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부부는 서로 닮아간다’는 말을 하곤 한다.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며 비슷한 식습관, 수면 패턴, 일상 생활을 공유하는 것이 신체적 특징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으로는 비슷한 종류의 음식을 섭취하고 일상적인 신체 접촉을 통해 장내 미생물 구성이 비슷해지면서 부부의 건강 상태도 서로 닮아간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같은 케이지에서 사육되는 실험 마우스들은 동일한 환경을 공유하며 서로 빈번하게 접촉하기 때문에 장내 미생물 군집이 상당 부분 유사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함께 사는 사람의 유전자가 나의 장내 미생물까지 바꿀 수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최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저널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상대방의 유전자가 나의 장내 미생물 구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음이 확인되었다. 다른 개체의 유전자가 자신의 표현형(특성)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간접 유전 효과(indirect genetic effect)라고 부른다. 고전적인 예시로 부모의 유전자가 부모의 행동이나 양육 환경을 정하고 그 결과 자식의 성장이나 면역 시스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유전자가 직접 전달되지 않더라도 유전자가 만들어낸 환경을 매개로 그 영향이 나타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이번 연구는 장내 미생물을 매개로 간접 유전 효과가 실제로 존재함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사례이다.
유전자와 장내 미생물의 상관관계
장내 미생물은 소화와 면역, 대사 조절은 물론 행동과 감정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습관이나 약물 복용이 장내 미생물 구성에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었지만, 유전자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그동안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사람의 경우 가족은 유전자뿐 아니라 식단과 생활환경도 공유하기 때문에, 장내 미생물의 차이가 유전 때문인지 또는 환경 때문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번 연구에서는 통제된 조건에서 사육이 가능한 실험용 쥐(rat, 범용적으로 사용되는 마우스보다 몸집이 큰 설치류)가 사용되었다.
연구팀은 네 개의 독립된 연구시설에서 사육된 4천여 마리의 쥐를 대상으로 실험을 수행했다. 이 쥐들은 모두 유전적으로 서로 다른 개체였으며, 동일한 먹이를 제공받고 사육 환경을 엄격히 관리하되 시설마다 사육 방식에 약간의 차이를 두어 환경적 요인의 영향을 검증하도록 설계했다. 연구진은 각 쥐의 유전체 정보와 장내 미생물 데이터를 함께 분석하여 어떤 유전자가 어떤 미생물과 연관되는지를 살펴봤다. 그 결과 장내 미생물의 상당 부분이 쥐 자신의 유전자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가장 강력한 연관성을 보인 유전자-장내 미생물 상관관계는 St6galnac1 유전자와 Paraprevotella 균이었다. St6galnac1 유전자는 장 점막을 덮고 있는 점액(뮤신)에 당 분자를 붙이는 효소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연구진은 이 유전자의 특정 변이가 있는 쥐에서 장내 점액의 당 조성이 달라지고, 그 당을 먹이로 삼는 Paraprevotella 균이 장내에서 번성한다고 추정하였다. 실제로 St6galnac1 유전자와 Paraprevotella 세균의 상관관계는 4개 모든 실험쥐 군집에서 반복 관찰되었다.
상대방의 유전자가 나의 장내 미생물 구성에도 영향
이번 연구의 핵심은 한 개체의 장내 미생물 조성에 쥐 자신의 유전자뿐 아니라, 같은 케이지에서 함께 사육된 다른 쥐들의 유전자까지 각각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정량적으로 추정한 것이다. 쥐는 같은 케이지에서 섞여 지내며 배설물이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장내 미생물이 공유된다. 연구진은 통계 모델링 기법을 활용해 각 세균 종의 변화에 대해 직접적인 유전 효과(해당 쥐 자신의 유전자 영향)와 간접적인 유전 효과(같은 케이지에 있는 다른 쥐들의 유전자 영향)를 구분하여 분석했다. 그 결과 일부 장내 미생물은 해당 쥐 자신의 유전자와 더불어 같이 사는 쥐들의 유전자 영향도 함께 받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즉, 개체 간의 미생물 교환을 통하여, 한 개체의 유전자로 인해 특정 미생물이 주변 개체들에게 전파되고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이러한 간접 유전 효과를 고려하면 유전자-장내 미생물 상관관계가 4~8배 가량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쥐에서 밝혀진 이러한 현상을 인간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까. 장내 미생물은 대사작용이나 면역 시스템 뿐 아니라 장-뇌 축을 통한 감정, 행동 등에도 폭넓게 관여한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연구진은 간접 유전 효과가 사람에게도 존재할 경우 유전자가 건강에 미치는 전체적인 영향력이 우리가 생각해온 것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고 말한다. 유전자가 자신의 질병 위험만이 아니라 주변인의 질병 위험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에 쥐에서 발견된 St6galnac1 유전자는 인간의 ST6GAL1 유전자와 상동(두 유전자가 공통 조상으로부터 유래)이며 기능적으로 매우 유사한데, 이전 연구들을 통하여 ST6GAL1 유전자 변이가 장내 Paraprevotella 균의 분포와 연결되어 있음이 보고된 바 있다. 장 점막에 당을 첨가하는 방식에 따라 어떤 미생물이 장에 정착하고 번성하는지가 결정되며, 이러한 원리가 종을 넘어 공통적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결과이다.
함께 사는 것은 건강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
이번 연구는 한 사람의 유전자가 다른 사람의 몸속 미생물 생태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과학적 발견을 넘어, 건강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우리는 흔히 유전자를 개인의 문제로 생각하지만 이번 연구는 유전자의 영향이 미생물을 통해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음식을 나누며 일상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몸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2026년 새해를 맞으며 이 연구는 나의 건강이 곧 주변 사람들의 건강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어쩌면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깊은 수준에서 연결돼 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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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회빈 리포터
- acochi@hanmail.net
- 저작권자 2026-01-0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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