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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학
김민재 리포터
2026-03-30

주변의 '프로 불편러'가 당신의 세포를 늙게 만든다? 인간관계 스트레스와 후성유전학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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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짜증나게 하는 사람들, 담아두면 당신만 늙는다

우리의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이들이 있다. 점심시간마다 매일 똑같은 연애 고민을 늘어놓으며 당신의 정서적 에너지를 바닥내는 동료, 직급과 나이를 무기로 갑질을 일삼는 상사, 자기주장만 옳다며 남의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 동료, 그리고 당신의 사소한 라이프스타일까지 사사건건 간섭하는 피곤한 가족들이 바로 그들이다.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당신의 생체 시계를 물리적으로 앞당기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Getty Images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당신의 생체 시계를 물리적으로 앞당기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Getty Images

최근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NAS)에 발표된 연구 결과는 우리가 막연히 느꼈던 이 심리적 피로감을 데이터로 입증했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단순히 기분을 망치는 수준을 넘어, 당신의 생체 시계를 물리적으로 앞당기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인간관계의 질이 결정하는 생물학적 나이의 민낯

흔히 '고독'이 수명을 단축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독성이 가득한 관계'는 그보다 훨씬 직접적이고 파괴적인 방식으로 우리 신체를 공격한다. 미국 인디애나주의 성인 2,345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유전체 분석 결과, 주변에 스트레스를 주는 인물, 이른바 '해슬러(Hasslers)'가 많을수록 생물학적 노화가 가속화되는 현상이 관찰되었다.

주변에 스트레스를 주는 인물, 이른바 '해슬러(Hasslers)'가 많을 수록 생물학적 노화가 과속화되는 현상이 관찰되었다. ©Getty Images
주변에 스트레스를 주는 인물, 이른바 '해슬러(Hasslers)'가 많을 수록 생물학적 노화가 과속화되는 현상이 관찰되었다. ©Getty Images

가장 경악스러운 부분은 앞서 설명한 대로 그 파괴력이 수치로 증명되었다는 점인데, 정기적으로 마주하는 스트레스 유발자가 한 명 늘어날 때마다 노화 속도는 평균 1.5%씩 빨라졌다. 숫자로만 보면 미미해 보일지 모르지만, 이를 10년 단위로 환산하면 해슬러 한 명당 약 두 달의 생물학적 나이를 '덤'으로 얻게 되는 셈이다. 내 옆의 피곤한 동료가 내 소중한 수명을 조금씩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다는 이 과학적 경고는 이제 단순한 농담으로 넘기기 어렵게 되었다.

 

'피할 수 없는 관계'가 주는 만성적 염증의 습격

이번 연구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이른바 '강제적 근접성(Forced proximity)'의 위험이다. 우리가 원해서 만나는 친구보다 직장 동료나 룸메이트처럼 '싫어도 봐야 하는' 관계에서 더 많은 스트레스 유발자가 보고되었다. 이러한 지속적인 노출은 경제적 문제나 업무 압박과 같은 전통적인 스트레스 요인과 맞먹는 생물학적 타격을 입혔다.

우리가 원해서 만나는 친구보다 직장 동료나 룸메이트처럼 '싫어도 봐야 하는' 관계에서 더 많은 스트레스 유발자가 보고되었다. ©Getty Images
우리가 원해서 만나는 친구보다 직장 동료나 룸메이트처럼 '싫어도 봐야 하는' 관계에서 더 많은 스트레스 유발자가 보고되었다. ©Getty Images

지속적인 인간관계 스트레스는 체내 면역 기능을 저하시키고 만성 염증 수치를 높였다. 우리 몸이 미처 복구하지 못한 분자적 손상이 쌓이면서 신체 기능은 쇠퇴하고, 결과적으로 질병과 부상에 더 취약한 '늙은 상태'가 되었다. 생물학적 노화는 단순히 주름이 늘어나는 외견상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몸의 자가 복구 시스템과 면역 체계가 서서히 마비되어 가는 내부적인 붕괴 과정인 것이다.

 

가족은 치명적이지만 배우자는 의외의 '안전지대'

모든 스트레스 유발자가 똑같이 위험한 것은 아니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가족 구성원이 주는 스트레스는 타인보다 생물학적 노화에 훨씬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혈연의 굴레와 그로 인한 정서적 밀착이 신체에는 가장 깊은 노화의 흔적을 남겼다. 회사는 사표라도 던질 수 있지만, 가족은 그럴 수 없기에 그 스트레스가 DNA에 더 깊숙이 각인되는 셈이다.

배우자가 아무리 짜증 나게 하더라도 생물학적 노화 속도와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나타나지 않았다. ©Getty Images
배우자가 아무리 짜증 나게 하더라도 생물학적 노화 속도와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나타나지 않았다. ©Getty Images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한 가지 흥미로운 예외가 발견되었는데, 바로 '배우자'였다. 놀랍게도 배우자가 아무리 짜증 나게 하더라도 생물학적 노화 속도와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나타나지 않았다. 배우자의 잔소리가 당신을 지치게 할지언정, 직장 상사나 사촌들처럼 당신의 DNA를 직접 늙게 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어쩌면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배우자와의 관계에는 스트레스의 독성을 중화하는 정서적 완충 지대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바로 "과학의 위트 있는 위로"일 것이다.

 

데이터가 조언하는 가장 과학적인 '안티에이징'

노화는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이다. 하지만, 그 속도는 우리가 누구와 점심을 먹고 누구의 전화를 받느냐에 따라 충분히 조절될 수 있다. 차세대 정밀 의학은 이제 식단과 운동이라는 전통적 처방을 넘어, '사회적 환경'이 우리 DNA에 새기는 흔적을 추적하고 있다. 세포 수준에서의 젊음을 유지하고 싶다면 이제 인간관계의 '디톡스'가 필요한 시점이다.

주변의 부정적인 사람들과 건강한 거리를 두는 것은 심리적 평온을 넘어, 자신의 생물학적 수명을 지키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안티에이징' 전략이다. ©Getty Images
주변의 부정적인 사람들과 건강한 거리를 두는 것은 심리적 평온을 넘어, 자신의 생물학적 수명을 지키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안티에이징' 전략이다. ©Getty Images

주변의 부정적인 사람들과 건강한 거리를 두는 것은 심리적 평온을 넘어, 자신의 생물학적 수명을 지키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안티에이징' 전략이다.

오늘 당신의 에너지를 뺏어가는 그 사람에게 정중히 "거리를 두자"고 말하거나 연락 횟수를 줄이는 것, 그것이 힘들다면, 적당하게 현명한 방법으로 그 사람과의 소통을 줄이는 법, 바로 이것이 비싼 영양제 한 알이나 값비싼 시술보다 당신의 세포를 훨씬 더 젊게 유지하는 비결일지도 모른다. 당신의 DNA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이 맺고 있는 관계를 정직하게 기록하고 있다. 프로 불편러나 주변을 힘들게 하는 그 사람들의 기분보다 당신의 건강이 훨씬 더 중요하다.

김민재 리포터
minjae.gaspar.kim@gmail.com
저작권자 2026-03-3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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