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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학
김현정 리포터
2025-12-23

하루 5000보만 걸어도 치매 예방 효과 ↑ 적당한 신체활동이 알츠하이머 타우 단백질 축적 늦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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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병 예방을 위해 하루 만보를 걷지 않아도 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하루 5000~7500보 수준의 신체활동만으로도 치매 위험을 유의미하게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알츠하이머병은 흔히 노화에 따라 피할 수 없이 발생하는 질환으로 인식돼 왔지만, 역학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환자의 약 절반은 운동 부족, 흡연, 고혈압처럼 조절 가능한 생활습관 위험요인과 연관돼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전체 알츠하이머병 발생의 21%가 신체 활동 부족에 기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동안 신체활동이 어느 정도 수준에서, 어떤 생물학적 기전을 통해 치매 위험을 낮추는지는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하버드 의대 신경과 웬디 야우 박사와 재스미어 차트왈 박사 연구팀은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50~90세 노인 296명을 대상으로 14년간 추적 관찰한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 최신호에 발표했다.

하루 만보를 기준으로 삼지 않아도 알츠하이머병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GettyImagedBank 
하루 만보를 기준으로 삼지 않아도 알츠하이머병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GettyImagedBank 


만보계로 정확히 측정, 14년 추적

기존 연구 대부분은 참가자가 스스로 보고한 운동량을 기준으로 삼아 왔다. 하지만 이 방식은 기억에 의존하기 때문에 부정확할 수 있으며, 특히 인지 기능이 저하되기 시작한 노인에게는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한계가 있다. 연구팀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허리띠에 부착하는 만보계를 활용해 일주일간 실제 걸음 수를 객관적으로 측정했다.

연구 대상은 하버드 노화 뇌 연구(Harvard Aging Brain Study, 이하 HABS)에 참여한 인지 기능 정상 노인 296명이었다. 연구 시작 시점에 아밀로이드 베타(Aβ) PET 촬영을 통해 뇌 속 아밀로이드 축적 정도를 확인했고, 이후 최대 14년 동안 매년 인지 기능 검사를 실시했다. 일부 참가자는 타우 단백질 PET 촬영도 병행했다. 참가자들의 하루 평균 걸음 수는 5719보였으며, 이 중 30%는 아밀로이드 양성으로 분류됐다.

야우 박사는 “객관적으로 측정한 신체활동이 알츠하이머 병리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장기간에 걸쳐 추적했다”며 “특히 증상이 나타나기 전 단계인 전임상기에 초점을 맞췄는데, 이 시기가 질병의 경로를 바꿀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신체활동량에 따른 14년간의 변화 추이. 운동을 많이 한 그룹(실선)은 아밀로이드가 높아도 타우 축적과 인지 저하가 느렸다. ⒸNature Medicine
신체활동량에 따른 14년간의 변화 추이. 운동을 많이 한 그룹(실선)은 아밀로이드가 높아도 타우 축적과 인지 저하가 느렸다. ⒸNature Medicine


타우 단백질 축적을 억제한다

분석 결과, 신체활동이 많을수록 아밀로이드 수치가 높은 사람에서 인지 기능과 일상 기능 저하 속도가 더 느리게 나타났다. 흥미로운 점은 이 보호 효과가 아밀로이드 축적 속도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다는 점이다. 즉, 운동을 많이 한다고 해서 아밀로이드가 덜 쌓이거나 더 천천히 쌓이는 것은 아니었다.

대신 연구팀은 새로운 기전을 확인했다. 신체활동이 많은 사람일수록 뇌 하측두엽에 타우 단백질이 축적되는 속도가 유의미하게 느렸다. 타우 단백질은 아밀로이드와 함께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키는 핵심 병리 물질로 꼽힌다. 매개분석 결과, 타우 축적 속도의 감소가 인지 저하 억제 효과의 84%를 설명했으며, 일상 기능 저하 억제 효과의 경우에도 40%를 설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트왈 박사는 “신체활동의 보호 효과는 아밀로이드가 아니라 타우 병리를 통해 나타났다”며 “이는 운동이 알츠하이머 병리 연쇄 반응에서 아밀로이드보다 뒤쪽 단계에 작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5000~7500보가 최적, 비활동층에서 효과 크다

연구팀은 참가자들의 신체활동 수준을 네 단계로 나눠 분석했다. 비활동군(하루 3000보 이하), 저활동군(3001~5000보), 중등도 활동군(5001~7500보), 활동군(7501보 이상)이다.

그 결과 비활동군과 비교했을 때 저활동 수준만 도달해도 타우 축적과 인지 저하가 크게 억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등도 활동군에서는 추가적인 보호 효과가 확인됐지만, 그 이상 걸어도 효과는 더 이상 증가하지 않았다. 즉, 하루 5000~7500보에서 효과가 정점에 이르는 곡선형 관계를 보였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아밀로이드 수치가 높은 참가자들의 9년간 인지 점수(PACC5) 변화는 비활동군 -2.5점, 저활동군 -1.5점, 중등도 활동군 -1.1점, 활동군 -1.2점이었다. 이는 비활동군 대비 인지 저하 속도가 40~54% 느렸다는 의미다. 일상 기능 저하(CDR-SOB) 속도 역시 34~51% 늦춰졌다.

인지 장애 기준선(-1.5점)에 도달하는 시점을 추정하면, 비활동군은 평균 6.5년, 저활동군은 9.6년, 중등도 활동군은 13.6년, 활동군은 12.7년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하루 만보를 목표로 삼기보다 5000~7500보 정도가 노인에게 더 현실적인 목표”라며 “특히 평소 활동량이 적은 사람이 조금만 늘려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신체활동 수준별 9년간 인지·기능 변화 예측 그래프. 아밀로이드가 높은 그룹(빨간색)에서 활동량이 많을수록 인지 장애 기준선(-1.5점)과 기능 저하 기준선(1.5점) 도달 시점이 크게 지연됐다. ⒸNature Medicine
신체활동 수준별 9년간 인지·기능 변화 예측 그래프. 아밀로이드가 높은 그룹(빨간색)에서 활동량이 많을수록 인지 장애 기준선(-1.5점)과 기능 저하 기준선(1.5점) 도달 시점이 크게 지연됐다. ⒸNature Medicine


신약과 병행하면 시너지 효과

연구팀은 결과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추가 분석을 실시했다. 하루 1000보 미만의 극단값을 제외하거나, PET 영상 보정 방식을 변경하거나, 70세 미만 참가자만 포함해 분석해도 결과는 일관됐다. 혈관 위험인자나 우울 증상을 보정하거나, 연구 시작 후 2년 이내 경도인지장애로 진행한 사람을 제외했을 때도 동일한 경향이 유지됐다.

이는 역인과관계 가능성을 낮춘다. 즉, 알츠하이머 초기 증상 때문에 활동량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신체활동 자체가 병리 진행을 늦췄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실제로 연구 시작 시점에서 신체활동량과 인지 기능 사이에는 유의미한 연관성이 없었고, 아밀로이드나 타우 수치가 높다고 해서 운동량이 적지도 않았다.

다만 한계도 분명하다. 관찰연구인 만큼 인과관계를 확정하려면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이 필요하다. 또한 신체활동은 연구 시작 시점에만 측정됐고, 운동의 강도나 지속 시간, 과거 운동 이력은 분석하지 못했다. 참가자가 고학력 백인 위주였다는 점도 다른 인구집단에 일반화하는 데 제약으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우 박사는 “이번 연구는 신체활동 부족을 개선하는 개입이 전임상 알츠하이머병의 진행을 늦출 수 있다는 강력한 근거를 제시한다”며 “아밀로이드 수치가 높은 비활동 노인을 우선 대상으로 삼고, 타우 PET를 주요 평가 지표로 사용하며, 충분히 긴 관찰 기간을 설정한다면 예방 효과를 입증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최근 레카네맙, 도나네맙 등 항아밀로이드 치료제가 잇따라 승인되면서, 신체활동과의 병행 효과도 주목받고 있다. 약물로 아밀로이드를 제거하고, 운동으로 타우 축적을 억제하는 이중 기전이 결합될 경우 알츠하이머병 진행을 더욱 효과적으로 늦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현정 리포터
vegastar0707@gmail.com
저작권자 2025-12-2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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