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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학
김현정 리포터
2026-10-16

우주비행사는 '변비왕'? 덴마크 코펜하겐대·NASA 공동 연구팀, 12년간 모은 혈장 488건 분석…"섬유질 늘려 장기 탐사 대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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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우주정거장(이하 ISS)에 머무는 우주비행사의 장에서는 세균이 평소보다 단백질을 더 많이 분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력이 사라진 환경에서는 음식물이 장을 천천히 지나가기 때문에, 장내 세균이 주된 먹이인 식이섬유를 먼저 소진하고 단백질을 발효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변화는 발사 직후부터 나타났다가 지구로 돌아온 뒤 며칠 안에 대부분 사라졌다.

덴마크 코펜하겐대와 미국 항공우주국(이하 NASA) 공동 연구팀은 우주비행사 52명의 혈액을 분석한 이 같은 결과를 6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발표했다.

우주비행사는 왜 변비에 걸릴까. 그 답은 무중력 속에서 달라지는 장내 세균의 '식단'에 있었다. ⓒGettyImagesBank
우주비행사는 왜 변비에 걸릴까. 그 답은 무중력 속에서 달라지는 장내 세균의 '식단'에 있었다. ⓒGettyImagesBank


혈액에 남은 장 속 변화의 흔적

연구팀은 2006년부터 2018년까지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2~9개월간 머문 우주비행사 52명의 혈장 488건을 분석했다. 같은 사람이 비행 전과 비행 중, 귀환 후에 걸쳐 여러 차례 채혈한 시료라 우주에 머무는 동안 몸속에서 무엇이 바뀌는지 추적할 수 있었다.

우주 비행과 함께 혈중 농도가 달라진 화합물은 약 40종이었다. 그중 가장 일관되게 늘어난 것은 장내 세균이 단백질을 분해할 때 만드는 물질들로, p-크레졸 황산염이 대표적이다. 세균이 고기나 유제품 속 아미노산을 분해해 만든 물질이 간에서 형태를 바꾼 뒤 혈액으로 흘러든 것이다. 이 물질들의 농도는 발사 직후 높아졌다가 지구로 돌아온 뒤 며칠 안에 원래 수준으로 내려왔다.

공동 제1저자인 조르자 라 바르베라 코펜하겐대 부교수는 "우주에 도착한 지 몇 주 안에 장내 세균이 평소보다 단백질을 더 많이 발효하기 시작하며, 이 변화는 지구로 돌아올 때까지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는 서로 다른 임무를 수행한 52명의 시료를 10여 년에 걸쳐 모은 것이다. 그런데도 같은 변화가 반복해 나타났다는 점에서 연구팀은 이를 개인차가 아닌 우주 환경 자체의 영향으로 판단했다.

우주비행사 52명의 채혈 시점. 비행 전(발사 2년 전~15일 전), 비행 중(발사 후 최대 300일), 귀환 후(착륙 후 최대 80일)에 걸쳐 같은 사람의 혈액을 여러 차례 채취했다. ⓒNature Communications
우주비행사 52명의 채혈 시점. 비행 전(발사 2년 전~15일 전), 비행 중(발사 후 최대 300일), 귀환 후(착륙 후 최대 80일)에 걸쳐 같은 사람의 혈액을 여러 차례 채취했다. ⓒNature Communications


우주식보다 무중력이 원인

단순하게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원인은 우주식이다. 실제 우주비행사들은 ISS에서 커피와 생선을 지상보다 덜 섭취한 흔적을 보였다. 하지만 식단 변화로 설명되는 대사물질은 전체 변화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단백질 발효 물질은 같은 음식을 먹어도 사람마다 생성량이 크게 다르다. 그래서 연구팀은 식단만으로는 일관된 증가를 설명하기 어렵다고 봤다.

대신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음식물이 장을 지나는 속도다. 장내 세균은 원래 식이섬유 같은 탄수화물을 먼저 먹는다. 그런데 음식물이 장에 오래 머물면 이 먹이가 먼저 바닥나고, 세균은 남은 단백질을 분해해 에너지를 얻는다. 지상에서도 장 통과 시간이 길수록 단백질 발효 물질이 많아진다는 연구가 여러 차례 나왔다. 장 통과 속도가 느릴 때 늘어나는 또 다른 지표인 피멜산이 비행 중 함께 증가한 것도 이 해석을 뒷받침한다. 

공동 저자인 헨리크 로아게르 코펜하겐대 부교수는 "우주에서는 중력이 없어 음식물이 장을 더 천천히 지나가는 것으로 보이며, 이는 단백질 발효 증가 신호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우주비행사들이 겪는 변비가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장내 미생물 생태계가 달라졌다는 신호일 수 있다는 의미다.

장내 미생물이 단백질을 분해해 만드는 대사물질의 생성 경로. ⓒNature Communications 
장내 미생물이 단백질을 분해해 만드는 대사물질의 생성 경로. ⓒNature Communications 


화성 가는 길, 장내 세균의 식탁도 챙겨야

단백질 발효가 늘어나는 것을 가볍게 넘기기 어려운 이유는 그 부산물에 있다. 논문에 따르면 단백질 발효 물질 가운데 일부는 신장 기능이 떨어진 환자의 질병 위험과 관련이 있다. 동물실험에서는 뇌 활동과 불안 행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드락스테드 코펜하겐대 교수는 "단백질 발효 산물은 신장 손상, 기분 변화, 집중력 저하 같은 부정적 건강 영향과 자주 연관된다"고 지적했다.

다행히 몇 달간의 ISS 임무에서는 이런 변화가 오래가지 않는다. 앞서 확인했듯 단백질 발효 물질의 농도는 지구로 돌아온 뒤 며칠 안에 원래 수준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달과 화성으로 향하는 장기 탐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NASA 인간연구프로그램(HRP)은 왕복 3년에 이르는 화성 임무를 전제로 우주비행사의 신체 변화를 연구하고 있다. 이처럼 귀환까지 수년이 걸리고 중간 보급도 어려운 임무에서는 장내 세균이 단백질을 발효하는 상태가 그대로 이어질 수 있다. 출발 전에 짠 식단이 수년간의 장 건강을 좌우하게 되는 셈이다.

한편, 연구팀은 천천히 발효되는 식이섬유를 우주 식단에 늘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장내 세균이 단백질로 먹이를 바꾸기 전까지 버틸 수 있도록 먹이를 넉넉히 공급하자는 것이다. 로아게르 부교수는 식이섬유나 프리바이오틱스 보충, 장운동을 돕는 처치 등을 제안하며 "그렇게 하면 단백질 발효를 줄여 건강한 장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연구는 지상의 환자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장기간 누워 지내는 환자도 장운동이 느려지고 변비를 겪기 때문이다. 드락스테드 교수는 "오래 누워 지내는 환자들도 변비를 겪고 단백질 발효가 늘었을 가능성이 높다"며 이번 연구가 이들의 치료에도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연구는 혈액 속 대사물질로 장 상태를 추정한 관찰 연구다. 장 통과 시간을 직접 측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중력이 장을 느리게 만든다는 설명은 아직 가설 단계다. 분석 대상의 임무도 최대 9개월이었다. 수년간 이어지는 화성 탐사에서 장내 세균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앞으로 확인해야 할 과제다.

김현정 리포터
vegastar0707@gmail.com
저작권자 2026-10-1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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