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성장하면서 한 가지에 몰두하는 시기가 있다. 공룡이나 예쁜 플라스틱 인형, 변신 로봇 등 나이에 따라 집작하는 물건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그 방식은 늘 비슷하다. 대상과 나를 동일시하는 거다. 그래서 대상과 놀기도 하고 대상이 되어 날기도 하고 대상과 이야기를 한다.

이런 경험 없이 성장한 어른은 없을 것이다. 나이 먹어 집안을 정리하다 운 좋게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인형을 발견할 때 드는 미묘한 그리움과 아쉬움을 우리는 우리의 어린아이들에게 다시 인형과 로봇을 사주며 달래는 것은 아닐까.

지난 7월 29일부터 예술의 전당에 있는 한가람 디자인미술관에서는 “기계의 꿈, 자동인형에서 로봇까지”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김창기 감독의 영화 「로보트 태권 V」가 1976년에 상영되었으니 벌써 로보트 태권 V 는 청년의 나이 서른이 된 셈이다. 그 서른 살의 로보트 태권 V 가 여전히 당당한 모습으로 미술관 앞에서 전시회를 찾는 이를 맞이하고 있다.

전시장 입구에서 아이들에게 보여줄 만한 것이냐는 문의를 하는 어머니를 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전시는 아이들이 볼 수 있다. 그러나 보는 것과 이해하느냐, 즐기느냐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번 전시의 전시물은 아이들이 보면 그냥 물건일 수 있다. 입구에서 주저하던 어머니의 질문이 아이가 이해하고 즐길 수 있냐는 뜻이었다면 전시장에서 어른들은 아이 옆에 붙어서 설명을 해줘야 한다. 그러므로 어른들은 입장권을 사는 곳에 비치되어 있는 도록을 미리 훑어보고 입장해야 좋을 것 같다.

전시장에는 17, 18세기 유럽에서 시계작동 원리를 이용한 기계인형부터 영화 속에 나오는 로봇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는 벽면 작업까지 주로 인간형 로봇에 대한 우리의 노력을 전시해 놓았다. 인간처럼 생겼지만 인간보다 더 강하고, 더 효율적이고 영원히 움직일 수 있는 그 무엇을 찾는 인간의 여정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전시장 중간쯤 놓여 있는 잭슨 홍의 인터렉티브 작품 ‘가면 시민’ Masked Citizen X 은 이질적이다. 마네킹에 하얀색 비닐 옷을 입히고 방독면처럼 생긴 플라스틱 마스크를 씌어 놓은 이 작품은 움직임에 반응하는 다이오드가 설치되어 있다. 우리의 모습과 똑같은 마네킹은 수동적으로 반응을 하고, 우리의 겉모습과는 아직 거리가 있는 인간형 로봇은 인공지능과 결합하여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주 전시장을 빠져나오면 어린이 전용 로봇전이 별도로 열리고 있다. 아이들이 만든 로봇작품을 전시한다. 아이들이 만든 작품은 모터가 달려 있고 벽에 액자처럼 걸려 있다. 나무와 아크릴로 만든 네모난 틀 안의 동물들은 반복해서 움직인다. 이렇게 해서 아이들은 기계적인 동작을 배우고 로봇에 대한 꿈을 키워갈 것이다.

물론 아이들이 직접 간단한 로봇을 만드는 체험전시도 같은 장소에서 열리고 있다. 종이로 로봇을 만드는 것이다. 종이로 만들었으니 로봇의 수명은 오래가지 않겠지만 만드는 동안 아이들은 즐거워 보인다.

전시장을 나오며 생각한다. 아직 현실에서 로봇에 대한 우리의 꿈은 꿈일 수밖에 없을까. 종이로봇을 보다 나와서 그런지 입구에 늠름하게 서 있는 로보트 태권 V 가 더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전시정보

기간 : 2006.7.29-8.29

관람시간 : 11:00-20:00

입장권 : 어른 5천원, 초중고 학생 3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