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떤 경험은 추억이 되고, 어떤 것은 망각되는가
우리는 숨 쉬는 순간마다 수만 가지의 감각 정보를 받아들인다. 아침에 마신 커피의 향기, 출근길에 스친 행인의 옷차림, 그리고 방금 읽은 뉴스 기사의 한 구절까지. 하지만 잠자리에 들 때면 이 중 대부분은 마법처럼 사라지고 오직 극소수의 정보만이 기억의 저장소에 살아남는다. 더 자세히 생각해 보면 어떤 '특별히 좋았던' 정보만 남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뇌는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이 냉혹한 '선택과 집중'을 행하는 것일까? 신경과학자 마를렌 바르토스(Marlene Bartos) 교수의 최신 연구에 따르면, 우리 뇌 속에서 벌어지는 이 치열한 편집 과정의 핵심 열쇠가 두 종류의 신경세포 사이의 정교한 '밀당'에 있다고 한다.
기억을 기록하는 주연 배우, '주세포'의 역할
우리 뇌의 해마와 대뇌 피질에는 정보를 실질적으로 암호화하고 저장하는 주세포(Pyramidal cell)가 존재한다. 이들은 외부 자극이 들어오면 전기 신호를 내뿜으며 서로 연결망을 형성한다. 우리가 흔히 "공부를 해서 지식을 쌓는다"거나 "새로운 기술을 익힌다"고 할 때, 실제로 우리 뇌 안에서는 이 주세포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새로운 신경 회로를 구축한다.
하지만 주세포는 태생적으로 '열정 과다'인 면이 있다. 들어오는 모든 자극에 일일이 반응하려 하기 때문이다. 만약 주세포가 아무런 제어 없이 모든 정보를 다 기록하려 든다면, 우리 뇌는 불과 몇 시간 만에 쓸모없는 정보의 쓰레기 더미로 가득 차버릴 것이다. 마치 모든 장면에 하이라이트 표시가 되어 있어 정작 중요한 내용을 찾을 수 없는 전공 서적처럼 말이다.
정보의 홍수를 걸러내는 냉철한 감독, '억제성 신경세포'
여기서 등장하는 구원자가 바로 억제성 신경세포(Inhibitory neurons 혹은 interneurons)이다. 이들은 주세포의 지나친 흥분을 가라앉히고, 신경 신호의 흐름을 미세하게 조정하는 '현장의 감독관' 역할을 수행한다. 억제성 신경세포는 가바(GABA)와 같은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을 방출하여, 주세포가 내뿜는 수많은 소음 중 의미 없는 것들은 과감히 차단하고 오직 중요한 신호만이 뚜렷하게 부각되도록 조절한다.
바르토스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가 무언가를 명확히 기억한다는 것은 주세포가 정보를 잘 받아들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억제성 신경세포가 주변의 불필요한 노이즈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제거했느냐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즉, '기억'이란 무언가를 기록하는 행위임과 동시에, 그 외의 모든 것을 적극적으로 '지워버리는' 편집의 기술인 셈이다.
안정적인 기억을 만드는 두 세포의 정교한 '밀당'
학습의 효율성과 기억의 안정성은 이 두 세포의 상호작용이 얼마나 리드미컬하게 이루어지느냐에 결정된다. 주세포가 정보를 전달할 때 억제성 신경세포가 적절한 타이밍에 개입하여 신호의 '해상도'를 높여주면, 해당 정보는 뇌의 장기 기억 저장소로 이동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이 정교한 조율 과정이 실패하면, 정보는 뇌 속에 잠시 머물다 금세 휘발되어 버리는 단기 기억의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최근의 의과학 데이터는 이 메커니즘이 단순히 학습 능력뿐만 아니라 조현병이나 불안 장애와 같은 정신 질환과도 깊은 연관이 있음을 시사하는데, 이는 억제성 신경세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뇌 속의 소음이 통제되지 않으면 사고가 혼란해지고, 반대로 너무 과도하게 작동하면 새로운 학습이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건강한 뇌란 이 두 세포가 완벽한 균형을 이루며 '기록할 것'과 '버릴 것'을 냉정하게 구분해 내는 상태를 말한다.
데이터가 조언하는 기억의 최적화 전략
종합해 보면, 무작정 많은 정보를 뇌에 밀어 넣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뇌가 정보를 편집하고 억제할 수 있는 충분한 환경을 만들어주어야만 비로소 학습은 완성되기 때문인데, 충분한 휴식과 수면이 기억력 향상에 필수적인 이유도, 뇌가 쉬는 동안 억제성 신경세포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낮 동안 쌓인 정보의 쓰레기를 치우고 중요한 신호만을 견고하게 다지기 때문이다.
차세대 신경과학은 이제 이 두 세포의 상호작용을 인위적으로 조절하여 학습 장애를 치료하거나 기억력을 증진시키는 정밀 의료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뇌세포의 이 놀라운 편집 기술을 깊이 이해하는 것은, 인류가 지적 능력을 한 단계 더 진화시키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오늘 당신이 기억하고 싶은 소중한 경험이 있다면, 당신의 뇌 속 감독관이 그 장면에 멋진 조명을 비출 수 있도록 잠시 뇌에게 쉴 시간을 주는 것은 어떨까?
- 김민재 리포터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6-04-0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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