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배고픔 스위치를 직접 끄다 — 오젬픽 없이 살 빼는 분자의 등장
전 세계에서 10억 명이 비만으로 분류된다. 결코 적은 인원이 아니다. 통계상으로 8명이 모이면 한 명은 비만인 셈이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성인 비만 유병률은 1990년 이후 두 배 이상 늘었고, 현재 지구상에서 기아로 사망하는 사람보다 비만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한다. 인류 진화 역사에서 처음 맞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 위기를 정면으로 겨냥한 오젬픽(Ozempic), 위고비(Wegovy), 마운자로(Mounjaro) 등의 약물들이 지난 몇 년간 등장했다. 이 주사제들은 GLP-1이라는 호르몬을 모방해 식욕을 억제하고 체중을 줄이는 데 큰 효과를 보였으나 오심, 구토, 설사, 변비, 복통이라는 부작용이 적지 않은 환자들을 괴롭혀왔다.
2026년 4월, 스탠퍼드 의대 연구팀이 이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 연구를 네이처지에 발표했다. 인공지능으로 인간 유전자 전체를 훑어 찾아낸 12개 아미노산짜리 자연 분자 BRP가 동물 실험에서 오젬픽에 버금가는 체중 감량 효과를 보이면서도, 메스꺼움도 근육 손실도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뇌에는 두 개의 배고픔 센서가 있다
GLP-1 계열 약물의 부작용을 이해하려면 먼저 뇌가 배고픔을 처리하는 방식을 알아야 한다. 혈액 속을 순환하는 호르몬을 뇌가 직접 감지할 수 있는 부위는 시상하부(hypothalamus)와 후뇌(hindbrain) 등 총 두 곳이다. 중요한 점은 이 두 부위가 각자 다른 종류의 배고픔 신호를 담당한다는 점이다.
먼저 시상하부는 장기적인 에너지 균형의 조절자이다. 몸이 지금 굶주리고 있는지, 에너지가 충분한지를 감지해 식욕 수준을 조율한다. 렙틴과 그렐린 같은 호르몬이 이곳에서 작용한다.
반면 후뇌는 즉각적인 포만감, 특히 불쾌할 정도로 배가 부른 느낌을 담당한다. '크리스마스 만찬 후 토할 것 같은 느낌'이 이 부위의 신호이다.
오젬픽 계열 약물의 주된 경로와 표적은 후뇌이다. 그리고 장, 췌장, 기타 조직에도 분포하는 수용체를 통해 전신에 영향을 미친다. 소화를 늦추고, 혈당을 낮추고, 구역질을 유발하는 것이 모두 이 광범위한 작용의 결과이다. 영국 의학연구위원회 대사질환부서의 자일스 요 교수는 "오젬픽 계열 약물의 가장 큰 부작용이 구역질인 것은 그것이 영향을 미치는 뇌 부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BRP는 다른 경로를 택한다. 즉, 시상하부를 공략하는데, 그중에서도 식욕을 억제하는 POMC 뉴런에만 선택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 동물 실험에서 확인되었다. 장이나 췌장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이것이 부작용 패턴이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의 근거이다.
AI가 2만 개 유전자에서 건진 분자
BRP의 발견 과정은 분자 자체만큼이나 주목받을 만하다.
연구팀이 찾고 있던 것은 프로호르몬(prohormone)에서 유래한 미지의 펩타이드 호르몬이었다. 프로호르몬은 그 자체로는 비활성 상태의 분자이지만, 특정 효소에 의해 절단되면 호르몬으로 기능하는 작은 펩타이드 조각들로 나뉜다. 문제는 각각의 프로호르몬이 여러 방식으로 잘릴 수 있어 어떤 조각이 실제로 생물학적 활성을 갖는지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식별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스탠퍼드 연구팀은 '펩타이드 프레딕터(Peptide Predictor)'라는 AI 도구를 개발해 인간 유전자 약 2만 개를 분석했다. AI는 2,683개의 잠재적 호르몬 유사 펩타이드를 추려냈다. 연구팀은 이 중 GLP-1을 포함한 약 100개를 선별해 배양된 뇌세포에서 실제로 신경 활성을 일으키는지 테스트했다. GLP-1은 대조군 대비 신경세포 활성을 3배 높였다. 그런데 겨우 12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펩타이드가 10배나 높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BRP였다. 이름은 모분자인 BRINP2(BPM/retinoic acid inducible neural specific 2)에서 따왔다. 연구 책임자 카트린 스벤슨 교수는 "알고리즘이 우리 발견의 절대적인 핵심이었다"고 전한다.
동물 실험 결과 — 지방만 빠지고 근육은 유지됐다
세포 수준에서의 반응이 확인된 뒤 연구팀은 살아있는 동물에서 BRP를 테스트했다.
마른 생쥐와 미니피그에 먹이를 주기 전 BRP를 근육 주사했을 때, 1시간 이내에 식이량이 최대 50%까지 감소했다. 미니피그는 생쥐보다 인간의 대사와 식이 패턴에 가까운 동물이어서 이 결과는 특히 주목받았다.
비만 생쥐에게 14일간 매일 BRP를 주사한 결과, 평균 3그램의 체중이 감소했으며 감량분 대부분이 지방이었다. 같은 기간 처치를 받지 않은 대조군 생쥐는 3그램이 증가했다. 6그램의 차이이다. 더 중요한 것은 부작용 지표이다. BRP를 투여받은 동물에서 구역질, 소화 장애, 근육 손실이 관찰되지 않았다. 행동 변화나 불안 반응도 없었다.
GLP-1 계열 약물의 사용을 중단하는 흔한 이유 중 하나가 소화기 부작용이며, 장기간 사용 시 근육 손실이 동반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로 지목돼왔다. BRP가 동물 실험에서 이 두 가지를 피한 것은 의미 있는 결과이다.
하지만, 인간 임상까지는 아직 긴 길이 남아 있다
이 발견을 둘러싼 흥분이 얼마나 크든, 냉정하게 짚어야 할 부분이 있다. 이는 BRP는 아직 동물 실험 단계라는 점인데, 즉, 인간에게서의 안전성과 효능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논문 제1저자인 라에티티아 코아솔로 박사는 "임상시험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인간에게도 안전하고 효과적일지 매우 궁금하다"고 전한 반면, 스벤슨 교수는 BRP 관련 특허를 공동 출원했으며 메리필드 테라퓨틱스(Merrifield Therapeutics)를 공동 창업해 인간 임상을 준비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일정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미시간 대학교 외과학 랜디 실리 교수는 "동물 실험의 성공이 인간에게도 이어질지는 예측하기 어렵다"며, "비만은 만성 질환이어서 장기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약물이어야 한다는 기준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비만 치료제 분야에서 동물 실험 결과가 인간 임상에서 재현되지 않는 사례는 적지 않다.
또한, BRP가 인간에서 효과를 보인다고 해도 GLP-1 계열 약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젬픽 계열 약물은 심혈관 위험 감소 등 체중 감량 이외의 임상적 이점이 확인되어 있다. 두 계열의 약물이 서로 다른 기전으로 서로 다른 환자군에서 사용될 가능성이 더 크다. 적어도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더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맞는 치료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어찌 되었든, 12개 아미노산짜리 작은 분자가 그 선택지 중 하나가 될 수 있을지, 임상시험이 답을 줄 것이다.
- 김민재 리포터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6-05-18 ⓒ ScienceTimes
관련기사

뉴스레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