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치는 아니다, 그러나 시작이다
2026년 5월 31일,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연례회의 본회의장에 청중들의 기립박수가 울렸다. 암 연구자들이 주로 조용히 앉아 발표를 듣는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친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날 발표한 것은 하버드 의대이자 다나파버 암연구소의 브라이언 울핀 박사였는데, 그가 발표한 내용은 새로운 약 다락소나라십(daraxonrasib)에 관한 임상 3상 시험의 결과였다.
주요 발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췌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2차 치료에서 이 약을 투여받은 환자들의 중앙 생존 기간은 13.2개월이었다. 기존 항암화학요법을 받은 대조군은 6.7개월이었으니 거의 두 배가 된 셈이다.
왜 췌장암은 이토록 치료가 어려운가
췌장암은 가장 예후가 나쁜 암 중 하나이다. 조기 발견이 극도로 어렵고, 발견됐을 때는 이미 전이된 경우가 많다. 복부 깊숙한 곳, 복강과 척추 사이에 자리한 췌장은 일반적인 검진 방법으로는 효과적으로 살피기 어렵다. 유전적 소인이 있거나 가족력이 있는 경우에 한해 선별 검사를 권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증상도 교묘하다. 초기에는 아무 증상이 없거나, 있어도 상복부 통증, 허리 통증, 구역감, 소화 장애, 식욕 감퇴, 체중 감소처럼 다른 질환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것들이라 그냥 지나치기 쉽다. 진단이 늦어지는 이유이다.
전이성 췌장암, 즉 다른 장기로 이미 퍼진 경우의 5년 생존율은 약 3%이다. 전체 췌장암 환자를 합쳐도 진단 후 5년 뒤 살아있는 비율은 11%에 불과하다. 독일에서는 2023년 기준 약 2만 명이 췌장암을 진단받았고, 같은 해 사망자 수도 이에 근접했다.
수술이 가능한 경우, 즉 종양이 다른 장기로 번지기 전에 발견됐을 때는 췌장의 상당 부분을 제거하는 수술을 시행하고 이후 항암화학요법, 경우에 따라 방사선 치료를 더한다. mRNA 백신을 이용해 재발을 막으려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전이가 일어난 뒤에는 선택지가 사실상 없었다. 항암화학요법이 생존 기간을 어느 정도 연장할 수 있지만, 심각한 부작용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독일 암정보서비스 소장 수잔네 베크-레머스 박사는 "수년간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시작점에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RAS 유전자, 30년의 숙제
다락소나라십이 주목받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RAS 유전자부터 알아야 하는데, RAS 유전자는 바로 세포의 성장과 분열을 조절하는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설계도이다. 정상 상태에서 이 단백질은 필요할 때 켜지고 불필요하면 꺼지는 스위치처럼 작동한다. 그런데 췌장암 환자의 90% 이상에서 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정확하게는 KRAS라는 유전자인데, 돌연변이가 생기면 스위치가 항상 켜진 상태가 된다. 꺼지지 않는 성장 신호가 계속 발생하면서 종양이 형성되고 커진다.
연구자들은 수십 년간 이 돌연변이 RAS 단백질을 표적으로 하는 약물을 개발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RAS 단백질의 구조가 작은 약물 분자가 달라붙을 만한 홈이 없어 '표적치료 불가 단백질'로 불렸다. 그 한계를 처음 깨뜨린 것이 KRAS G12C 돌연변이를 표적으로 한 약물이었는데, 이 돌연변이는 폐암에는 흔하지만 췌장암에는 드물었다.
다락소나라십은 다르다. 리볼루션 메디슨이 개발한 이 약은 RAS 단백질에 사이클로필린 A라는 또 다른 단백질과 함께 결합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일종의 '분자 접착제' 메커니즘이다. 이 결합이 RAS 단백질이 활성화된 상태, 즉 '켜진' 상태에서 신호를 보내는 것을 차단한다. 그리고 핵심은 여러 종류의 RAS 돌연변이에 동시에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췌장암에서 흔히 나타나는 다양한 KRAS 돌연변이 유형을 모두 억제할 수 있어, 전이성 췌장암 환자 전체에 적용 가능성이 있다.
RASolute 302 임상 시험
이번 결과는 60개 이상의 의료기관이 참여한 글로벌 무작위 임상 3상 시험 'RASolute 302'에서 나온 것이다. 1차 치료에 실패한 전이성 췌장암 환자 총 459명이 참여했다. 228명은 다락소나라십을 하루 한 번 경구 복용했고, 231명은 의료진이 선택한 2차 항암화학요법을 정맥 주사로 받았다.
중앙 전체 생존 기간은 앞서 언급한 대로 13.2개월 대 6.7개월이었다. 무진행 생존 기간, 즉 암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버티는 기간도 7.2개월 대 3.6개월로 역시 두 배 차이를 보였다. 1차 치료만 받은 적 있는 환자 중 약 30%에서 종양이 실제로 줄었다. 전체 환자의 약 90%에서는 종양이 줄거나 안정화되는 질병 통제 효과가 나타났다.
부작용 측면에서도 항암화학요법보다 나은 면이 있었다. 피부 발진, 설사, 구역감, 손발톱 주변 염증 등이 나타날 수 있지만, 치료에 참여한 의사들은 탈모나 혈구 수 감소같이 항암화학요법에서 자주 나타나는 심각한 부작용이 없어 환자들이 일상을 유지하기 더 수월하다고 평가했다. 약이 경구 복용이라 매일 병원을 찾아 정맥 주사를 맞을 필요가 없다는 것도 삶의 질 측면에서 차이를 만든다.
결과는 ASCO 본회의 발표와 함께 뉴잉글랜드 의학 저널(NEJM)에 동시 게재됐다. 리볼루션 메디슨은 미국 FDA를 포함한 각국 규제 당국에 신약 승인 신청을 준비하고 있으며, 이르면 2026년 내에 승인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엄청난 기대와 냉정한 현실 사이
전문가들의 반응은 흥분과 냉정이 교차한다. 프라이부르크 대학병원 췌장암 센터장 디트리히 루스는 "전이성 췌장암 분야에서 수년간 가장 중요한 임상 발전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뮌헨 공과대학교의 디터 자우어 교수도 "혁명적 돌파구"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나 독일 암연구소 암정보서비스의 수잔네 베크-레머스 박사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락소나라십은 췌장암을 완치하지 못한다. 생존 기간을 늘리는 것이지, 병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13.2개월은 6.7개월보다 두 배이지만, 진단 후 1년을 조금 넘기는 수치이다. 대부분의 환자에게 진단은 여전히 사형 선고에 가깝다.
한계도 있다. 이 약은 현재 1차 치료가 실패한 뒤에 쓰는 2차 치료제로 연구됐다. 1차 치료로 쓸 경우, 또는 항암화학요법과 병용할 경우의 효과를 보는 추가 임상 시험이 진행 중이다. 초기 단계 환자에게도 같은 수준의 효과가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췌장암이 어렵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오랫동안 막혀 있던 벽에 처음으로 균열이 생겼다.
- 김민재 리포터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6-06-3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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