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자를 죽이는 곰팡이
조지 그라이프 박사(30세)가 와이트섬 절벽을 걷다 이상한 것을 발견한 것은 대략 4년 전이었다. 녹색 이끼 군락 사이사이에 갈색으로 죽어가는 패치들이 있었는데, 샘플을 채취해 분석했지만 무엇이 이끼를 죽이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비슷한 장면이 다른 곳에서도 계속 눈에 들어왔다. 그라이프 박사는 이것이 무엇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 과학자들과 몇 년에 걸쳐 공동 연구를 이어간 끝에 범인이 드러났다. 과학계에 한 번도 기록된 적 없는 새로운 곰팡이 종이었다. 이름은 이끼 고사 곰팡이(moss die-back fungus)로 기록되었다.
이 곰팡이가 표적으로 삼는 것은 히스스타 이끼(heath-star moss)이다. 1940년대 남반구에서 영국으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외래 이끼는 포자를 멀리 날리고 빠르게 번식해 1990년대에 이미 영국 전역으로 퍼져 있었다. "1930년대에는 이 자리에 토착 이끼들이 자랐을 것"이라고 그라이프는 말한다. 그는 이들은 "공격적이다. 아스팔트 위에서 자라는 것도 봤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인다.
이끼가 없으면 무너지는 것들
이끼는 작고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생태계의 기반을 이루는 존재이다. 영국에만 1,000종 이상이 서식하며 탄소를 저장하는 이탄지대, 희귀한 온대 우림 같은 서식지의 토대를 이룬다. 그런데 히스스타 이끼가 이 자리를 차지하면 토착 이끼들이 밀려나고, 이 균형이 무너지면 그 위에 얹혀 있던 생태계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 그라이프가 일하는 카디프 암궤다 심루 박물관 인근 황무지에서도 토착 이끼들이 크게 줄어든 상태이다.
사실, 영국의 생물 다양성은 세계에서 가장 훼손된 편에 속한다. 6종 중 1종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고, 이미 약 2,000종의 외래 동식물이 들어와 그중 일부는 토착 생태계를 지배하고 있다.
죽음의 고리
웨일스 베어논 국립공원을 걸으며 그라이프가 가리킨 것은 손바닥만 한 갈색 원형이었다. 이끼 군락 사이에 생기는 '죽음의 요정 고리(fairy rings of death)'인데, 이는 곰팡이가 이끼 줄기를 타고 세포 안으로 파고들어 죽이는 것이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줄기 끝에 솜사탕처럼 부풀어 오른 하얀 덩어리, 즉 곰팡이가 달려 있다.
그런데 그 주변에서는 새로운 것이 돋아나고 있었다. 죽은 이끼가 남긴 빈자리에 토착 헤더 식물들이 자라기 시작한 것이다. 경쟁자가 사라지자 원래 그 땅의 것들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는 셈이다.
자연이 스스로 싸운다
외래종 문제는 보통 인간이 직접 나서야 해결된다. 하지만, 히스스타 이끼를 사람 손으로 제거하거나 화학 처리를 시도했지만 효과는 제한적이었고 비용이 매우 막대했다. 이 곰팡이가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자연이 스스로 해결책을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라이프는 이 곰팡이가 원래 영국에 있던 토착 종이 히스스타 이끼에 적응해 변화한 것일 수 있다고 본다. "영국 환경이 스스로 싸우는 드문 사례"라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분석에서 이 곰팡이는 히스스타 이끼와, 제한적으로 다른 한 종의 이끼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식물이나 동물에는 해가 없다는 뜻인데, 이를 확실히 하려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이 곰팡이는 영국에서 최대 8,000만 그루의 물푸레나무를 고사시킨 애쉬 고사 곰팡이의 가까운 친척이라는 점이다. 같은 친척이지만 이번에는 침략자를 죽이는 편에 서 있기 때문에 학자들은 매우 흥미를 느끼고 있다.
연구팀은 암궤다 심루 박물관에 보관된 18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끼 표본들을 분석해 이 곰팡이가 언제, 어떻게 등장했는지 밝힐 계획이다. 박물관 식물·지구과학 부장 네이선 스미스는 "이 곰팡이가 곤충, 균류, 연체동물, 다른 식물들의 서식지인 이끼 경관을 지킬 기회를 준다"고 말했다. 그라이프는 현재 이 곰팡이를 찾아다니는 유일한 연구자이다. 발견 지점들을 지도에 표시해 보면 자신의 휴가지 지도와 겹친다는 농담도 하며 다른 사람들도 함께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한다.
- 김민재 리포터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6-06-1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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