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비타민을 섭취해도 괜찮을까. 비타민은 몸에 좋다는 인식이 강하고, 특히 비타민 C와 E 같은 항산화제는 세포를 산화 스트레스로부터 보호한다고 알려져 있다. 문제는 이러한 보호 효과가 정상세포와 암세포를 구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부 항암치료는 활성산소*를 이용해 암세포의 DNA나 세포막에 손상을 일으켜 세포를 죽이는데, 항산화제가 이 과정을 억제하면 암세포까지 보호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 국립암연구소 역시 여러 항암제가 활성산소를 이용해 암세포에 손상을 준다고 설명하면서, 치료 중 항산화 보충제를 함께 복용하는 것이 안전한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정보가 없다며 의료진과 상의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표적항암제가 암세포를 녹슬게 만들다
지금까지 이러한 우려는 주로 세포독성 항암제나 방사선치료를 중심으로 제기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 특정 유전자 변이를 겨냥하는 표적항암제 역시 항산화 비타민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베일러의과대학 나카다 교수 연구팀은 급성골수성백혈병(acute myeloid leukaemia, AML) 치료제인 길테리티닙(gilteritinib)의 항암 효과가 고함량 비타민 E를 섭취한 마우스에서 약해질 수 있음을 확인하고, 그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셀 바이올로지에 발표했다.
급성골수성백혈병은 골수에서 정상적인 혈액세포로 자라야 할 미성숙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늘어나 정상적인 혈액 생성을 방해하는 암이다. 환자의 약 3분의 1에서는 FLT3(FMS-like tyrosine kinase 3)라는 유전자에 변이가 발견되는데, FLT3 단백질은 세포 표면에서 성장과 생존 신호를 전달하는 일종의 스위치 역할을 한다. 정상적인 FLT3는 필요할 때만 작동하지만, 특정 변이가 생기면 스위치가 계속 켜진 것처럼 신호를 보내 백혈병 세포의 증식과 생존을 돕게 된다. 길테리티닙은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된 FLT3를 억제하는 표적항암제로, 기존 치료에 반응하지 않거나 재발한 FLT3 변이 급성골수성백혈병 치료에 사용된다.
그런데 연구팀은 길테리티닙이 단순히 FLT3의 성장 신호를 차단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암세포에 일종의 ‘녹이 슬도록’ 만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기에는 페롭토시스(ferroptosis)*라는 세포 사멸 과정이 관여하는데, 페롭토시스는 철이 관여하는 산화 반응으로 세포막을 이루는 지방에 과산화물이 쌓이고, 결국 세포막이 손상되면서 세포가 죽는 현상이다. 철로 만든 물체가 산소와 반응해 녹이 슬고 약해지는 것처럼, 세포에서도 철이 산화 반응을 촉진해 세포막의 손상을 키우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 세포 안에 금속의 녹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비타민 E가 암세포의 약해진 산화 방패 회복
암세포 역시 이러한 산화 손상을 그대로 받아들이고만 있지는 않는다. 세포막에 쌓인 산화 지질을 제거하는 여러 방어 체계를 갖추고 있는데, 그중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GPX4(glutathione peroxidase 4)라는 효소다. GPX4는 산화된 지질을 비교적 안전한 형태로 바꾸어 페롭토시스를 억제한다. 그런데 GPX4가 제대로 만들어지고 기능하려면 일반적인 아미노산과는 조금 다른 셀레노시스테인*이라는 특수한 아미노산이 필요하다. GPX4가 세포막에 번지는 산화 손상을 막는 소화기라면, 셀레노시스테인은 그 소화기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핵심 부품인 셈이다.
연구진은 GPX4가 만들어질 때 셀레노시스테인이 사용되면 빛을 내도록 설계한 세포를 이용해 이 과정을 방해하는 약물을 스크리닝하였고, 그 결과 길테리티닙의 효과가 특히 두드러짐을 확인하였다. 이어진 실험에서는 변이된 FLT3가 GPX4를 합성할 때 셀레노시스테인이 효율적으로 사용되도록 도와, 백혈병 세포의 산화 방어 능력을 높이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반대로 길테리티닙으로 FLT3를 억제하자 GPX4 생성이 줄어들고 세포막의 지질 과산화가 증가하면서 페롭토시스가 촉진됐다. 즉, 길테리티닙은 암세포의 성장 신호를 끄는 동시에, 스스로를 산화 손상으로부터 지키던 방어 체계까지 약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비타민 E를 길테리티닙과 함께 처리하자 암세포의 사멸이 다시 감소했다. 그렇다면 먹는 비타민 E도 같은 영향을 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연구팀은 FLT3 변이 백혈병 세포를 이식한 생쥐에게 비타민 E가 많이 들어간 강화 사료를 먹이면서 길테리티닙을 투여했다. 그 결과 비타민 E 강화 사료를 먹은 마우스에서는 길테리티닙 치료에 따른 생존 이점이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길테리티닙에 의한 페롭토시스 과정을 비타민 E가 대신 막아서 치료 효과를 일부 상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항암치료 중에는 보충제도 치료 변수
다만 이번 결과는 세포와 마우스에서 얻은 전임상 연구이므로, 암 환자에게 비타민 E 섭취를 중단하라고 권고할 근거는 부족하다. 특히 고함량 비타민 E 강화 사료를 이용한 마우스 실험 결과를 평소 음식으로 섭취하는 비타민 E나 다른 암종, 다른 항암제, 모든 종류의 항산화제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다만 항암치료 중 영양제나 보충제를 복용하고 있다면 그 종류와 용량을 의료진과 공유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임상 연구를 통해 사람에게도 같은 상호작용이 나타나는지가 확인된다면, 항암제의 작용 기작을 이해하는 것과 함께 같이 복용하는 보충제도 중요한 치료 변수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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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용어 해설
* 활성산소(reactive oxygen species): 산소에서 유래한 반응성이 높은 분자로, 과도하게 쌓이면 DNA와 단백질, 세포막 등에 산화 손상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
* 페롭토시스(ferroptosis): 철에 의해 세포막의 지질 산화가 과도하게 일어나면서 세포막이 손상돼 발생하는 세포 사멸 현상
* 셀레노시스테인(selenocysteine): 셀레늄을 포함하는 특수한 아미노산, 일반적인 시스테인과 비슷하지만 황 대신 셀레늄을 포함
- 정회빈 리포터
- acochi@hanmail.net
- 저작권자 2026-08-2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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