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병오년이 밝았다. 동양 철학의 육십갑자에서 병오(丙午)는 오행의 불(火)을 뜻하는 ‘병(丙)’과 십이지 중 말을 의미하는 ‘오(午)’가 결합된 개념으로 60간지 중에서도 강한 기운과 역동성을 상징하는 해로 알려져 있다. 또한 불은 전통적으로 붉은색과 연결되기 때문에 병오년은 ‘붉은 말의 해(적마년)’로 불리며 변화와 추진력, 에너지의 상징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바라보는 말은 속도와 힘만을 상징하지 않는다. 최근 연구들에 따르면 말은 정교한 사회 인지와 감정 소통 능력을 가지고 있어 인간과 정서 유대·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생명체로 재조명되고 있다. 이에 사이언스타임즈는 병오년을 맞아 독자들이 불꽃 같은 에너지를 공감과 소통으로 꽃피우는 해를 보내기를 응원하며 말에 대한 과학적 사실, 그 숨겨진 매력을 탐구해본다.
강한 말, 빠른 말, 매개자 말
신화 속에서 강인한 존재뿐만 아니라 자유, 이동, 경계의 통과를 상징하는 존재로 그려져 왔다. 태양신의 전차를 끄는 말, 전장에서 인간과 생사를 함께하는 전우, 초원을 달리는 유목민의 영혼을 실은 동반자로 등장하며 인간과 신의 세계, 자연과 문명을 잇는 매개자로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이러한 상징적 의미는 병오년의 붉은 색과도 겹쳐, 변화와 해방, 뜨거운 생명력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나 산업화 이후 말은 경마·승마·레저 스포츠의 ‘수단’으로 소비되기 시작했다. 글로벌 경마 산업 규모가 수백억 달러에 달하고 승마 스포츠가 올림픽 종목으로 자리 잡은 가운데 말은 속도·성적·상품 가치로 평가받는 경향이 강해지고, 그 과정에서 생태적 특성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뒷전으로 밀렸다. 말이 사회성과 정서성, 인지능력을 통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주변 개체와 관계를 맺고, 인간과 어떤 정서적 상호작용을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오랫동안 과학보다는 경험적 직관에 의존해온 셈이다.
최근 동물행동학과 인지과학 연구는 바로 이 지점을 향해 “말은 과연 얼마나 ‘생각하고 느끼는’ 존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실험 데이터로 답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감정을 읽는 말
말이 사람의 얼굴 표정과 비언어적 소리를 통합해 감정 상태를 구분한다는 사실이 실험을 통해 입증되었다.
프랑스 국립농업식물유전자연구소(INRAE)의 자르다트(P. Jardat) 박사 연구팀은 인간의 기쁨, 두려움 등의 감정에 대해 말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연구한 결과를 지난해 5월 Scientific Reports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24마리 말을 대상으로 사람이 기쁨, 두려움, 중립의 감정을 표현한 영상을 무작위 순서로 3분씩 재생하며 눈 주위 온도와 시선 편향, 귀 움직임, 꼬리 휘두름 빈도, 심박 변이도를 정밀 측정했다. 그 결과 노출된 인간의 감정이 말에게 직접 전이되어 생리적 각성과 경계 행동, 이완 반응까지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비명을 지르거나 위험 장면에서 겁먹은 표정을 지은 ‘두려움 영상’을 본 말은 눈 온도 상승과 좌측 시선 편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실제로 눈 주위 온도가 평균 0.8°C 급상승하고 좌측 눈 사용 비율이 35% 증가했으며, 귀를 뒤로 젖히는 경계 자세가 중립 조건 대비 2배 길게 지속됐다.
반대로 사람이 크게 웃거나 환호하는 장면, 아이를 안고 기뻐하는 모습을 담은 ‘기쁨 영상’에서는 이완 반응이 확인됐다. 긍정 밸런스 지표인 우측 눈 선호가 뚜렷해졌고, 귀 앞으로 움직임과 꼬리 휘두름이 각각 40%, 25% 줄어들며 이완 상태를 보였다.
연구진은 이러한 생리·행동 반응 패턴을 인간 정서가 말에게 감정 전염을 일으키는 직접적 증거로 해석하며, 말의 정서 민감도가 개나 고양이를 능가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확신의 ‘F’, 공감과 감정 전염이 확실한 말
최근 연구들은 인간과 말 사이의 감정 교류뿐 아니라 말들끼리도 공감과 감정 전염이 뚜렷하게 작동하는 패턴을 확인하며 말의 사회성을 확증하고 있다.
2023년 키손(E. Kieson) 미국 켄터키대학교 동물행동학 교수는 초지에서 생활하는 말 무리를 대상으로 상호 그루밍 행동을 장기간 추적한 연구 결과를 Animals 저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89마리 말을 관찰하며 스트레스 상황을 유발한 뒤 선호 파트너 간 그루밍 빈도와 지속 시간, 공격 행동 변화를 정밀 기록했다. 그 결과 스트레스 시 선호 파트너와의 상호 그루밍이 평소 대비 2.5배 증가하며 집단 내 긴장을 완화하는 돌봄과 동맹 형성(tend and befriend) 전략이 확인됐다.
논문에 따르면 새로운 말 투입으로 무리가 불안해진 상황에서 선호 파트너 간 그루밍 빈도는 급증하고 지속 시간은 평균 45초에서 92초로 늘어났다. 동시에 꼬리 휘두르기와 몸치기 등 공격 행동은 40% 감소했으며 심박수 회복 속도도 그루밍 후 18% 빨라졌다. 또한 공간이 좁아져 경쟁이 심화된 조건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관찰됐다. 개체들은 무작위 그루밍 대신 특정 ‘우정’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의 목·등을 집중적으로 핥고 긁었고, 이는 집단 내 정서 안정성을 30% 이상 높이는 효과를 보였다.
연구진은 그루밍 지속 시간이 정서 안녕의 핵심 지표라고 분석하며, "말의 사회적 네트워크는 의도적 ‘우정’ 선택을 통해 스트레스를 완충하고 집단 복지를 유지한다"고 결론지었다.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말’처럼 공감의 ‘말(:)’로 채우길
과학적 사실에서 보듯 말은 고독한 질주자가 아니라 사회적 유대를 통해 살아가는 존재다. 인간의 기쁨과 두려움을 생리적으로 공유하고, 동료와의 우정 형성을 통해 스트레스를 돌보며 집단을 지탱한다.
2026년 병오년, 우리도 말에게서 배워보자. 불꽃 같은 에너지를 서로의 감정을 읽고 보듬는 공감으로 바꾸고, 위기 속에서 손 내밀어주는 연대로 새해를 채워보는 건 어떨까. 경쟁의 속도보다 함께 달리는 따뜻한 리듬이 바로 붉은 말의 해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 될 것이다.
- 김현정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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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6-01-0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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