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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학
김민재 리포터
2026-08-10

현대 농업의 그늘: 우리가 먹는 채소, 과거보다 영양소 ‘희석’됐다 고생산성 품종 개량이 불러온 ‘영양소 희석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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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 속의 빈곤? 겉만 번지르르한 현대 작물의 비밀

잘못된 식습관이 만성 질환, 심장병, 비만 등 현대인들을 위협하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신선한 과일과 채소, 통곡물을 찾는 손길이 늘고 있다. 기름진 가공식품을 멀리하고 초록빛 식탁을 구성하는 것만으로도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몸에 좋다’고 확신하며 구매하는 신선한 농작물들이 과연 우리 조부모 세대가 먹었던 것만큼의 영양가를 품고 있을까?

겉보기에는 더 크고 탐스러우며 윤기가 흐르지만, 그 내실을 채우는 비타민과 미네랄 같은 미량 영양소의 농도는 수십 년 전에 비해 현저히 감소했다. ©Getty Images
겉보기에는 더 크고 탐스러우며 윤기가 흐르지만, 그 내실을 채우는 비타민과 미네랄 같은 미량 영양소의 농도는 수십 년 전에 비해 현저히 감소했다. ©Getty Images

학계의 최신 연구와 분석에 따르면 결론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겉보기에는 더 크고 탐스러우며 윤기가 흐르지만, 그 내실을 채우는 비타민과 미네랄 같은 미량 영양소의 농도는 수십 년 전에 비해 현저히 감소했다는 지적이다. 고생산성과 대량 재배에만 초점을 맞춘 현대 농업 기술이 도리어 작물의 내실을 비워버리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은 셈이다.

 

고생산성 품종 개량이 불러온 ‘영양소 희석 효과’

이 문제의 핵심 기전을 규명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 대학교 지구우주과학부의 지질학자 데이비드 몽고메리(David Montgomery) 교수는 토양과 식품 영양의 상관관계를 다룬 약 1,000편의 동료 심사(Peer-reviewed) 논문을 정밀 분석했다. 분석 결과는 흥미로웠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농작물이 함유한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같은 이른바 ‘거대 영양소(Macronutrients)’의 총량이나 비율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비타민과 철분, 아연처럼 인체의 원활한 대사와 생리 기능을 돕는 미량 영양소(Micronutrients)에서 심각한 농도 저하가 관찰되었다. ©Getty Images
비타민과 철분, 아연처럼 인체의 원활한 대사와 생리 기능을 돕는 미량 영양소(Micronutrients)에서 심각한 농도 저하가 관찰되었다. ©Getty Images

그러나 비타민과 철분, 아연처럼 인체의 원활한 대사와 생리 기능을 돕는 미량 영양소(Micronutrients)에서 심각한 농도 저하가 관찰되었다. 몽고메리 교수는 이를 현대 농업의 ‘희석 효과(Dilution effect)’로 설명한다. 농가와 시장의 요구에 맞춰 단위 면적당 수확량을 극대화하거나, 알이 굵고 크게 자라도록 작물을 개량할 경우 식물이 토양에서 흡수하는 미네랄의 절대량은 늘어나지 않는다. 결국 한정된 영양소가 비대해진 작물 전체에 묽게 퍼지면서, 소비자가 동일한 무게의 채소를 먹더라도 실제 섭취하게 되는 미량 영양소의 양은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경운과 화학 물질이 파괴한 토양 생태계와 파이토케미컬

농작물이 품는 영양과 풍미의 원천은 결국 흙이다. 건강한 흙 속에는 미생물과 균류가 그물망처럼 얽혀 생태계를 이루며 식물의 뿌리가 영양을 흡수하도록 돕는다. 그러나 현대식 기업형 농업은 땅을 깊게 갈아엎는 경운(Tilling) 작업을 반복하고, 제초제와 살충제, 화학 비료를 쏟아붓는다. 이러한 방식은 단기적으로 해충을 막고 속성 성장을 도울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토양 생태계를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파괴한다.

토양 생태계가 무너지면 식물은 단순 질소나 인산, 칼륨 외에 유기적인 미네랄을 흡수하지 못하게 된다. ©Getty Images
토양 생태계가 무너지면 식물은 단순 질소나 인산, 칼륨 외에 유기적인 미네랄을 흡수하지 못하게 된다. ©Getty Images

토양 생태계가 무너지면 식물은 단순 질소나 인산, 칼륨 외에 유기적인 미네랄을 흡수하지 못하게 된다. 특히 식물이 외부 스트레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생리활성 물질이자, 인체 내에서 탁월한 항염증·항산화 작용을 하는 ‘파이토케미컬(Phytochemicals)’의 생산량이 급감한다. 파이토케미컬은 세포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작물 특유의 깊은 맛과 향을 결정하는 물질이다. 오늘날 마트에서 사는 채소들이 과거에 비해 싱겁고 풍미가 옅다고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이 아니라 과학적인 인과관계의 결과인 셈이다. 몽고메리 교수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화학적 교란을 최소화하고 땅의 자연 복원력을 높이는 ‘재생 농업(Regenerative farming)’으로의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공포 마케팅을 넘어선 ‘식단의 다양성’ 확보가 해법

그렇다면 영양소가 줄어든 현대의 농작물 대신 값비싼 종합 영양제나 보충제에 의존해야 할까? 보건 및 영양 전문가들은 과도한 불안감에 빠질 필요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독일 연방영양센터의 아스트리드 도날리스(Astrid Donalies) 영양학자는 공급망의 발달이 가져온 긍정적 측면을 강조했다. 과거 조부모 세대는 겨울철이 되면 저장해 둔 몇 가지 채소와 구황작물로 식단을 채워야 했지만, 현대 소비자들은 글로벌 물류망 덕분에 일 년 내내 수십 가지의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영양학회(DGE) 역시 특정 작물의 미량 영양소 감소 수치에 매몰되기보다는, 식단의 '다양성'을 극대화하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대안이라고 제시한다. 가공되지 않은 통곡물을 주식으로 삼고, 콩류와 견과류를 식단에 적극적으로 배치하며, 매일 다양한 색깔의 제철 과일과 채소를 섭취하는 것만으로도 현대 농업의 희석 효과를 충분히 상쇄하고 필요한 미량 영양소를 모두 채울 수 있다는 조언이다.

김민재 리포터
minjae.gaspar.kim@gmail.com
저작권자 2026-08-1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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