 매우 속성이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나무는 목재로 쓸모가 있으므로 목형의 사람은 재능을 가지고 있고, 나무는 전혀 요동이 없고 고정된 형태의 물질이므로 사람도 힘차게 움직이는 힘은 없어 기본 체력은 없다. 가지와 잎은 바람에 따라 끝없이 움직이므로 나무는 조용한 물질이 아니다. 그래서 목형의 사람은 본의 아니게 주위의 일로 심려를 많이 느끼고 간섭받는 일이 많다. 목형의 인체는 나무와 같이 봄, 여름에는 건강하다가 가을, 겨울에는 감기 같은 병이 잘 걸린다.
이런 식으로 관찰을 통해 얻은 속성을 논리적으로 유추하는 과정을 통해 한의학의 기본 원리들이 정립되었다. 침을 찌를 자리를 결정하는 경락 학설과 기 원리 또한 동양인들이 2천년간 관찰하고 경험한 결과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정립된 것이다.
서양 과학 또한 ‘관찰’의 과정이 빠지면 과학이 되지 않는다. 생물학 실험 과정의 예를 들어 보면 동물 실험을 할 때 실험을 시작하기 위해 제일 처음에 하는 것은 아무런 조작도 하지 않고 현상 그대로를 ‘관찰’하는 것이다. 그 후 실험을 설계하여 돌연변이를 시키거나 약물을 처리하였을 때 나타나는 변화 측정도 ‘관찰’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관찰 후 생물학적 기본 지식을 바탕으로 논리적 사고 과정을 통해 결과를 도출해 내는 것이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실험 과정이다.
관찰의 측면에서 비교해 볼 때 한의학은 서양화된 시각으로도 충분히 과학적이라 불릴 만하다. 한의학을 서양의 사고방식으로 보고 비과학적이라 하는 이유는 서양과 동양에서 사물을 관찰하는 태도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서양의 과학적 사고 과정은 다분히 환원주의적인 길을 걸어왔다. 물리학에서는 소립자를, 화학에서는 분자를, 생물에서는 세포 내의 단백질, DNA 등의 물질을 연구하였다. 이러한 사고가 서양의학에도 그대로 적용되었으므로 서양의학에서는 병의 원인을 세포 하나에서 찾았고 그래서 투여하거나 복용하는 약도 모두 어떤 일정한 분자적 기작에 영향을 주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즉, 병의 원인을 일대일 대응의 개념, 선형적인 개념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의학은 동양의 사고의 틀을 바탕으로 인체를 유기체로 인식하여 주변 환경과 끊임없이 교류하는 과정을 통해 비선형적으로 인체의 반응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서양의 사고는 물질을 쪼개어 이해하려고 하고 동양의 사고는 물질을 통합하여 이해하려고 한다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까지 다분히 서양적인 사고로 동양의 문물을 지켜보아 왔다. 서양적 사고와 동양적 사고 중 어느 하나가 맞고 틀린 것은 없다. 단지 동양의 것을 바라볼 때는 통합적인 사고를 가지고 그 속에서 관찰과 논리가 빈틈이 없는지를 보는 것이 우리의 문물을 바라보는 데에 바른 시각이 아닐까 한다. 마찬가지로 치밀한 관찰을 통해 이루어진 우리 고유의 의학, 한의학도 서양의 사고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과학적이지 않다고 치부해 버릴 수 없다. 그보다는 통합의 개념으로 그 논리의 타당성을 따져보는 것은 어떨까?
- 꿈꾸는 과학 3기 이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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