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은 나이가 들면 감염병에 취약해지고 독감 백신을 맞아도 젊었을 때만큼 효과가 없거나 기대만큼 듣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가장 큰 이유는 나이가 들수록 면역을 담당하는 세포들도 점차 줄어들기 기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특히 바이러스나 암세포를 찾아 제거하는 T세포의 수와 기능이 많이 감소하는데, T세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백신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암세포도 무력하게 놓치게 된다. T세포는 심장 앞쪽에 있는 작은 장기인 흉선에서 만들어지는데, 흉선은 20대부터 서서히 퇴화하고 70대가 되면 거의 기능을 잃게 된다. 흉선이 퇴하하면 새로운 T세포 공급이 끊기고 면역력도 급격히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연구자가 성장인자를 주입하거나 줄기세포로 새로운 흉선을 재생하는 등 여러 방법을 시도했지만, 심각한 부작용이 생기거나 효과가 미미하여 한계에 부딪혔다.
간을 임시 면역 공장으로 사용하다
미국 MIT의 펑장 교수 연구팀은 T세포의 면역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흉선만을 고집하던 시선에서 벗어나 간을 새로운 표적으로 삼은 연구를 진행하여 지난 12월 네이처에 발표하였다. 고장 난 공장(흉선)을 직접 수리하는 대신 다른 곳에 있던 대체 공장(간)을 통하여 필요한 제품(T세포)를 만들어낸다는 발상이다. 간은 원래 영양소 대사와 해독 기능을 담당하고 있지만, 각종 단백질 신호를 만들어 혈액 속으로 분비하는 역할도 한다. 무엇보다 온몸의 혈액이 지나가는 관문이어서 특정 분자를 간에서 만들면 전신으로 퍼뜨리기에 유용하다. 간은 다른 장기들에 비해 노화로 인한 기능 저하가 크지 않다는 점도, 간이 흉선을 대신할 임시 면역 공장으로 선택된 이유이다.
연구팀은 우선 나이 든 생쥐에서 어떤 면역 신호가 부족한지 유전자와 단백질 수준에서 정밀 분석하였다. 그 결과 T세포 발생 초기 단계에 중요한 DLL1(delta-like ligand 1), 면역세포의 성장인자인 FLT3L (Fms-like tyrosine kinase 3 ligand), T세포 생존에 필수적인 IL-7(interleukin-7), 이렇게 세 가지 인자가 나이가 들면서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쉽게 말해, T세포를 만들고 성장시키며 생존하도록 하는 세 가지 신호 인자가 나이가 들수록 약해진다는 뜻이다. 연구진은 이 세 가지 신호 인자의 감소가 면역 노화의 핵심 원인이라 보고 각각의 앞 글자를 따 DFI라 명명한 후, 이를 다시 보충하면 면역력이 회복될 수 있을지 확인하였다.
면역 회춘이 암 치료 효과를 높여
하지만 DFI를 몸속에 직접 주입할 경우 생체 내에서 금세 분해되어 높은 용량을 반복 투어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부작용의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진은 DFI를 만들기 위한 mRNA를 지질 나노입자에 담아 노령 쥐에 주입하였다. mRNA는 세포에 특정 단백질을 생산하도록 만드는 설계도인데, 코로나19 백신으로 널리 쓰이며 입증된 기술이기도 하다. 코로나19 백신이 우리 몸의 세포에 바이러스 항원을 만들라는 mRNA를 주입했다면, 이번에는 면역 회춘에 필요한 단백질들을 만들라는 mRNA를 주입하는 셈이다. 주입된 mRNA는 체내에 오래 머물지 않고 일시적으로만 단백질 생산을 유도하고 분해되는데, 덕분에 오랫동안 과도하게 신호를 분비하여 부작용을 유도할 가능성도 낮다.
연구진은 18개월 된 마우스(사람 나이로 환산하면 50대 중후반에 해당)에 DFI mRNA를 투여한 뒤 면역 세포들이 변화를 관찰하였다. DFI mRNA가 담긴 지질나노입자는 표적 장기인 간에서 T세포 활성에 필요한 단백질들을 만들어냈고, 그 결과 주사를 맞은 노령 마우스들은 젊은 마우스와 비슷한 수준으로 T세포 숫자가 늘어나고 기능도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면역 기능이 회복된 만큼 암이나 질병에 대한 대항력도 늘어났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암을 발생시킨 고령 마우스에, 기존에 사용되던 면역항암제(PD-L1 항체)를 DFI mRNA와 함께 주입하고 암의 성장 과정을 관찰하였다. 실험 결과 면역항암제만 투여된 마우스는 치료가 시작된 지 3주가 채 되기 전에 모두 사망했지만, DFI mRNA를 함께 치료받은 마우스들은 암에 대한 면역 반응이 크게 개선되었고 약 40%는 암이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가 들면서 약해졌던 T세포들의 면역력이 젊은 수준으로 회복되었고, 덕분에 암세포가 완전히 제거된 것이다.
고령화 시대의 면역 재활성 전략이번 연구는 노화에 따른 면역 기능 약화로 치료 효과가 제한적이던 고령 환자들에게 치료 가능성을 높여줄 새로운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또한 현재 임상에서 널리 사용되는 T세포 기반의 면역항암 치료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다. 면역항암제는 T세포를 활성화해서 암을 공격하게 하지만, 노화로 인해 T세포 자체가 줄어든 상태에서는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 DFI mRNA가 노화된 면역계에 새로운 T세포를 보충해 줌으로써 항암 치료의 효과를 다시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다. 연구를 이끈 펑장 교수는 “노화로 사라진 장기의 역할을 다른 기관을 활용해 기능적으로 되살릴 수 있음을 보였주었다"라며 “면역력이 떨어져 치료가 어려운 고령 환자에게 적용 범위를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암 치료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며 위협이 커지는 각종 감염성 질환, 만성 염증성 질환 등에도 폭넓은 응용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물론 현재까지 결과는 전임상 실험 단계에 불과해서 사람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안전성과 효능을 검증하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간을 임시 면역 공장으로 활용하여 노화된 면역 체계를 보강하는 개념 자체는 큰 의미가 있다. 언젠가 노쇠한 면역세포들을 다시 젊은 시절의 세포들로 되돌리는 치료법이 실현된다면, 감염병과 암의 위협에서 벗어나 보다 건강한 삶을 누리는 시대가 가까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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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회빈 리포터
- acochi@hanmail.net
- 저작권자 2026-02-0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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