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선에서 퍼진 한타바이러스 - 40일간의 표류와 귀환
2026년 4월 1일, 네덜란드 해운사 오션와이드 익스페디션스 소속 크루즈선 MV 혼디우스가 아르헨티나 남단 도시 우수아이아를 출항했다. 23개국에서 온 승객과 필리핀 국적 선원으로 구성된 150여 명이 탑승해 남극과 남대서양 외딴섬들을 순항하는 일정이었다. 1박에 무려 1만 4,000유로에서 2만 2,000유로에 달하는, 한화로 따지면 보통 사람의 1년 월급에 육박하는, 초고급 탐험 크루즈였다. 하지만 출항으로부터 40일 뒤, 이 배는 비극적인 사건과 함께 국제 공중보건 대응의 중심에 서 있다.
4월 11일, 70세 네덜란드 남성 승객이 선상에서 숨졌다. 발열, 두통, 복통, 설사 증상이 발현된 지 며칠 만이었다. 이후 사인은 한타바이러스의 일종인 안데스 바이러스 감염으로 확인됐다. 그의 아내는 4월 24일 세인트헬레나섬에서 하선한 뒤 이틀 뒤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의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5월 2일에는 또 다른 승객이 선상에서 사망했으나, 이 사례의 사인은 아직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태이다. 영국 국적 승객 한 명은 중태로, 요하네스버그로 긴급 이송됐다. 배는 갈 곳을 찾지 못한 채 대서양을 표류했다.
사람 간 전파가 가능한 유일한 한타바이러스
한타바이러스는 설치류가 매개하는 바이러스군이다. 감염된 쥐의 소변, 분변, 타액이 건조되어 공기 중에 퍼진 입자를 흡입하거나 피부 상처를 통해 감염된다. 통상적으로는 사람 간 전파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혼디우스 사태의 원인 병원체인 안데스 바이러스는 현재까지 알려진 한타바이러스 가운데 유일하게 사람 간 전파가 알려진 변종으로 파악된다. 증상이 있는 감염자와의 밀접하고 지속적인 접촉을 통해 퍼질 수 있으며, 밀폐된 선상 환경에서 다수 감염이 발생한 원인 중 하나로 추정되고 있다.
안데스 바이러스 감염의 잠복기는 노출 후 4일에서 최대 42일이다. 초기 증상은 발열과 근육통, 두통으로 독감과 구분하기 어렵지만, 약 절반의 환자에서 폐에 체액이 급격히 차는 한타바이러스 폐 증후군(HPS)으로 진행된다. CDC에 따르면 중증 호흡기 증상이 나타난 환자의 치사율은 약 38%에 달한다. 증상이 빠르게 악화될 수 있어 조기 치료가 생존율을 좌우하지만, 현재까지 승인된 특이적 치료제나 백신은 없으며 증상에 따른 지지 요법이 전부이다.
WHO가 최초 감염자의 동선을 추적한 결과, 사망한 네덜란드 남성은 2025년 11월 27일부터 2026년 4월 1일 출항 전까지 4개월에 걸쳐 칠레, 우루과이, 아르헨티나를 오가는 여행을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 여정에는 안데스 바이러스의 숙주로 알려진 쥐 종이 서식하는 지역이 포함돼 있었다. 아르헨티나 보건부는 그가 경유한 경로를 따라 설치류를 포획해 검사하는 한편 접촉자 추적을 진행하고 있다.
갈 수 없는 항구들
사태를 복잡하게 만든 것은 배가 닿을 항구를 찾지 못했다는 점인데, 혼디우스는 카보베르데 프라이아 항구에 3일간 정박했지만, 현지 의료 시설이 대규모 격리 대응을 감당하기 어려워 승객 하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 테네리페로 향하는 방안이 논의됐지만 카나리아 제도 대통령 페르난도 클라비호가 강하게 반발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의 경험을 생각하면 배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의견이었고, 주민들 사이에서도 반대 여론이 컸다고 한다.
스페인 보건부가 "국제법과 인도주의 원칙에 따른 결정"이라며 테네리페 그라나디야 항구 입항을 최종 승인했지만, 때는 이미 5월 10일이었다. 당일 오전 5시 30분, 혼디우스가 테네리페에 도착했는데, 스페인 보건장관 모니카 가르시아는 이번 하선 절차를 "전례 없는 수준의 방역 작전"이라고 표현하며, 방호복과 마스크를 착용한 승객들이 소형 보트로 육지에 옮겨진 뒤 각국 전세기로 분산 이송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노르웨이는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항공 구급대를 테네리페에 대기시켰다.
19개국 94명 하선 — 귀국 중 증상 발현
첫날 하선을 완료한 것은 19개국 94명이었다. 미국은 자국민 17명과 미국 거주 영국인 1명을 합쳐 18명을 전세기로 네브래스카주 오팟 공군기지로 이송했다. 미국 보건부(HHS)는 이 중 1명이 한타바이러스 PCR 양성 판정을 받았고, 또 다른 1명은 경미한 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두 명은 생물학적 격리 구획이 마련된 항공기 내 특수 구역에 탑승해 네브래스카 의료센터 국가격리센터로 이송되었다.
네덜란드는 자국민 8명을 포함한 26명을 전세기로 에인트호번 공항으로 데려갔다. 프랑스행 항공기에서는 탑승 중이던 승객 1명이 기내에서 증상을 나타냈고, 해당 편 탑승자 전원이 착륙 후 격리 조치됐다. 프랑스 당국은 혼디우스 관련 항공편 두 편의 접촉자 22명을 별도 격리 중이라고 밝혔다. 스위스에서도 취리히 병원에서 확진 환자 1명이 치료를 받고 있음이 확인됐다.
5월 11일 현재 혼디우스 관련 감염 사례는 확진 및 추정을 포함해 총 10건으로 늘었다. 이 중 한타바이러스로 사망이 확인된 것은 2명, 원인이 조사 중인 사망 의심 사례가 1건이다. 34명의 잔류 승무원은 증상 검사를 마친 뒤 혼디우스를 타고 네덜란드로 향할 예정이다.
WHO "코로나가 아니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코로나19에 대한 집단 기억이 만들어낸 공포 반응이었다. WHO 사무총장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는 테네리페 현장에서 직접 브리핑을 열고 "이것은 또 다른 코로나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대중에 대한 위험은 낮다. 두려워하거나 공황 상태에 빠질 필요가 없다."라고 밝히며 대중을 안심시키기 시작했다. CDC도 "미국 일반 대중에 대한 위험은 극히 낮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안데스 바이러스가 사람 간 전파가 가능하기는 하지만, 증상이 있는 감염자와의 밀접하고 지속적인 접촉이 전제되어야 한다. 공기 중 광범위한 전파가 일어나는 구조가 아니며, WHO는 코로나19와 같은 대규모 유행은 예상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최초 감염자의 동선에서 시작된 이번 역학 조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귀국한 승객들에 대한 추적 관찰도 최장 잠복기인 42일이 지날 때까지 계속된다. 혼디우스가 테네리페에 닻을 내린 것으로 40일간의 표류는 일단락됐지만, 바이러스의 경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 김민재 리포터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6-05-2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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