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 뇌에서 일어나는 일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두 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영어는 물론 일본어, 스페인어 등 제2외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이유는 다양하다. 가장 중요하게도 직업적 필요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학업, 여행, 또는 다른 문화권 사람들과의 소통 등을 위해서 새로운 언어의 배움이 시작된다. 최근 신경과학 연구들은 언어 학습이 단순히 의사소통 능력을 넓히는 것을 넘어, 뇌의 물리적 구조와 기능을 실제로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뇌는 근육처럼 훈련을 통해 강해진다. 역기를 들면 근섬유가 굵어지듯,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 뇌의 신경 회로가 재편된다. 신경과학자들이 "다국어 사용자는 단일 언어 사용자와 다르게 정보를 처리한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리고 여러 언어를 구사하면 정말 더 똑똑해지는 걸까?
언어를 담당하는 뇌의 영역들
언어 처리는 뇌의 여러 영역이 협력하는 복잡한 과정이다. 미국 휴스턴 대학교의 신경과학자 아르투로 에르난데스(Arturo Hernandez) 교수에 따르면, 언어 처리는 크게 두 가지 핵심 회로를 필요로 한다고 한다. 하나는 소리를 인지하고 생성하는 회로로, 이것이 언어의 토대를 형성한다. 다른 하나는 어떤 언어의 소리를 사용할지 선택하는 회로이다. 그리고 이 회로들은 우리가 언어를 배우고 전환할 때 재배선된다. 이것이 바로 소리를 매핑하고 어떤 언어로 작동할지 결정하는 과정이다.
언어 처리를 위해서는 청각 피질(auditory cortex)과 같은 감각 영역이 말소리를 처리해야 하며, 혀, 입술, 성대를 조절하는 근육을 제어하기 위한 광범위한 운동 신경망이 필요하다. 이는 모든 언어에 공통적이지만, 새로운 언어를 배우려면 뇌의 '고차 처리' 영역에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반면, 전두엽에 위치한 브로카 영역(Broca's area)은 주로 구문론, 즉 문장 구조를 담당한다. 문법적으로 올바른 문장을 만들고 문장 구조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브로카 영역은 또한 말을 생성하는 데 중요하며, 단어를 발음하는 데 필요한 운동 제어를 촉진한다.
또한, 베르니케 영역(Wernicke's area)과 같은 다른 뇌 영역은 어휘 이해와 단어 인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고 장기 기억에 저장하는 것을 돕는다.
새로운 언어가 뇌를 물리적으로 변화시키는 방식
2024년 독일에서 수행된 한 연구는 시리아 난민들이 독일어를 배우기 전, 학습 중, 그리고 학습 후의 뇌 활동을 측정했다. 연구 결과, 사람들의 뇌는 독일어에 능숙해질수록 재배선되었다. '뇌 재배선'이란 뇌의 신경 구조가 물리적으로 변화한다는 의미다.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 불리는 이 과정이 바로 학습의 기저에 있는 메커니즘인데, 이에 따라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은 참가자들의 뇌가 새로운 언어 정보를 부호화하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새로운 방식을 필요로 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엘리자베스타운 칼리지의 인지신경과학자 제니퍼 위트마이어(Jennifer Wittmeyer)에 따르면 구조적으로 언어 학습은 언어 처리 및 실행 기능과 관련된 영역의 회백질 구조를 증가시킨다고 설명한다.
뇌의 구조적 변화는 뇌의 기능 방식도 바꾼다. 신경세포들이 소통하는 방식이 물리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신경 가소성'은 단어를 더 빨리 기억하고, 새로운 소리를 더 잘 인식하며, 입 근육을 제어하여 발음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전문가에 따르면 기능적으로 언어 학습은 뇌 영역 간 연결성을 강화하여, 주의력, 기억, 인지 제어와 관련된 신경망 간의 더 효율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고 한다.
어린이가 언어 학습에 유리한 이유
연구들은 모든 언어에 동일한 뇌 신경망을 사용하지만, 뇌가 모국어에 다르게 반응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 연구에 따르면, 참가자들이 모국어를 들을 때 언어 신경망의 뇌 활동이 실제로 감소했다. 이는 처음 습득한 언어가 최소한의 노력으로 뇌에서 다르게 처리됨을 시사한다고 연구자들은 말한다.
연구는 또한 어린 아이들이 성인보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훨씬 쉽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린 아이들의 뇌는 아직 발달 중이며 신경 가소성과 학습에 더 적응력이 있다. 성인과 달리, 아이들은 첫 번째 언어에서 번역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소리, 문법, 단어를 더 쉽게 습득한다. 이는 어린 나이에는 뇌에 그다지 많은 경직성이 없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성인의 뇌는 이미 첫 번째 언어를 중심으로 구조화되어 있어서, 두 번째 언어는 이전에 확립된 신경망에 의존하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발달하기보다는 기존 지식에 적응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조기 언어 교육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뇌가 여전히 유연한 시기에 여러 언어에 노출되면, 각 언어가 더 독립적으로, 더 깊게 신경망에 자리잡을 수 있다. 반면 성인의 경우 새로운 언어는 기존의 언어 체계 위에 덧붙여지는 형태가 되어, 자동성과 유창성을 획득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언어를 배우면 더 똑똑해지는가?
일부 연구는 다국어 사용이 기억력이나 문제 해결 능력과 같은 인지 능력을 향상시킨다고 보여준다. 그렇다면 다국어 사용자들이 더 똑똑한 것일까? 전문가들은 이에 대한 대답이 매우 복잡하지만, 아마도 'NO'라고 설명한다.
누군가 한 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한다면, 그들의 언어적 레퍼토리가 증가한다. 모든 언어를 통틀어 더 많은 단어, 더 많은 항목, 필연적으로 더 많은 개념을 갖게 된다. 하지만 더 다양한 어휘력이 더 큰 인지적 예비력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뇌의 기억 저장소에 더 많은 단어가 저장되어 있기 때문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것은 지능과 같은 것이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다국어 사용자가 정말 더 지능적인지 테스트하려면, 전문가들은 언어와 관련이 없는 과제를 찾아야 한다고 설명하는데, 지금까지의 과학적 증거들은 다국어 사용자들이 언어와 관련이 없는 과제에서 더 잘 수행한다는 것을 매우 명확하게 보여주지 못한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다국어 사용자의 인지 능력 변화가 언어 학습 때문인지, 아니면 교육이나 성장 환경과 같은 다른 요인들 때문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인지 능력에는 너무 많은 요인이 관여하기 때문에 언어 학습이라는 하나의 요인으로 격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향상된 인지 능력이 똑똑함과 같은지 여부와 관계없이,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이 삶에 새로운 문화적 경험을 열어준다는 것은 분명하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를 넘어, 다른 세계관과 사고방식에 접근하는 문이기 때문이다. 다국어 사용자들은 서로 다른 언어적 틀을 통해 같은 현실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며, 이는 그 자체로 인지적 유연성의 한 형태라 할 수 있다.
- 김민재 리포터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5-11-2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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