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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독감 H5N1, 북반구 전역 확산 철새가 가져온 새로운 보건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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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 이동 경로를 따라 확산하는 바이러스

가을 철새의 이동과 함께 치명적인 조류독감 H5N1이 북반구 전역에서 다시 확산되고 있다. 어느새 독일, 덴마크와 네덜란드 등 네덜란드에서 총 수십만 마리가 넘는 가금류가 긴급 살처분당했다. 독일에서는 감염된 두루미들이 베를린과 슈투트가르트 지역에서 남쪽으로 이동하다 집단 폐사했다. 인근 농장들은 전파를 차단하기 위해 50만 마리의 가금류를 살처분했다. 독일 프리드리히 뢰플러 연구소(FLI)는 11월까지 감염이 계속될 것으로 예측했다. 프랑스와 벨기에는 경보 수준을 최고 단계로 격상하여 가금류의 실내 사육을 의무화했다. 영국과 슬로바키아에서도 감염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이들은 긴 여정 중 습지와 호수, 농경지에서 휴식을 취하며, 이 과정에서 야생 조류와 농장 가금류가 접촉하면서 바이러스가 전파된다. © Getty Images
이들은 긴 여정 중 습지와 호수, 농경지에서 휴식을 취하며, 이 과정에서 야생 조류와 농장 가금류가 접촉하면서 바이러스가 전파된다. © Getty Images

1990년대 중반 처음 발견된 H5N1은 2020년 이후 매년 발생하며 계절성 질병이 아닌 상시적 위협으로 변모하고 있는데, 현재 남극을 포함한 전 대륙에서 검출되는 이 바이러스는 조류를 넘어 포유류와 인간까지 감염시킬 수 있어 팬데믹 우려를 키우고 있다.

북반구의 가을은 수억 마리의 철새가 남쪽으로 이동하는 시기이다. 이들은 긴 여정 중 습지와 호수, 농경지에서 휴식을 취하며, 이 과정에서 야생 조류와 농장 가금류가 접촉하면서 바이러스가 전파된다. 더 큰 문제는 올해는 철새 이동이 예년보다 일찍 시작되었고, 과거에는 H5N1에 걸리지 않았던 두루미까지 보균체가 되면서 상황이 악화했다는 점이다. 스페인 카스티야-라만차 대학의 우르술라 회플레 수의학자는 이에 대해서 "과거에는 조류독감이 겨울철에만 예상되었지만, 이제는 야생 조류에서 연중 내내 발생한다"라고 설명했다.

 

종의 장벽을 넘는 인수공통감염병

H5N1을 포함한 인플루엔자 A형 바이러스는 종의 경계를 넘어 전파되는 특성을 가진다. 이들은 인간, 말, 돼지, 박쥐, 조류 등에서 순환하며 진화한다. 특히, H5N1은 감염된 조류와의 직접 접촉, 공기 중 바이러스 입자의 흡입, 오염된 표면과의 접촉을 통해 전파된다. 바이러스는 감염된 조류의 타액, 비강 분비물, 분변을 통해 환경으로 배출된다. 이에 FLI의 팀 하더 연구소장은 농장 근로자들에게 "보호복 외에도 일회용 장갑, 보안경, FFP3 등급의 호흡기 보호구를 착용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RNA 바이러스로 돌연변이율이 높으며, 감염이 반복될수록 인간 적응형 변이를 획득할 가능성이 커진다. © Getty Images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RNA 바이러스로 돌연변이율이 높으며, 감염이 반복될수록 인간 적응형 변이를 획득할 가능성이 커진다. © Getty Images

최근 몇 년간 주로 농업 종사자를 중심으로 소수의 인간 감염 사례가 발생했다. 다행히 대부분은 회복했으며, 인간 간 전파는 보고되지 않았다. 하지만, 존스 홉킨스 블룸버그 공중보건대학원의 메건 데이비스 연구자는 "바이러스가 인간이나 동물을 감염시킬 기회가 많아질수록, 인간 간 전파를 가능하게 하는 유전적 변이 발생 확률이 높아진다"라라고 경고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RNA 바이러스로 돌연변이율이 높으며, 감염이 반복될수록 인간 적응형 변이를 획득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낮지만 실재하는 팬데믹 위험

H5N1이 인간 간 효율적으로 전파되도록 진화할 위험은 현재 낮지만,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현재까지는 감염된 동물과의 밀접한 접촉만이 인간 감염의 주요 원인이다.

FLI의 하더는 "유럽과 미국에서 현재 유행하는 H5N1 변이는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 평가에 따르면 인수공통감염 위험도가 낮다"고 밝혔지만,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표면 단백질, 특히 헤마글루티닌과 뉴라미니다제 유전자의 작은 변화만으로도 숙주 특이성이 바뀔 수 있다.

돼지에서 조류 인플루엔자와 인간 인플루엔자가 동시 감염되면 새로운 팬데믹 변종이 탄생할 수 있다.© Getty Images
돼지에서 조류 인플루엔자와 인간 인플루엔자가 동시 감염되면 새로운 팬데믹 변종이 탄생할 수 있다.© Getty Images

특히 우려되는 것은 돼지를 통한 유전자 재조합인데, 돼지는 조류와 인간의 인플루엔자 수용체를 모두 가지고 있어 '혼합 용기' 역할을 한다. 돼지에서 조류 인플루엔자와 인간 인플루엔자가 동시 감염되면 새로운 팬데믹 변종이 탄생할 수 있다. 전 세계 보건 당국은 특히 생유와 저온살균 처리가 되지 않은 유제품의 섭취를 경고하고 있다. 2024년 캘리포니아주는 H5N1 감염 위험을 고려하여 저온살균 처리가 되지 않은 유제품 소비에 대한 예방 조치를 시행했다.

 

식량 안보와 생태계 위협

가장 큰 문제는 대규모 살처분은 식량 공급망에 직접적 충격을 준다는 점이다. 앞선 설명처럼 독일, 네덜란드에서만도 수십만 마리의 가금류 도태로 계란과 닭고기 공급이 급감했는데, 메릴랜드 대학교의 크리스틴 콜먼은 이러한 상황은 분명히 우리의 식량 공급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경고하며, 미국의 경우 추수감사절 시즌에 칠면조 공급 부족으로 소비자들이 높은 가격을 감수해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살처분과 같은 강력한 방역 조치는 단기적으로 식량 가격 상승과 경제적 손실을 초래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큰 발생과 잠재적 인간 팬데믹을 예방하기 위한 필수적 투자인 셈이다. © Getty Images
살처분과 같은 강력한 방역 조치는 단기적으로 식량 가격 상승과 경제적 손실을 초래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큰 발생과 잠재적 인간 팬데믹을 예방하기 위한 필수적 투자인 셈이다. © Getty Images

물론 살처분은 현재 가장 효과적인 방역 조치이다. 살처분이 질병이 다른 농장, 야생 조류, 다른 포유류로 확산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살처분과 같은 강력한 방역 조치는 단기적으로 식량 가격 상승과 경제적 손실을 초래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살처분의 더 큰 발생과 잠재적 인간 팬데믹을 예방하기 위한 필수적 투자인 셈이다. 철새의 이동 경로를 따라 전 세계가 연결된 지금, 보건 당국, 농업 종사자, 일반 시민 모두의 경계와 협력이 이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열쇠이다.

김민재 리포터
minjae.gaspar.kim@gmail.com
저작권자 2025-11-2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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