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암 유전체'의 경이로운 발견
인류는 오랜 시간 동안 개와 고양이를 단순한 반려동물을 넘어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왔다. 우리는 그들과 같은 공간에서 먹고 자며 동일한 공기를 마시고, 때로는 감정까지 공유한다. 그런데 최근 과학계는 인간과 고양이가 이보다 훨씬 더 깊은 수준의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바로 우리 몸속 깊은 곳, 세포의 운명을 결정짓는 유전자 수준에서 발생하는 암의 메커니즘이 고양이와 인간 사이에서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2026년 2월 19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게재된 최신 연구에 따르면 고양이와 인간은 동일한 유형의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해 암이 발생하며, 이는 곧 고양이를 위한 암 치료제가 인간에게도, 혹은 그 반대의 경우로도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동안 암 연구는 주로 실험실의 통제된 환경에서 자란 쥐를 모델로 삼아왔으나, 고양이는 인간과 같은 오염물질, 자외선, 식습관 등 '실제 환경'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인간 암 연구의 훨씬 더 정교한 거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연구는 단순히 동물의 질병을 연구하는 수준을 넘어, 고양이를 환경적 위험을 미리 알리는 '탄광 속 카나리아(위험의 전조증상, 혹은 다가온 위험을 먼저 알려주는 대상을 가리키는 단어로 이용)'이자 인류 암 정복의 핵심 열쇠로 재조명하고 있다.
실험실 쥐를 넘어선 '가장 완벽한 암 모델'
영국 웰컴 생어 연구소(Wellcome Sanger Institute)의 루이즈 반 더 웨이든(Louise van der Weyden) 박사가 이끄는 국제 연구팀은 캐나다,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뉴질랜드 등 5개국에서 수집한 약 500마리 고양이의 암 샘플을 분석하여 세계 최초의 '고양이 암 유전체' 프로필을 구축했다. 연구진은 고양이에게서 발견된 13가지 유형의 암을 분석하고, 인간에게 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1,000개의 유전자와 대조했다.
분석 결과는 정말 놀라웠다. 고양이 암 샘플의 절반에서 'FBXW7'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인간의 공격적인 유방암과 밀접하게 연관된 유전자다. 또한 인간 유방암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 'PIK3CA' 돌연변이 역시 고양이 샘플의 절반 가까이에서 관찰되었다. 특히 '유전체의 수호자'라고 불리며 수많은 인간 암의 핵심 드라이버로 지목되는 'TP53(p53)' 유전자는 고양이에게서도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돌연변이였다. 이는 암을 일으키는 생물학적 기전이 종의 경계를 넘어 고양이와 인간 사이에서 매우 유사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고양이 암 유전체(Oncogenome)가 밝혀낸 놀라운 공통점
그동안 의학계가 암 치료제 개발을 위해 주로 사용해 온 실험용 쥐는 유전적 배경이 단순하고 인위적으로 종양을 발생시킨다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고양이는 다르다. 연구진은 고양이가 인간과 마찬가지로 종양이 '자연 발생(spontaneously)'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고양이는 인간이 거주하는 집 안에서 함께 생활하며 미세먼지, 화학물질, 전자기파 등 동일한 환경적 스트레스에 노출된다.
반 더 웨이든 박사는 "고양이는 우리와 똑같은 환경 오염 속에 노출되어 있으며, 심지어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것과 똑같은 자외선(UV) 유도 돌연변이가 고양이에게서도 발견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고양이가 단순히 인간의 대리 모델이 아니라, 특정 주거 환경 내에 존재하는 잠재적인 발암 요인을 인간보다 먼저 감지하고 반응하는 '환경 파수꾼'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만약 집 안의 고양이가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한 유선암에 걸렸다면, 이는 그 환경에 거주하는 인간에게도 유사한 유전적 위험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경고 신호가 될 수 있다.
종을 뛰어넘는 정밀 의료와 치료의 선순환
고양이를 대상으로 한 암 치료 연구가 인간에게 실제적인 혜택을 준 사례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2025년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UC) 연구팀은 인간의 구강 편평세포암 치료제를 구강암에 걸린 고양이들에게 투여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치료를 받은 고양이의 약 3분의 1이 평균 6개월 이상 더 생존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번 고양이 암 유전체 연구 결과는 이러한 '중개 의학(Translational Medicine)'의 가능성을 더욱 확장한다.
연구진은 고양이의 암 돌연변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간과 고양이 모두에게 적용 가능한 '개인 맞춤형 암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연구는 실험을 위해 동물을 해치는 방식이 아니라, 반려동물 주인의 동의하에 치료 과정에서 얻은 생검 샘플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윤리적 가치가 높다. 반 더 웨이든 박사는 "수많은 보호자가 자신의 반려묘가 겪은 아픔이 다른 고양이와 인간을 돕는 밑거름이 되길 바라며 연구에 동참해 주었다"며, 이러한 협력이 결국 인간과 동물 모두가 암의 공포로부터 벗어나는 치료의 선순환을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 김민재 리포터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6-03-16 ⓒ ScienceTimes
관련기사

뉴스레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