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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지도가 만들어지고 있다! 알츠하이머부터 자폐증까지, 새로운 치료법의 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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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지도가 만들어지고 있다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신경계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다발성경화증, 자폐증, 간질 등 뇌와 관련된 질환은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의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 이러한 질환들을 이해하고 치료하기 위해서는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무엇이 잘못되는지를 세포 수준에서 파악해야 한다. 그런데 인간의 뇌는 약 860억 개의 신경세포로 이루어진 우주에서 복잡한 구조물 중 하나다. 이 복잡성을 해독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뇌 지도(brain atlas)'를 만들고 있다.

시간에 따라서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는 획기적인 연구는 마치 그 도시가 수백 년에 걸쳐 어떻게 건설되고 변화해왔는지를 보여주는 타임랩스 영상과 같다고 표현할 수 있다. ⓒ Nowakowski et al. 2025
시간에 따라서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는 획기적인 연구는 마치 그 도시가 수백 년에 걸쳐 어떻게 건설되고 변화해왔는지를 보여주는 타임랩스 영상과 같다고 표현할 수 있다. ⓒ Nowakowski et al. 2025

2025년 11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획기적인 뇌 지도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북미, 스웨덴, 벨기에, 싱가포르의 연구센터들이 참여한 12개의 연구로 구성된 이 뇌 지도는 기존의 것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을 취한다. 단순히 뇌의 특정 시점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세포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분화하고 변화하며 때로는 오작동하는지를 추적한 '4차원 지도'인 것이다. 전통적인 뇌 연구는 주로 뇌의 큰 구조나 기능적 영역에 초점을 맞춰왔다. 문제는 MRI나 CT 스캔은 뇌의 해부학적 구조를 보여주지만, 개별 세포 수준의 정보는 제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반면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뇌 지도는 현미경적 수준에서 각 세포의 정체와 위치를 밝힌다. 이는 마치 위성사진으로 도시를 보는 것에서, 각 건물의 용도와 설계도를 파악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과 같다. 또한, 시간에 따라서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는 획기적인 연구는 마치 도시의 지도를 보는 것에서 나아가, 그 도시가 수백 년에 걸쳐 어떻게 건설되고 변화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타임랩스 영상과 같다고 표현할 수 있다.

 

시간의 흐름을 담은 뇌 지도

인간의 뇌는 수백 가지 종류의 서로 다른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 신경세포(뉴런)만 해도 다양한 형태와 기능을 가진 수십 가지 아형이 존재한다. 여기에 신경교세포(glial cells)라 불리는 지원 세포들이 더해진다. 이 모든 세포들이 특정한 패턴으로 배열되고 연결되어 우리의 생각, 감정, 기억, 움직임을 가능하게 한다. 뇌 지도는 바로 이 복잡한 세포 조직의 청사진이다.

뇌 지도는 바로 복잡한 세포 조직의 청사진이다. ⓒ humanbrainproject.eu
뇌 지도는 바로 복잡한 세포 조직의 청사진이다. ⓒ humanbrainproject.eu

독일 율리히 연구센터(Jülich Research Center)의 신경과학자이자 유럽의 주요 뇌 매핑 프로젝트인 EBRAINS를 이끌고 있는 카트린 아문츠(Katrin Amunts) 박사는 뇌 지도를 "뇌의 복잡한 지형을 위한 상세한 GPS와 같다"고 설명한다. 지리적 지도가 산맥, 강, 도시의 위치를 표시하듯, 뇌 지도는 뇌의 다양한 영역과 세포 유형, 그리고 그들의 연결을 표시한다. 그러나 뇌 지도는 단순한 해부학적 위치 정보를 넘어서서 각 세포가 어떤 유전자를 발현하는지,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지, 다른 세포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까지 담고 있다.

이번에 네이처에 발표된 뇌 지도가 특별한 이유는 앞선 설명처럼 '시간'의 차원을 추가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뇌 지도들이 주로 성인 뇌의 '스냅샷'을 제공했다면, 새로운 지도는 뇌가 어떻게 발달하는지, 세포가 어떻게 분화하고 이동하며 변화하는지를 보여준다. 미국 앨런 뇌과학연구소(Allen Institute for Brain Science)의 소장 홍쿠이 쩡(Hongkui Zeng) 박사는 이를 "궤적 지도(trajectory map)"라고 부른다고 덧붙인다. 이는 다양한 시점의 스냅샷들을 연결하여 변화의 지도를 만드는 것인데, 연구팀은 발달 중인 세포에서 유전자가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모니터링하고, 이 구조들이 마우스 뇌에서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고 이동하는지를 추적했다.

또한, 해당 지도는 인간, 비인간 영장류, 생쥐의 데이터를 포함한다. 가장 초기 세포 분열 단계부터 시작하여, 어떻게 하나의 미분화 세포(progenitor cell)가 특수화된 다양한 세포 유형으로 분화하는지를 보여준다. 마치 나무의 한 줄기에서 수많은 가지가 갈라지듯, 뇌세포도 발달 과정에서 점점 더 전문화된 역할을 갖게 된다. 아문츠 박사는 "공식적으로는 초안 지도이지만, 제공하는 통찰은 획기적이다"라고 평가한다. 이 지도들은 종을 넘어선 공간적 청사진을 제공함으로써, 연구 결과를 실제 치료법으로 전환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질병의 비밀을 풀다

뇌 지도의 가장 중요한 응용 분야는 질병 연구가 될 수 있다. 쩡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일단 해당 지도가 있으면 질병 조직을 가져와서 같은 방식으로 분석하고, 세포들을 참조 지도와 대조하여 무엇이 변했는지 볼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알츠하이머병으로 사망한 사람의 뇌 조직을 건강한 뇌 지도와 비교하면, 언제 어디서 질병과 관련된 변화가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있다.

뇌지도는 가까운 미래에 수백만 명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치료법으로 연구를 전환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 Nowakowski et al. 2025
뇌지도는 가까운 미래에 수백만 명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치료법으로 연구를 전환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 Nowakowski et al. 2025

예를 들면, 알츠하이머병은 특정 유형의 신경세포가 점진적으로 손실되고, 베타-아밀로이드 플라크와 타우 단백질 엉킴이 축적되는 것이 특징이다. 뇌 지도를 통해 어떤 세포 유형이 가장 먼저 영향받는지, 질병이 어떤 경로로 진행되는지를 추적할 수 있다. 반면, 다발성경화증(MS)의 경우, 면역체계가 신경세포를 감싸는 미엘린 수초를 공격한다. 뇌 지도는 어떤 뇌 영역의 어떤 세포들이 가장 취약한지, 왜 면역체계가 이들을 표적으로 삼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와 같은 신경발달 질환의 경우, 해당 질환은 성인기가 아니라 뇌 발달 과정에서 시작된다. 시간에 따른 변화를 보여주는 새로운 뇌 지도는 정상적인 발달 궤적에서 언제, 어떻게 이탈이 발생하는지를 밝힐 수 있다. 특정 세포 유형의 과잉 생산이나 부족, 또는 신경 연결의 비정상적 패턴을 초기에 발견할 수 있다면, 조기 진단과 개입이 가능해진다.

아문츠 박사는 뇌 지도가 가져올 수 있는 구체적인 이점들에 대해서 알츠하이머나 간질 같은 질환에 대한 더 정확한 진단 기법, 더 정밀한 뇌수술 계획, 그리고 파킨슨병을 위한 심부뇌자극술(Deep Brain Stimulation)과 같은 표적 치료법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설명한다. 심부뇌자극술은 뇌의 특정 영역에 전극을 삽입하여 전기 신호로 증상을 완화하는 치료법인데, 뇌 지도를 통해 정확히 어느 세포 집단을 표적으로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이는 가까운 미래에 수백만 명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치료법으로 연구를 전환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인간 뇌 조직 부족이라는 난제

혁신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뇌 지도 프로젝트는 근본적인 한계에 직면해 있다. 바로 세포 수준에서 가장 포괄적인 지도는 인간이 아니라 쥐의 뇌로 만들어지기 때문인데, 이유는 간단하다. 적절한 인간 뇌 조직에 접근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과학 연구용 인간 조직은 '뇌 은행(brain bank)'이라 불리는 기관에서 공급된다. 다른 모든 형태의 장기 기증과 마찬가지로, 이 저장소에 기증되는 뇌는 사전 동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뇌 기증의 빈도는 간이나 신장 같은 다른 장기의 기증보다 훨씬 적은 수치를 보인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어려운 주제이지만, 사망한 어린이의 가족이 뇌를 기증하는 경우도 매우 드물다는 문제도 있다. 신경발달 질환을 이해하려면 발달 중인 뇌를 연구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조직이 매우 부족한 것이다. 즉, 뇌 지도에 포함될 수 있는 적절한 세포 조직의 가용성을 제한하고 있는 셈이다. 

쩡 박사는 이에 대해서 자신들이 하는 모든 동물 연구는 인간 자체에 가까이 가지 못한다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얻어진 결과를 통해서 인간의 경우에 대응시키고 외삽하며 모델링할 수 있지만, 인간을 '직접'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연구를 위한 뇌 기증에 대한 더 많은 도움을 요청하지만, 이는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문제인 것을 누구보다 더 잘알고 있다. 

뇌 지도가 완성되면, 그것은 단지 과학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을 넘어 실질적인 의학적 혁명을 가져올 것이다. ⓒ Nowakowski et al. 2025
뇌 지도가 완성되면, 그것은 단지 과학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을 넘어 실질적인 의학적 혁명을 가져올 것이다. ⓒ Nowakowski et al. 2025

마우스나 원숭이의 뇌는 인간 뇌와 많은 공통점을 공유하지만, 중요한 차이점들이 있다. 특히 고등 인지 기능과 관련된 대뇌피질의 구조는 인간에서 훨씬 더 복잡하게 발달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특히, 알츠하이머병이나 정신분열증 같은 일부 질환은 인간에게 고유하거나 인간에서 매우 다르게 나타난다. 따라서 인간 뇌 조직을 직접 연구하는 것은 대체 불가능하다.

더 나아가, 현재 사용되는 인간 샘플의 대부분은 미국과 유럽에서 나온다. 전 세계적으로 뇌 은행이 생겨나고 있지만, 현재 상황은 연구에 다양성이 부족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즉, 과학자들은 인간 다양성의 매우 좁은 부분만을 샘플링하고 있는 셈이다. 인간 다양성은 동물에 비해 방대하기에 연구자들은 이 정교한 세포 수준에서 우리의 뇌가 서로 어떻게 비교되는지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연구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인구를 포함하도록 확장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또한, 유전적 배경, 환경, 생활 방식의 차이는 뇌 구조와 질병 취약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를 들어, 알츠하이머병의 위험 인자나 진행 속도가 인구 집단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진정으로 보편적인 뇌 지도를 만들고, 모든 사람에게 효과적인 치료법을 개발하려면 전 세계의 다양한 인구를 대표하는 샘플이 필요하다.

 

미래를 향하여

뇌 지도 프로젝트는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현재의 뇌 지도들은 아직 '초안'이며, 앞으로 훨씬 더 상세하고 포괄적인 버전들이 나올 것이다. 기술의 발전, 특히 단일 세포 시퀀싱(single-cell sequencing)과 공간 전사체학(spatial transcriptomics) 같은 기법의 발전은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수준의 해상도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전 세계의 연구팀들이 협력하여 더 완전한 인간 뇌 지도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의 EBRAINS 프로젝트, 미국의 BRAIN Initiative, 일본의 Brain/MINDS 프로젝트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데이터를 공유하고 표준화된 방법론을 개발하여, 궁극적으로 통합된 전지구적 뇌 지도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뇌 지도가 완성되면, 그것은 단지 과학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을 넘어 실질적인 의학적 혁명을 가져올 것이다.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기억을 잃기 전에 조기 진단받고, 파킨슨병 환자가 떨림 없이 살 수 있으며, 자폐 아동이 적절한 조기 개입으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미래. 뇌 지도는 그러한 미래로 가는 필수적인 첫걸음이다.

860억 개의 신경세포로 이루어진 우주, 인간의 뇌. 그 복잡성을 해독하는 여정은 아직 멀었지만, 우리는 이제 올바른 지도를 들고 그 길을 걷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노력의 성공이 과학 커뮤니티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반 대중의 참여, 특히 뇌 기증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수적이다. 물론 앞선 설명처럼 자신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뇌를 과학에 기증하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라는 점도 과학계가 해결해야 할 문제 중 하나이다.

 

네이처 저널에 게재된 12개의 뇌 지도에 관한 연구들 바로 보러가기

김민재 리포터
minjae.gaspar.kim@gmail.com
저작권자 2025-11-1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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