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타임즈 로고

멸종의 문턱에서 되살아난 코알라 코알라 팬들은 안심하시라

  • 콘텐츠 폰트 사이즈 조절

    글자크기 설정

  • 프린트출력하기

유전적 다양성 회복의 새로운 희망을 찾다

귀여운 외모와 하루 20시간에 달하는 수면 시간, 그리고 영양가는 낮고 독성은 강한 유칼립투스잎만 고집하는 기묘한 식습관까지. 코알라는 언뜻 보기에 평화롭고 단순한 삶을 영위하는 동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느긋한 미소 뒤에는 인류의 탐욕으로 인해 멸종의 벼랑 끝까지 내몰렸던 처절한 생존의 역사가 숨겨져 있다.

20세기 초, 모피를 노린 무분별한 사냥으로 호주 빅토리아주의 코알라 개체 수는 무려 90% 이상 급감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유전적 병목 현상(Genetic Bottleneck)'은 종의 존립을 흔드는 치명적인 결함이었다. 유전적 다양성을 잃어버린 집단은 질병이나 환경 변화라는 작은 파도에도 쉽게 휩쓸려 결국 멸종의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이 그간 과학계의 비관적인 정설이었다.

귀여운 외모와 하루 20시간에 달하는 수면 시간, 그리고 영양가는 낮고 독성은 강한 유칼립투스잎만 고집하는 기묘한 식습관까지. 코알라는 언뜻 보기에 평화롭고 단순한 삶을 영위하는 동물처럼 보인다. ©Getty Images
귀여운 외모와 하루 20시간에 달하는 수면 시간, 그리고 영양가는 낮고 독성은 강한 유칼립투스잎만 고집하는 기묘한 식습관까지. 코알라는 언뜻 보기에 평화롭고 단순한 삶을 영위하는 동물처럼 보인다. ©Getty Images

하지만 코알라 팬들은 안심해도 될 것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최근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된 연구 결과는 이러한 예측을 정면으로 뒤집는 경이로운 반전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유전체 빅데이터가 포착한 코알라의 위대한 생존 전략과 그 속에 담긴 과학적 함의를 심층적으로 분석했는데, 이를 통해서 멸종의 문턱에 섰던 빅토리아주의 코알라들이 'DNA 재조합'이라는 생물학적 기적을 통해 파괴된 유전적 건강성을 스스로 복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는 유전적 자산을 상실한 전 세계 멸종 위기 종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는 '진화적 회복의 로드맵'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병목 현상의 저주를 깬 'DNA 재조합'의 기적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사이, 빅토리아주에서는 수백만 마리의 코알라가 모피 산업을 위해 희생되었다. 1920년대에 이르러 빅토리아주에 남은 코알라는 고작 500~1,000마리에 불과했다. 멸종을 막기 위해 소수의 개체가 섬 대피소로 옮겨졌고, 20세기 중반 이들의 후손이 다시 본토로 유입되면서 개체 수는 2020년 기준 약 50만 마리까지 급증했다. 하지만 숫자가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아주 작은 유전자 풀(Pool)에서 시작되었기에 유전적 다양성이 매우 낮아 '유전적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멜버른의 세자르 호주(Cesar Australia) 연구소의 콜린 아렌스(Collin Ahrens)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호주 전역 27개 인구 집단, 418마리의 코알라 유전체 데이터를 정밀 분석했다. 그 결과, 빅토리아주 코알라들의 '유효 인구 크기(Effective population size, 실제로 번식에 참여하여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개체 수)'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실질적으로 급증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멜버른의 세자르 호주(Cesar Australia) 연구소의 콜린 아렌스(Collin Ahrens)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호주 전역 27개 인구 집단, 418마리의 코알라 유전체 데이터를 정밀 분석했다. ©Getty Images
멜버른의 세자르 호주(Cesar Australia) 연구소의 콜린 아렌스(Collin Ahrens)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호주 전역 27개 인구 집단, 418마리의 코알라 유전체 데이터를 정밀 분석했다. ©Getty Images

비결은 'DNA 재조합(DNA Recombination)'에 있었다. 개체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부모로부터 받은 DNA가 자녀 세대에서 섞이고 재배열되는 과정이 빈번해졌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유전적 조합이 생성된 것이다. 아렌스 박사는 "개체 수가 많아질수록 더 많은 번식 사건이 일어나고, 이는 곧 더 많은 재조합이 발생함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 선택을 통해 해로운 유전자 조합은 걸러지고 이로운 조합이 퍼지면서, 낮았던 유전적 다양성이 다시 채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반전의 결과: 겉모습에 속지 마라

이번 연구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전통적으로 '유전적으로 건강하다'고 여겨졌던 집단과의 비교 결과이다. 퀸즐랜드와 뉴사우스웨일스주의 코알라들은 과거 급격한 병목 현상을 겪지 않아 빅토리아주 개체들보다 유전적 다양성이 더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유전체 분석 결과, 이들은 오히려 서서히 멸종을 향해 가고 있다는 위험 신호가 포착되었다.

이들은 시작은 높은 다양성과 함께 행해졌으나, 인구 감소로 인해 해로운 돌연변이를 제거하거나 이로운 조합을 만들어내는 속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Getty Images
이들은 시작은 높은 다양성과 함께 행해졌으나, 인구 감소로 인해 해로운 돌연변이를 제거하거나 이로운 조합을 만들어내는 속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Getty Images

이 지역의 코알라들은 서식지 파괴, 파편화된 도시화, 그리고 질병으로 인해 개체 수가 완만하게 감소해 왔다. 다양성은 유지하고 있는 듯 보였지만, 실질적으로 번식에 참여하는 유효 인구가 줄어들면서 DNA 재조합의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시드니 대학교의 진화 생물학자 매슈 크라우더(Mathew Crowther)는 "이들은 시작은 높은 다양성과 함께 행해졌으나, 인구 감소로 인해 해로운 돌연변이를 제거하거나 이로운 조합을 만들어내는 속도가 현저히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인구의 단순한 '다양성 수치'보다 '재조합을 통한 진화 속도'가 집단의 장기적 생존에 더 중요할 수 있다. ©Getty Images
인구의 단순한 '다양성 수치'보다 '재조합을 통한 진화 속도'가 집단의 장기적 생존에 더 중요할 수 있다. ©Getty Images

결과적으로 과거에 큰 타격을 입었으나 급격히 개체 수를 불린 빅토리아주 집단은 '유전적 회복력'을 발휘하고 있는 반면, 겉보기에 안정적이었던 북부 집단은 서서히 활력을 잃어가는 역설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인구의 단순한 '다양성 수치'보다 '재조합을 통한 진화 속도'가 집단의 장기적 생존에 더 중요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결과이다. 

 

빅데이터가 여는 보전 유전학의 새로운 지평

이번 연구는 멸종 위기 종 보전 전략에 있어 혁신적인 전환점을 마련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시드니 호주 박물관의 유전학자 매슈 로트(Mathew Lott)는 이 연구를 "빅데이터를 활용해 멸종 위기 종의 인구통계학적 과정과 진화적 회복을 미세한 수준에서 파악해 낸 소중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기존의 보전 정책이 개체 수를 늘리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유효 인구 규모'와 'DNA 재조합률'을 모니터링하여 어떤 집단이 유전적 위험에 처해 있는지를 사전에 식별할 수 있게 되었다. 유전적 다양성이 낮아진 종이라도 개체 수를 충분히 확보하고 번식 환경을 조성해 준다면, 생물 스스로 진화의 엔진을 돌려 건강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해당 코알라의 사례는 인간의 파괴적인 행동으로 벼랑 끝에 몰린 생명체들이라도, 적절한 보호와 시간만 주어진다면 자연의 놀라운 복원력을 통해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보여준다. ©Getty Images
해당 코알라의 사례는 인간의 파괴적인 행동으로 벼랑 끝에 몰린 생명체들이라도, 적절한 보호와 시간만 주어진다면 자연의 놀라운 복원력을 통해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보여준다. ©Getty Images

해당 코알라의 사례는 인간의 파괴적인 행동으로 벼랑 끝에 몰린 생명체들이라도, 적절한 보호와 시간만 주어진다면 자연의 놀라운 복원력을 통해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과학자들은 이 '코알라 로드맵'이 전 세계의 수많은 위기 종들에게 적용되어, 파괴된 생태계의 유전적 지도를 다시 그려나갈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관련 논문 바로 가기

병목 현상 극복: 인구통계학적 경로를 통한 코알라(Phascolarctos cinereus)의 유전자 회복 발견 (Escaping bottlenecks: The demographic path to genetic recovery in koalas (Phascolarctos cinereus))

김민재 리포터
minjae.gaspar.kim@gmail.com
저작권자 2026-03-19 ⓒ ScienceTimes

관련기사

목록으로
연재 보러가기 사이언스 타임즈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확인해보세요!

인기 뉴스 TOP 10

속보 뉴스

ADD : 06130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7길 22, 4~5층(역삼동, 과학기술회관 2관) 한국과학창의재단
TEL : (02)555 - 0701 / MAIL: sciencetimes@kosac.re.kr / 시스템 문의 : (02) 6671 - 9304 / FAX : (02)555 - 2355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아00340 / 등록일 : 2007년 3월 26일 / 발행인 : 정우성 / 편집인 : 차대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차대길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운영하는 모든 사이트의 콘텐츠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과학기술진흥기금 및 복권기금의 지원으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과 사회적 가치 증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