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게 물린 뒤 찾아온 감기 증상… 21세기에 부활한 '중세의 공포'
미국 오리건주에 사는 폴 게일로드는 어느 날 감기와 비슷한 발열과 오한을 느꼈다. 이틀 전 아파 보이던 키우던 고양이에게 물린 적이 있었기에, 의사는 동물에게 할퀴이거나 물렸을 때 흔히 발생하는 세균 감염인 '고양이 할큄병(혹은 묘소병: 바르토넬라 헨셀라 Bartonella henselae 세균에 감염된 고양이에게 물리거나 할퀴었을 때 발생하는 인수공통감염병)'으로 진단하고 항생제를 처방했다. 그러나 약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의 상태는 급격히 악화되어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결국 혼수 상태에 빠졌다. 정밀 검사 결과, 그를 죽음의 문턱까지 몰고 간 병마는 고양이 할큄병이 아닌, 14세기 유럽 인구의 절반 가까이를 앗아간 '페스트(Plague: 흑사병)'였다.
많은 사람이 흑사병을 교과서 속 중세의 역사로만 기억하지만, 페스트 균은 사라지지 않고 우리 곁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로베르트코흐연구소(RKI)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5년 사이에만 전 세계적으로 3,000건 이상의 페스트 감염이 보고되었으며, 이 중 5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마다가스카르, 콩고민주공화국, 우간다 등지에서는 지금도 매년 수백 건의 신규 환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미국 서부 지역에서도 간헐적으로 감염 사례가 보고된다.
세 가지 얼굴을 가진 침략자: 림프절, 혈액, 그리고 폐를 점령하다
페스트를 일으키는 원인균은 '예르시니아 페스티스(Yersinia pestis)'라는 세균이다. 이 세균은 인체에 침투하는 경로에 따라 세 가지 형태로 모습을 바꾸며 장기를 파괴하고 치명적인 내출혈을 일으킨다. 치료받지 않을 경우 치사율이 100%에 육박하는 이유이다.
먼저 선페스트(Bubonic plague)는 가장 흔한 형태로, 페스트 균에 감염된 쥐나 야생 조류를 물었던 벼룩이 사람을 물 때 전파된다. 균이 림프절로 침투해 계란 크기만한 고통스러운 부종(선)을 형성한다.
패혈성 페스트(Septicemic plague)는 감염된 동물의 피에 직접 노출되거나 벼룩에게 물려 균이 곧바로 혈관 속으로 침투할 때 발생하며, 전신에 균이 퍼져 장기 손상을 유발한다. 반면, 폐페스트(Pneumonic plague)는 감염자의 비말(침방울)이나 공기 중 입자를 통해 폐로 직접 균이 들어오는 경우이다. 세 가지 형태 중 유일하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 공기를 통해 직접 전파되는 가장 위험한 형태이다.
유럽에서는 왜 사라졌을까?… '숙주 쥐'와 주거 환경의 변화
1346년에서 1353년 사이 유럽에서만 2,500만~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페스트가 오늘날 유럽에서는 왜 자취를 감추었을까? 유럽에서 벼룩에 의한 페스트 마지막 보고 사례는 1945년 프랑스와 이탈리아였다. 과학자들은 그 핵심 원인을 '인간과 야생 동물의 주거 공간 분리'에서 찾는다.
중세 유럽은 사람과 쥐가 한 지붕 아래 밀접하게 얽혀 살아 벼룩이 세균을 옮기기 최적의 환경이었다. RKI의 분자생물학자 홀거 쇼츠(Holger Scholz) 박사는 "페스트 균을 가진 쥐, 특히 검은 쥐는 균의 장기적인 숙주라기보다 균에 걸려 곧 죽는 피해자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페스트 자생 지역의 일부 쥐들은 세균에 대한 내성을 형성하기도 했지만, 현대 유럽의 깨끗해진 주거 환경과 청결해진 도시 구조는 페스트 균을 보존하고 퍼뜨릴 '야생 쥐 및 다람쥣과 동물(숙주)'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버렸다.
골든타임은 단 48시간… 팬데믹 재발 가능성과 생물 테러의 과학
페스트는 현대 의학의 무기인 '항생제'로 충분히 치료 가능한 질병이다. 하지만 문제는 '진단의 지연'이다. 워낙 희귀한 질환이다 보니 초기에 단순 감기로 오진해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실제 미국에서는 조깅을 즐기던 한 청년이 감기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페스트라는 의심을 받지 못하고 집으로 돌려보내진 뒤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하기도 했다. 특히 공기로 감염되는 폐페스트의 경우 첫 증상이 나타난 후 단 48시간 이내에 항생제를 투여받지 못하면 사망에 이른다.
그렇다면 페스트가 과거처럼 또다시 전 세계를 삼키는 제4차 대유행(팬데믹)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을까? 전문가들은 그 가능성을 극히 낮게 본다. 코로나19나 독감 같은 호흡기 바이러스와 달리 페스트 균은 전파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며, 현대 보건 당국의 방역 및 항생제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과학자들이 가장 경계하는 대목은 '유전자 조작을 통한 생물 테러'다. RKI 연구진은 게놈 분석 기술을 통해 자연 발생 변이와 인위적으로 조작된 세균을 판별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며, 지하철 환기구 등 환경 시료에서 페스트 균을 즉각 감지하는 초고속 진단망을 구축하여 현대 사회를 위협할 변수들을 과학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 김민재 리포터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6-08-1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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