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뇌는 흔히 우리가 아는 우주에서 가장 복잡한 구조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뇌를 이루는 수많은 신경세포는 눈과 귀, 피부를 통해 들어온 정보를 받아들이고, 기억과 경험을 불러내 빠르게 판단하고 행동한다.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뇌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해내는지 연구해 왔지만, 수백억 개의 신경세포가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하나의 생각과 판단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뇌의 정보 처리 방식은 인공지능을 설계하는 데 중요한 영감을 제공해 왔다. 인공지능이 사진 속 개와 고양이를 구분하는 과정을 떠올려 보자. 합성곱 신경망(convolutional neural network)*과 같은 인공지능은 먼저 이미지에서 선이나 색의 경계 같은 단순한 특징을 찾고, 이를 조합해 눈, 귀, 수염처럼 더 복잡한 형태를 파악한 뒤 최종적으로 개와 고양이를 구분한다. 뇌 역시 감각기관에서 들어온 신호를 초기 감각 영역이 먼저 처리하고, 그 정보가 여러 상위 영역을 거치면서 점차 복잡한 판단으로 이어진다고 설명되어 왔다. 마치 공장의 컨베이어벨트에서 원료(정보)가 여러 공정을 차례로 거쳐 완제품(판단)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오늘날의 모든 인공지능이 이런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계층적 정보 처리 개념은 오랫동안 인공지능 설계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어 왔다.
인공지능 설계에 영감을 준 뇌의 작동 방식
하지만 뇌과학이 발전하면서 실제 뇌가 정보를 이렇게 한 방향으로만 처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사람의 뇌는 감각과 기억, 움직임을 동시에 처리하면서도 작은 전구 하나 정도의 에너지만으로 작동한다. 반면 오늘날의 인공지능은 수많은 반도체와 냉각 장치가 들어찬 거대한 데이터센터를 필요로 한다.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어배너-섐페인의 블라소프 교수 연구팀은 오랜 진화를 통해 만들어진 뇌의 정보 처리 방식을 더 정확히 이해한다면, 지금보다 효율적이고 전력 소모가 적은 인공지능을 설계하는 데 새로운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연구팀은 이러한 가능성을 살펴보기 위해 마우스의 촉각을 이용한 실험을 진행했다. 마우스에게 수염은 사람의 손끝과 비슷한 중요한 감각기관이다. 어두운 곳을 이동할 때 수염으로 벽이나 장애물의 위치를 감지하고 움직일 방향을 정한다. 수염에서 들어온 촉각 정보는 S1이라 불리는 일차체성감각피질*에 도달하는데, S1은 전통적으로 촉각 정보를 일차적으로 처리해 다른 뇌 영역으로 전달하는 곳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S1에서도 동물의 판단이나 행동 선택과 관련된 신경 활동이 관찰되면서, 단순한 감각 정보의 접수처를 넘어 의사결정 과정에도 관여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연구팀은 이를 마우스 행동 실험으로 확인하고자 했으며, 그 결과를 지난 5월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하였다.
수염으로 주변을 인식하며 달리는 촉각 가상현실
연구진은 먼저 마우스가 시각보다 수염에 크게 의존해 주변을 탐색하는 습성을 이용하여 일종의 ‘촉각 가상현실’을 만들었다. 마우스의 머리를 고정한 채 공중에 띄운 가벼운 공 위를 달리게 하고, 공의 움직임에 맞춰 양옆의 벽이 움직이도록 해 좁은 복도를 달리는 듯한 환경을 구현했다. 실험 도중 한쪽 벽이 갑자기 가까이 다가오면 마우스는 충돌을 피하기 위해 반대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했다. 여러 수염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제한하기 위해 양쪽에 긴 수염 한 쌍만 남기고 나머지는 짧게 다듬었다.
그렇다면 벽이 수염에 닿는 순간 S1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연구진이 S1 신경세포의 전기 신호와 마우스의 움직임을 함께 기록한 결과, 수염이 벽에 처음 닿은 뒤 실제 회피 동작이 나타나기까지는 평균 약 0.32초가 걸렸다. 그런데 이 짧은 순간 동안 S1의 신경 활동은 예상보다 역동적으로 변했다. 평소에는 여러 신경세포가 수염의 각도와 움직임, 달리는 속도, 다리 위치 등 서로 다른 정보를 나타냈지만, 벽을 감지한 뒤에는 신경세포들의 활동이 빠르게 하나의 공통된 흐름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짧고 강한 반응이 나타난 뒤 잠시 억제되었고, 이후 여러 피질층의 활동이 함께 서서히 증가하다가 마우스가 방향을 트는 순간 정점에 이르렀다. 각자 다른 이야기를 하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같은 구호를 외치기 시작하고, 결정을 내릴 때까지 그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모습과 비슷하다.
이러한 신경 활동의 변화는 뇌의 판단 과정을 설명할 때 널리 사용되는 증거 누적 모델(drift-diffusion model)*과도 닮아 있었다. 이 모델에서는 불확실한 감각 정보가 시간에 따라 조금씩 쌓이다가 일정한 기준을 넘으면 하나의 행동을 선택하게 된다. 예를 들어 마우스가 오른쪽에서 다가오는 벽을 수염으로 계속 감지하면 ‘왼쪽으로 피해야 한다’는 증거가 점차 쌓이고, 일정 수준에 도달하는 순간 실제로 방향을 트는 식이다. 연구진이 실험에서 측정한 S1의 신경 활동과 마우스의 움직임을 이 모델에 적용한 결과, 관찰된 변화가 증거 축적 후 행동으로 이어지는 과정과 잘 들어맞았다.
촉각을 느끼는 영역도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이번 연구 결과는 촉각을 처음 받아들이는 S1 영역에서 단순히 감각 정보를 전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결정의 일부에 참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뇌에서 여러 영역이 정보를 한 방향으로 전달하기보다 서로 주고받으며 동시에 판단하는 방식은 더 적은 에너지로도 빠르고 유연하게 판단하는 인공지능을 설계하는 데 새로운 힌트가 될 수 있다. 다음 세대의 인공지능은 작은 뇌가 여러 영역의 정보를 끊임없이 주고받으며 하나의 결론에 이르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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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용어 해설
* 합성곱 신경망: 이미지 속 형태와 패턴을 분석하여 사물을 구분하는 인공지능 기술
* 일차체성감각피질: 몸에서 들어온 촉각 정보를 처음 처리하는 뇌 영역
* 증거 누적 모델: 여러 감각 정보를 계속 축적해 어느 한쪽을 선택할 만큼 충분한 증거가 모이면 행동으로 이어진다고 보는 뇌의 의사결정 모델
- 정회빈 리포터
- acochi@hanmail.net
- 저작권자 2026-08-1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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