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 왜 이렇게 피곤할까 — 사실 그건 착각이다
봄이 왔다. 카페 야외 테라스에는 사람들이 나앉고, 공원에는 산책객들이 넘친다. 겨울이 끝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모든 것이 가벼워지는 계절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몸은 오히려 무겁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더 힘들고, 낮에도 자꾸 졸린다. 혹시 나만 이런가 싶어 주변에 물어보면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봄만 되면 왜 이렇게 나른하지?"
사실, 이 현상은 독일어권 국가들에서 특히 뿌리 깊은 통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독일어로 '프뤼야르스뮈디히카이트(Frühjahrsmüdigkeit)', 직역하면 '봄 피로'인데, 이처럼 봄이 되면 몸이 계절 변화에 적응하느라 피로해진다는 생각은 민간 상식처럼 퍼져 있고, 각종 건강 기사와 광고들도 이 현상을 당연한 것으로 다루어왔다.
그리고 스위스 바젤 대학교와 베른 대학병원 연구팀이 1년에 걸친 추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2026년 발표한 연구 결과는 이 상식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있다. 봄 피로는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년 내내 추적했더니, 봄만 피로한 게 아니었다
수면 연구자이자 심리학자인 크리스틴 블루메와 공동 연구자 알브레히트 포르스터는 2024년 7월부터 418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을 진행했다. 6주마다 참가자들에게 지난 4주 동안 얼마나 지치고 피로했는지, 낮에 얼마나 졸렸는지, 수면의 질은 어떠했는지를 물었다. 이 설문은 4계절을 모두 아우르도록 1년에 걸쳐 반복됐다.
흥미로운 것은 연구 시작 시점에 참가자의 절반가량이 "나는 봄 피로를 겪는다"고 스스로 밝혔다는 점이다. 이 정도면 설문 데이터에서도 봄철에 피로감 수치가 올라가는 패턴이 나타나야 했다. 그런데 데이터는 그것을 보여주지 않았다.
"사람들이 봄에 다른 계절보다 측정 가능한 수준으로 더 피로하거나 졸린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블루메는 밝혔다. 낮의 길이가 빠르게 변하는 시기도 영향이 없었고, 특정 달도 마찬가지였다. 봄 피로가 실제 생물학적 현상이라면 데이터에 반드시 흔적이 남아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멜라토닌 과잉? 혈압 저하? — 하지만 근거가 없다
그렇다면 봄 피로의 원인으로 자주 거론돼온 이론들은 어떻게 봐야 할까.
가장 흔한 설명 중 하나는 겨울 동안 축적된 멜라토닌이 봄에 과잉 상태로 남아 피로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설명으로는 기온이 올라가면 혈관이 확장되고 혈압이 낮아지면서 몸이 적응하는 과정에서 피로감이 생긴다는 주장도 있다.
블루메는 이 설명들이 시간생물학 관점에서 타당하지 않다고 말한다. 멜라토닌은 24시간 주기로 끊임없이 생성되고 분해되는 물질이다. 계절적으로 축적되는 과잉분이 존재한다는 생물학적 근거가 없다. 혈관 확장과 혈압 변화가 피로를 유발한다는 주장 역시 봄에만 국한되는 현상이 아니고, 이것이 측정 가능한 피로 증가로 이어진다는 실증 데이터도 없다.
연구팀은 화분 알레르기와 항히스타민제 복용도 살펴보았는데, 이는 봄철 꽃가루 알레르기나 그 치료제가 피로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추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 데이터에서 유의미한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설명할 효과 자체가 없었다"고 블루메는 말했다.
봄 피로는 문화가 만든 현상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봄에 피로하다고 느끼는 걸까? 연구팀의 해석에 따르면, 봄 피로는 생물학적 현상이 아니라 문화적 현상이라고 한다. '봄 피로'라는 단어가 존재하고 널리 통용되기 때문에, 봄에 피로를 느낄 때 사람들이 그것을 그 단어로 설명하고 인식한다는 것이다. 블루메는 이를 "증상의 지각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적 현상"이라고 표현했다.
심리학적 메커니즘도 작용한다. 봄이 되면 활동적이어야 한다는 기대가 높아진다. 날씨가 좋은데 야외에 나가지 않거나 활력이 없다고 느끼면, 그 간극이 인지 부조화를 만든다. '봄 피로'는 이 부조화를 설명하는 완벽한 구실이 된다. 내가 게으른 것이 아니라, 계절 탓이라는 합리화이다.
블루메는 봄 피로의 대척점으로 거론되는 겨울 피로 역시 실증적 근거가 없다고 덧붙인다. 사람들이 겨울에는 조금 더 자고 여름에는 조금 덜 자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이 전체적인 수면 필요량을 균형 있게 맞추기 때문에 연중 에너지 수준은 대체로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것이다.
물론, 진짜 피로의 원인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봄 피로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중요한 이유는 계절 탓으로 피로를 돌리는 습관이 진짜 원인을 놓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팀이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하나 있다. 봄 피로는 근거가 없지만, 겨울철 계절성 우울증(SAD, Seasonal Affective Disorder)은 실재한다는 것이다. 빛의 부족이 주된 원인인 이 우울증은 피로와 무기력, 저조한 기분을 동반할 수 있으며, 봄 피로와 혼동될 여지가 있다. 또 겨울철에 흔하게 발생하는 비타민 D 결핍도 지속적인 피로와 근육 쇠약을 유발할 수 있다. 자외선 B가 부족한 겨울에는 체내에서 충분한 비타민 D를 합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봄에 피로하다고 느끼는 것이 실제로는 겨울 내내 누적된 비타민 D 결핍이나 계절성 우울증에서 미처 회복되지 못한 상태일 수도 있다. 이것을 '봄이 되면 으레 그런 거지'라고 넘기면 제때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된다. 블루메는 "증상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면 의사를 찾아가라"고 권고한다.
봄 피로라는 단어는 앞으로도 쓰이겠지만, 적어도 그것이 측정 가능한 생물학적 현상이 아니라는 것은 이제 데이터가 말해준다. 봄이 피곤한 게 아니라, 우리가 봄을 피곤하게 인식하도록 배운 것일 수 있다.
- 김민재 리포터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6-05-1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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