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색체 수 이상으로 발생하는 다운증후군은 원인이 명확한 질환으로 꼽힌다. 1959년 프랑스 유전학자 제롬 르죈에 의해 정상보다 하나 더 많은 21번 염색체, 이른바 ‘삼염색체(trisomy 21)’ 상태가 질환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이후 60여 년 동안 이 질환의 근본 원인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세포 안에 존재하는 여분의 염색체 하나만을 정확히 골라 제거하는 기술은 구현되지 못한 채 남아 있었다. 동일한 번호의 염색체가 세 개 존재하는 상황에서 그중 어느 하나를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과제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일본 미에대학교 의과대학 하시즈메 료타로(Ryotaro Hashizume) 교수 연구진은 CRISPR-Cas9 유전자 가위 기술을 활용해 다운증후군 세포에서 특정 21번 염색체 하나만을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여분’이 아니라 ‘구분되지 않는 여분’이 문제였다
다운증후군 세포에는 21번 염색체가 세 개 있지만 이들은 부모 유래에 따라 유전자 서열과 발현 양상에 미묘한 차이를 가진다. 그래서 이 질환의 핵심은 단순히 ‘하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어느 것’을 선택하는지에 달렸다. 그런데 기존 CRISPR 접근은 이 셋을 무작위로 자르거나 통제 없이 제거해 세포 손상을 키우고 생존율을 떨어뜨렸으며, 어떤 염색체가 사라졌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이번 연구에서 하시즈메 교수팀은 다운증후군을 ‘염색체 수 이상’이 아닌 ‘구분되지 않는 여분 염색체’가 유발하는 발현 불균형으로 재정의했다. 즉 각각의 염색체를 정확히 겨냥하기 위한 분류가 핵심인 연구다. 이를 위해 먼저 환자의 피부세포로 만든 유도만능줄기세포(iPS)의 전장유전체를 분석해 세 개의 21번 염색체를 분자 수준에서 구분하는 고유 표지를 찾았다. 그리고 각각을 하나씩 제거한 세포주를 만들어 유전체 서열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특정 염색체에만 존재하는 고유한 DMA 서열 1만5천여 개를 찾아냈다. 이 중 49%는 염색체 끝부분인 서브텔로미어 영역에 집중돼 있었다. 연구진은 이 서열들을 표적으로 삼아 원하는 염색체 하나만 정확히 절단할 수 있는 가이드RNA 시스템을 개발했다.
절단 횟수 늘릴수록 제거 효율 높아져
연구진은 이 시스템으로 특정 21번 염색체를 1곳부터 13곳까지 단계적으로 절단 횟수를 늘려가며 제거 효율을 비교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마치 나무를 베어낼 때 한 번 자르는 것보다 여러 곳을 자르면 쓰러뜨리기 쉬운 것처럼 염색체도 여러 곳을 절단할수록 세포에서 제거될 확률이 높아질 거란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절단 위치가 1곳일 때는 염색체 제거율이 1%에 불과했지만, 13곳을 절단했을 때는 13.1%까지 올라갔다. 절단 횟수가 많을수록 염색체 제거 효율이 비례해서 증가한 것이다.
더 높은 효율을 얻기 위해 연구진은 DNA 손상 복구 유전자를 일시적으로 억제하는 방법을 추가했다. DNA 손상 복구에 관여하는 POLQ와 LIG4 유전자의 활성을 siRNA로 일시적으로 억제하자, 염색체 제거율은 평균 1.78배 증가했고, 최종적으로는 20%를 넘는 제거율이 확인됐다. 같은 조건에서 세 개의 21번 염색체를 모두 절단하는 비선택적 방식은 제거율이 약 8%에 불과했고, 세포 생존율도 크게 떨어졌다.
정상 세포로의 회복 실제로 확인
염색체 제거 이후 세포의 변화는 수치로도 확인됐다. RNA 염기서열 분석 결과 다운증후군 세포에서 과도하게 발현되던 유전자 다수가 감소했고, 억제돼 있던 유전자는 회복됐다. 특히 신경계 발달, 뉴런 생성, 세포 주기 조절과 관련된 유전자 네트워크가 정상 세포와 유사한 방향으로 재편성됐다.
다운증후군 환자는 태아 14주경부터 뇌 크기가 작아지고 신경전구세포의 증식이 감소하는데, 이번 연구에서 염색체 제거 후 이런 발달 과정 관련 유전자들이 회복된 것이다.
세포 기능적 변화도 동반됐다. 염색체 제거 후 정상화된 세포들의 세포 증식 속도는 증가했고, 분열 주기는 짧아졌다. 다운증후군 세포에서 특징적으로 관찰되는 활성산소(ROS) 과다 생성도 유의미하게 감소했다. 형광 표지 추적 분석에서는 제거된 염색체의 93%가 목표로 설정한 특정 염색체임이 확인돼, 선택적 제거의 정확성도 검증됐다.
연구진은 줄기세포뿐 아니라 분화가 끝난 피부세포에서도 실험을 진행했고, 그 결과 세포 분열을 하지 않는 세포에서도 3.2%의 염색체 제거율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이 기술이 다양한 세포 유형과 분열 상태에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있다. 염색체가 제거되지 않고 남은 경우 절단 부위에 돌연변이가 생길 수 있고, 표적이 아닌 염색체에서도 의도하지 않은 절단이 일부 관찰됐다.
하시즈메 교수는 "이번 연구는 개념 증명 단계"라며 "임상 적용을 위해서는 제거율을 더 높이고, DNA 절단 없이도 작동하는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다운증후군의 근본 원인에 접근하는 새로운 치료 전략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다.
- 김현정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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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5-12-1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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