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 슬리퍼'의 착각 그리고 수면 부채의 경고
정치인이나 최고경영자(CEO) 중에는 하루 3~4시간만 자고도 왕성하게 활동한다고 자랑하는 이들이 많다. 최근 일본의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 역시 재임 중 수면 시간이 0~3시간에 불과하다고 밝혀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유전적으로 타고난 극소수를 제외하면, 의지나 훈련으로 수면 시간을 줄이는 것은 건강을 담보로 한 위태로운 선택이다.
일반적인 성인에게 필요한 적정 수면 시간은 하루 7.5시간에서 8.5시간 사이이다. 수면 연구자들에 따르면 만성적인 수면 부족은 체내에 노폐물과 독소를 누적시켜 심혈관 질환이나 뇌 질환의 위험을 크게 높인다. 주말에 몰아서 잠을 자는 행위 역시 평일에 쌓인 '수면 부채(Sleep debt)'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신호이다.
수면 부족이 마비시키는 뇌의 판단력
수면 부족이 지속되면 뇌의 정화 및 회복 기능이 저하되면서 정작 자신이 얼마나 피로한지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른다. 포르투갈 리스본 대학교의 수면 연구가 카티아 레이스(Catia Reis) 교수는 이를 "수면 부족이 심해질수록 자신의 피로도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뇌 기능 자체가 마비되는 역설"로 설명한다.
뇌는 수면 상태에서 낮 동안 쌓인 독소를 배출하고 에너지를 재충전하며 기억을 정리한다. 따라서 수면이 부족해지면 피로감을 느끼는 감각 세포의 기능이 함께 떨어져, 스스로는 "주중에 4시간만 자도 문제없다"고 착각하게 된다. 스마트워치 등 웨어러블 기기의 점수에 지나치게 연연해 불안감을 느끼는 것 역시 뇌의 수면 조절 불균형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타고난 숏 슬리퍼: 유전자 변이의 비밀
그렇다면 실제로 6시간 미만을 자고도 아무런 건강 이상 없이 에너지 넘치게 생활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프란시스코(UCSF)의 푸잉후이(Ying-Hui Fu) 교수 연구진은 이들을 '선천적 숏 슬리퍼(Natural short sleepers)'로 정의하고, 이들이 특정한 유전자 변이를 가지고 있음을 밝혀냈다.
연구진은 2009년 수면·각성 주기 제어에 관여하는 'DEC2' 유전자 변이를 시작으로, 심장 및 신경 신호 전달을 매개하는 'ADRB1', 불안과 각성을 조절하는 'NPSR1' 등 수면 효율과 관련된 유전자 변이들을 연이어 발견했다. 이들은 일반인과 달리 적은 수면 시간으로도 뇌의 회복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하도록 유전적으로 설계된 극소수의 예외에 해당한다.
수면의 질이 인류의 건강을 결정한다
전문가들은 선천적 숏 슬리퍼의 사례가 일반인에게 "잠을 줄여도 된다"는 면죄부가 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수면은 공기와 물 다음으로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요소다. 공기가 없으면 수 분, 물이 없으면 며칠 안에 사망하듯, 잠을 전혀 자지 못하면 수 주 안에 생명이 위험해진다.
푸잉후이 교수는 "선천적 숏 슬리퍼에 대한 연구는 단순히 잠을 적게 자는 방법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수면의 효율과 질을 높여 뇌 질환과 만성 질환을 예방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한다. 수면의 메커니즘을 밝혀내고 전 대중의 수면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면, 인류가 겪는 수많은 뇌·신체 질환의 발병률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 김민재 리포터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6-08-2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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