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적 편견을 깨는 인지과학, 귀로 듣는 거짓말?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채는 기술은 일상적인 대화부터 범죄 수사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초미의 관심사가 된다. 흔히 대중매체에서는 시선을 피하거나 입술을 깨물고 손을 만지작거리는 신체 언어를 살피거나, 맥박과 땀 분비량을 재는 거짓말 탐지기를 해법으로 제시하곤 한다. 그러나 현대 인지심리학과 법과학 연구진은 이 같은 시각적·생리적 단서가 신뢰하기 힘든 측정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억울하게 용의선상에 오른 진실 진술자도 극도의 불안 탓에 몸을 떨거나 시선을 떨구기 마련이고, 반대로 노련한 사기꾼은 상대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평온한 신체 상태를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만으로는 참과 거짓을 결코 가려낼 수 없다.
이에 따라 최근 범죄 수사와 인지언어학계는 시각 대신 청각, 즉 발화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언어학적 구조에 주목하고 있다. 사람의 뇌는 실제로 겪은 기억을 인출할 때와 가공의 이야기를 즉석에서 꾸며낼 때 전혀 다른 신경학적 경로를 사용한다. 존재하지 않는 사실을 그럴듯하게 조작하고, 상대의 돌발 질문에 맞춰 각본을 실시간으로 수정하며, 동시에 표정까지 관리하는 작업은 뇌의 전두엽 작업기억에 막대한 인지적 부하(Cognitive Load)를 안긴다. 아무리 지능적인 거짓말쟁이라 할지라도 뇌 용량이 한계에 다다르면 언어의 흐름에서 무의식적인 오류를 노출할 수밖에 없다. 법언어학은 바로 이 인지적 균열이 남긴 언어학적 족적을 과학적으로 추적한다.
인지 과부하가 부르는 말문 막힘과 공허한 반복
뇌가 거짓말을 지어내느라 과부하에 걸렸을 때 말에서 가장 먼저 튀어나오는 징후는 '부자연스러운 단어의 반복'이다. 언어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발화자가 특정 단어나 어휘를 불필요하게 되풀이하기 시작할 때 기만의 가능성에 강력한 경고등을 켜야 한다.
이러한 반복은 대명사를 연이어 웅얼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는 형태로 자주 나타난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날카로운 질문을 맞닥뜨렸을 때, 머릿속에서 알리바이를 급조하느라 시간을 벌기 위해 주어를 반복하며 말문이 막히는 것이다. 실제로 연인을 독살하고 행적을 조작하려 했던 호주의 한 의사는 경찰의 기습적인 시간대 추궁을 받자 일인칭 대명사만 연거푸 더듬거리며 문장을 끝맺지 못하는 인지적 지체 현상을 고스란히 노출했다.
사건의 핵심 순간에 이르러 특정 동사나 형용사만 맴도는 현상도 마찬가지다. 가공의 자작 폭행 피해를 주장해 물의를 빚었던 미국의 한 배우는 사건 경위를 설명하다가 몸싸움이 벌어진 핵심 국면에 들어서자, 더 이상의 구체적인 정황 묘사를 내놓지 못하고 싸웠다는 단어만 세 번 연달아 되뇌었다. 지어낸 이야기에는 실제 겪은 감각의 결이 없기 때문에 정작 중요한 순간에 묘사가 빈곤해지며 같은 단어만 공회전하는 것이다. 지나치게 결백해 보이고 싶어 과도한 수식어를 남발하거나 부정을 거듭하는 것 역시, 과열된 뇌가 언어의 유창성을 잃고 삐걱거리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이다.
변명부터 늘어놓는 서사 구조와 '피노키오 효과'
진실을 증언하는 사람과 거짓을 꾸며대는 사람은 이야기를 풀어놓는 순서와 서사 구조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사람은 과거의 경험을 회상할 때 사건의 시작과 전개, 결말이라는 시간적 순서에 따라 자연스러운 기승전결을 구성한다. 특히 급박한 응급 상황에 놓인 사람이라면 모든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핵심 사실부터 단도직입적으로 터뜨린다.
반면 사전에 거짓말을 준비한 사람은 진짜 알맹이는 뒤로 슬그머니 감추고, 자신에게 유리한 정황이나 변명거리를 이야기 맨 앞머리에 늘어놓는 '전면 배치(Foregrounding)' 화법을 구사한다. 음주 운전으로 자전거 운전자를 치어 숨지게 한 뒤 차를 도난당했다고 허위 신고한 영국의 한 가해자가 대표적이다. 그녀는 긴급 구조대에 전화를 걸어 차를 도난당했다는 신고 목적부터 말하지 않았으며, 대신 아버지가 전화를 걸어와 도로 통제 소식을 전해 들었고 번호판을 확인했다는 식의 쓸데없는 정황을 서론으로 장황하게 늘어놓은 뒤에야 도난 신고를 꺼냈다.
사건의 본질보다 핑계와 알리바이가 앞서는 이러한 현상을 언어학계에서는 '피노키오 효과'라고 일컫는다. 거짓말을 준비한 사람일수록 의심을 사지 않겠다는 조바심 때문에 진실한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단어를 소모하며 서론을 부풀린다. 다툼 끝에 지인을 총으로 쏘아놓고 정당방위 오발 사고로 위장하려 했던 또 다른 신고자 역시, 피해자가 총상을 입고 쓰러졌다는 응급 사실을 말하기에 앞서 상대가 술에 취해 난동을 부렸다는 자기방어 정황부터 앞세우는 전형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무의식적 방어기제가 드러나는 '거리두기 언어'
인간의 언어는 화자의 무의식적인 감정과 내면의 방어기제를 투명하게 반영한다. 아무리 태연하게 결백을 가장하는 범죄자라 할지라도,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행위나 피해자로부터 심리적인 거리를 확보하려는 본능적인 방어기제를 단어 선택 속에 흘리게 된다. 법언어학에서는 이를 부정적 정서가 투영된 '거리두기 언어(Distancing Language)'라고 부른다.
사람은 본래 거부감을 느끼거나 죄책감을 유발하는 대상을 지칭할 때 이름을 직접 부르기보다 멀찍이 떨어뜨려 표현하는 심리적 기제를 작동시킨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를 두고 이름 대신 '저 사람'이나 '저쪽'이라고 낮추어 부르는 원리와 같다. 문제는 이러한 거리두기 언어가 마땅히 친밀한 애정을 보여야 할 관계에서 돌출될 때이다.
자신의 파트너를 살해하고 피해자가 자살했다고 발뺌했던 한 은퇴 의사의 진술이 명백한 증거가 될 수 있는데, 그는 경찰이 들이닥치자 현장에 쓰러진 연인의 시신을 가리키며 그녀의 이름이나 인칭대명사를 일절 쓰지 않은 채, 아침에 일어나 보니 '이것'을 발견했다고 진술했다. 방금 전까지 삶을 함께했던 연인을 한낱 사물로 격하시킨 비인격적 단어 속에는,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사건과 피해자로부터 본능적으로 책임을 떼어내고 싶어 했던 살인자의 무의식적 거부감이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오감이 증발한 메마른 기억의 역설
인간의 뇌 속에서 직접 경험한 일화 기억(Episodic Memory)과 머릿속으로 조립한 가공의 시나리오는 저장되고 인출되는 신경학적 기전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사람이 충격적이거나 극적인 순간을 실제로 겪으면 뇌의 해마와 감각 피질은 당시의 시각과 청각, 촉각, 냄새뿐만 아니라 심장의 고동이나 전율 같은 신체 내부 감각까지 하나의 통합된 다감각 기억으로 강렬하게 각인한다. 귓전을 찢는 듯한 마찰음이 들렸다거나, 손끝이 얼어붙듯 차가워지고 식은땀이 흘렀다는 묘사는 실제 기억을 회상할 때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감각의 흔적이다.
반면 머릿속에서 도식적으로 꾸며낸 거짓말에서는 이 같은 오감의 정보가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린다. 사건의 뼈대와 논리적 전개는 그럴듯하게 맞추어 놓지만, 현장의 공기와 물리적 감각을 묘사하는 감각 어휘는 극도로 메마를 수밖에 없다. 올림픽 기간 중 주유소 기물을 파손하고는 무장 강도를 당했다고 거짓 진술서를 작성했던 미국의 한 유명 수영선수의 사례가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그의 진술에는 택시가 멈추고 괴한이 총을 겨누며 지갑을 빼앗아 갔다는 사건의 골격만 반복될 뿐, 주변의 소음이나 총구의 차가운 금속성 감촉, 심장이 쿵쾅거리던 공포 같은 신체 감각 묘사는 어디에도 없었다. 인지적으로 조립된 가짜 기억에는 인간의 오감이 빚어내는 디테일이 깃들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상대의 거짓을 밝혀내는 힘은 겉으로 드러나는 눈빛을 쏘아보거나 안색을 살피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바로 인지 과부하로 말이 헛돌며 빚어내는 더듬거림, 알리바이를 앞세우는 장황한 서론, 무의식중에 선을 긋는 거리두기 어휘, 그리고 생생한 오감이 거세된 메마른 문장 구조를 면밀하게 짚어낼 때 거짓의 가면 뒤에 숨은 진실이 비로소 명확하게 드러난다.
- 김민재 리포터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6-11-0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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