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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학
정회빈 리포터
2026-07-28

마취된 뇌는 어디까지 듣고 있을까 무의식 상태에서도 해마의 정보 처리 능력이 유지될 수 있음을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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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마취 동안에는 주변의 소리를 인식할 수 없을까. ⒸGetty Images
전신마취 동안에는 주변의 소리를 인식할 수 없을까. ⒸGetty Images

전신마취를 받은 사람은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의식을 잃고 통증을 느끼지 못하며, 깨어난 뒤에는 그 시간에 벌어진 일을 대부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 매우 드물게 마취 중 들었던 소리나 주변 상황을 기억하는 사례가 보고되면서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마취 상태에서 뇌는 정말 모든 활동을 멈추는 것일까, 아니면 의식이 없는 동안에도 뇌의 일부는 여전히 주변의 소리를 인식할 수 있을까.

 

마취 상태에서는 뇌의 인지 기능도 멈출까

지난 5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된 연구는 무의식 상태의 사람 뇌를 훨씬 세밀하게 분석함으로써 이 질문에 대한 새로운 단서를 제시했다. 미국 베일러 의과대학의 셰스 박사 연구팀은 전신마취를 받은 환자의 해마에서 수백 개 신경세포의 활동을 직접 기록했다. 그 결과 해마의 신경세포는 단순히 소리를 감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반복된 경험에 따라 반응을 변화시키며 언어의 의미 차이까지 구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의식이 사라진 상태에서도 뇌가 예상보다 복잡한 정보를 처리할 수 있음을 보여주며, 무의식적 정보 처리의 범위를 한층 넓힌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연구에는 약물저항성 측두엽 뇌전증(temporal lobe epilepsy)으로 뇌 절제 수술을 앞둔 환자 7명이 참여했다. 측두엽 뇌전증은 기억과 감정, 언어 처리에 관여하는 측두엽 부근의 신경세포에서 비정상적인 전기 신호가 발생해 반복적인 발작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여러 종류의 뇌전증 치료제를 충분히 사용했음에도 발작이 계속되는 경우를 약물저항성 뇌전증이라고 한다. 이때 검사를 통해 발작이 시작되는 부위를 비교적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면, 해당 뇌 조직을 제거하는 수술이 치료 방법으로 고려될 수 있다.

이번 실험에는 뇌 절제 수술을 앞둔 뇌전증 환자 7명이 참여했다. ⒸGetty Images
이번 실험에는 뇌 절제 수술을 앞둔 뇌전증 환자 7명이 참여했다. ⒸGetty Images

연구팀은 환자들의 동의를 얻어 수술 과정에서 제거될 예정이던 해마 조직에 전극을 잠시 삽입하고, 최대 30분 동안 신경세포의 활동을 기록했다. 해마는 측두엽 안쪽 깊숙한 곳에 위치하며, 새로운 기억을 만들고 경험을 저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뇌 영역이다. 연구를 위해 제거되는 뇌 조직의 범위가 추가로 늘어난 것은 아니었다. 또한 참가자들은 수술에서 깨어난 뒤 실험 중 들려준 소리나 이야기의 내용을 의식적으로 기억하지 못했다.

 

뉴로픽셀로 확인한 마취된 뇌의 활동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의 뇌에서 개별 신경세포의 활동을 직접 관찰하는 일은 쉽지 않다. 뇌파검사나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과 같은 기존 기술은 뇌의 전반적인 활동 변화를 파악하는 데 유용하지만, 뇌 깊은 곳에 있는 개별 신경세포가 순간적으로 주고받는 신호까지 세밀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연구팀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뉴로픽셀(Neuropixels)이라는 고밀도 미세전극 기술을 활용했다. 뉴로픽셀 프로브는 머리카락 한 올 정도로 가느다란 실리콘 막대에 수백 개의 전기 신호 감지 센서가 촘촘히 배열된 장치이다. 이를 이용하면 뇌 깊은 곳에 있는 여러 신경세포의 활동을 동시에 측정하면서 각각의 신호를 구분해 기록할 수 있다.

뇌 조직에 뉴로픽셀을 삽입하는 수술 장면 (왼쪽), 전극 삽입 지점을 뇌 영상에 옮겨 표시한 그림 (가운데), CT 영상으로 전극이 해마 조직을 실제로 통과했음을 확인한 영상 (오른쪽). ⒸNature
뇌 조직에 뉴로픽셀을 삽입하는 수술 장면 (왼쪽), 전극 삽입 지점을 뇌 영상에 옮겨 표시한 그림 (가운데), CT 영상으로 전극이 해마 조직을 실제로 통과했음을 확인한 영상 (오른쪽). ⒸNature

첫 번째 실험은 단순한 ‘삑’ 소리인 표준음을 반복해서 들려주다가 간혹 높낮이가 다른 소리를 섞었을 때 뇌가 이를 구별하는지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환자 3명에게 이러한 소리를 들려준 결과, 기록된 해마 신경세포의 약 70%가 갑자기 끼어든 낯선 소리에 반응했다. 주목할 점은 실험이 이어지는 동안 나타났다. 약 10분에 걸쳐 같은 과제를 반복하자, 해마에서는 표준음과 다른 소리를 구별하는 신경 신호가 점차 뚜렷해졌다. 단순히 서로 다른 소리를 감지한 데 그치지 않고 반복되는 규칙을 익힌 뒤 그 규칙에서 벗어난 소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신경세포의 활동 방식이 훈련된 것이다.

두 번째 실험은 한층 더 복잡했다. 나머지 환자 4명에게는 10~20분 분량의 교육 영상과 팟캐스트 음성을 들려주었다. 개인적인 경험을 들려주는 이야기부터 외계 문명을 설명하는 과학 콘텐츠까지,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이루어진 자료였다. 분석 결과 해마 신경세포의 활동에는 단어의 길이나 사용 빈도뿐 아니라, 단어의 의미와 관련된 정보도 담겨 있었다. 연구진은 사람, 장소, 감정, 사물 등 단어를 의미에 따라 여러 범주로 나누었는데, 분석한 신경세포의 약 86%가 적어도 하나의 의미 범주에 따라 서로 다른 반응을 보였다. 예를 들어 ‘개’라는 단어에 반응한 신경세포는 의미가 비슷한 ‘고양이’에도 유사하게 반응했지만, ‘펜’과 같은 다른 범주의 단어에는 전혀 다른 반응 패턴을 나타냈다. 이는 마취 상태의 뇌가 단순히 소리의 높낮이나 단어의 발음을 구별하는 수준을 넘어, 의미가 비슷한 단어들을 같은 범주로 묶어 처리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마취 중 신경세포들은 각 단어의 의미 범주를 우연 수준보다 높은 정확도로 판별하였다. ⒸNature
마취 중 신경세포들은 각 단어의 의미 범주를 우연 수준보다 높은 정확도로 판별하였다. ⒸNature

 

마취 중에도 이어진 해마의 언어 처리 활동

물론 이러한 결과가 마취 상태의 뇌가 깨어 있을 때와 똑같이 작동한다는 뜻은 아니다. 연구에 참여한 환자들은 안정적인 전신마취 상태를 유지했고, 수술 중 들은 내용을 깨어난 뒤 명시적으로 기억하지 못했다. 마취제의 영향으로 해마 내부에서는 복잡한 정보 처리가 이루어졌더라도, 그 신호가 뇌의 다른 영역으로 전달되어 의식적인 경험이나 장기기억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는 의식이 사라지면 고차원적인 정보 처리도 함께 멈춘다는 기존의 통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뇌 깊숙한 곳에 자리한 해마의 개별 신경세포에서 학습에 따른 변화와 자연어의 의미 처리를 동시에 관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뉴로픽셀처럼 수백 개 신경세포의 활동을 정밀하게 기록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기존의 뇌파검사나 영상 기술로는 포착하기 어려웠던 무의식 상태의 세밀한 정보 처리 과정이 하나씩 밝혀지기 시작한 것이다.

뉴로픽셀과 같은 새로운 신경 기록 기술이 발전하면서 무의식 상태의 뇌 활동이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Getty Images
뉴로픽셀과 같은 새로운 신경 기록 기술이 발전하면서 무의식 상태의 뇌 활동이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Getty Images

 

관련 연구 바로 보러 가기

Plasticity and language in the anaesthetized human hippocampus, Katlowitz et al., 2026, Nature

정회빈 리포터
acochi@hanmail.net
저작권자 2026-07-2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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