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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 위기의 노인들에게 찾아온 빛, 2mm 칩이 시력을 되살리다 눈 속에 들어간 작은 컴퓨터, PRIMA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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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 위기의 노인들에게 찾아온 빛, 2mm 칩이 시력을 되살리다

매일 아침 신문을 읽고, 사랑스러운 손주들의 얼굴을 보며,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펼치는 일상. 많은 이들에게 당연한 이 순간들이, 노인성 황반변성 (Age-related Macular Degeneration, AMD) 환자들에게는 불가능한 꿈이 되어버린다.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최소 500만 명이 이 질환으로 시력을 잃고 있으며, 고령화 사회가 심화되면서 그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세계보건기구(WHO)는 2050년까지 전 세계 60세 이상 인구가 20억 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는데, 이는 AMD 환자 수도 급증할 것임을 의미한다. 

황반은 망막의 중심부로 글자를 읽고 얼굴을 알아보는 중심 시력을 담당한다. AMD는 나이가 들면서 이 황반이 점진적으로 퇴화하여 중심 시력을 잃게 만드는 질환이다. 주변 시야는 남아있지만 정작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현재까지 AMD의 진행을 늦추는 치료법은 있었지만, 이미 손상된 시력을 회복시키는 방법은 없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50년까지 전 세계 60세 이상 인구가 20억 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는데, 이는 AMD 환자 수도 급증할 것임을 의미한다. © Getty Images
세계보건기구(WHO)는 2050년까지 전 세계 60세 이상 인구가 20억 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는데, 이는 AMD 환자 수도 급증할 것임을 의미한다. © Getty Images

그리고 최근 미국, 독일, 영국, 네덜란드, 이탈리아 5개국 13개 기관에서 진행된 대규모 임상시험에서 80% 이상의 AMD 환자들이 중심 시력을 회복했다는 결과가 알려지면서 손톱보다 작은 칩 하나가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결과에 따르면, 1년간의 모니터링 결과, 환자들은 집에서 숫자와 단어를 읽을 수 있게 되었으며, 표준 시력 검사표에서 25개 문자, 즉 5줄을 더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50세 이상의 대다수 참가자들이 정상 시력(20/20)의 절반 수준까지 시력을 회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본 대학교 안과학과 학과장이자 이번 연구의 책임자인 프랑크 홀츠(Frank Holz) 교수는 일상생활에 중요한 맹목 망막 영역에서 시력이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 처음으로 입증되었다며 "이는 의학사에서 중요한 이정표"라고 밝혔다.

 

눈 속에 들어간 작은 컴퓨터, PRIMA 시스템

PRIMA 시스템은 두 가지 핵심 요소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망막에 이식되는 2mm 크기의 초소형 칩인데, 핀 머리만 한 크기의 이 칩은 손상된 광수용체 세포를 대체한다. 두 번째는 카메라가 장착된 특수 안경이다.

이들의 작동 원리는 안경의 카메라가 외부 시각 정보를 수집하여 환자가 휴대하는 프로세서로 전송하며 시작된다. 프로세서는 이 영상을 선명하게 향상시킨 후 다시 망막 속 칩으로 무선 전송한다. 칩은 받은 정보를 전기 신호로 변환하고, 남아있는 망막 세포들이 이 신호를, 시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한다. 건강한 눈에서 광수용체가 빛을 전기 신호로 바꾸는 과정을, 칩이 대신 수행하는 것이다.

프랑크 홀츠(Frank Holz) 교수는 일상생활에 중요한 맹목 망막 영역에서 시력이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 처음으로 입증되었다며 "이는 의학사에서 중요한 이정표"라고 밝혔다. © Getty Images
프랑크 홀츠(Frank Holz) 교수는 일상생활에 중요한 맹목 망막 영역에서 시력이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 처음으로 입증되었다며 "이는 의학사에서 중요한 이정표"라고 밝혔다. © Getty Images

이 기술의 핵심은 '망막의 일부 세포가 여전히 살아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홀츠 교수는 "칩 앞쪽의 생물학적 배선, 즉 바이오컴퓨터가 여전히 존재해야 한다"며 "망막의 모든 세포가 죽어 있다면 칩은 전혀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플란트는 단지 광수용체를 대체하고 빛을 전기 자극으로 변환하는데, 이것이 바로 자연이 눈의 망막에서 하는 일이다."

PRIMA라는 이름의 이 시스템은 스탠퍼드 대학교의 안과의사 다니엘 팔란커(Daniel Palanker)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피부 아래 배선이 필요 없는 무선 임플란트를 구상했고, 피츠버그 의대의 안과 전문가 호세-알랭 사엘(Jose-Alain Sahel)과 협력하여 기술을 발전시켰다. 두 사람은 2012년 한 학회에서 만났을 때 각자 비슷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별도의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고, 자원을 통합하기로 결정했다.

 

13개 기관이 입증한 효과와 안전성

처음에는 소수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소규모 연구로 시작했지만, 점차 규모를 확대하여 30명 이상이 참여하는 이번 대규모 다국적 임상시험에 이르렀다. 이처럼 여러 국가와 기관에서 동시에 진행한 이유는 규제 당국의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이 복잡한 수술을 한두 명의 숙련된 외과의사만이 아니라, 적절한 훈련을 받은 다양한 안과 의사들이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음을 입증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엘 박사는 이에 대해서 "기술이 한두 명의 매우 숙련된 외과의사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환자들이 혜택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었다"라고 전했다. 13개 기관의 여러 외과의사들이 일관된 결과를 보였다는 것은, 이 기술을 더 많은 센터와 환자들에게 보급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는 결코 쉬운 수술이 아니다. 망막이라는 매우 섬세한 조직에 2mm 크기의 칩을 정확히 이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 Getty Images
하지만 이는 결코 쉬운 수술이 아니다. 망막이라는 매우 섬세한 조직에 2mm 크기의 칩을 정확히 이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 Getty Images

가장 중요한 사항으로 임상시험 기간 일부 환자에서 부작용이 보고되었으나, 12개월 연구 기간이 끝날 무렵에는 모두 해소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수술의 안전성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물론 연구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2024년 PRIMA를 개발하던 회사가 파산 위기에 처하면서 모든 것이 무너질 뻔했기 때문인데, 사엘 박사는 "연구가 거의 완료될 무렵 모든 것이 무너질 뻔했던 날들을 생생히 기억한다"라고 소회를 전하며 "효과가 입증된 제품이 있는데도 사람들에게 전달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 올 뻔했다"고 회상했다. 다행히 미국의 사이언스 코퍼레이션(Science Corporation)이 개발사를 인수하면서 기술 개발과 상용화가 이어질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이 회사는 미국 식품의약청(FDA)의 의료 치료제 승인과 유럽 CE 인증을 신청하는 중이다. 여러 국가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한 것이 양 지역에서의 승인 과정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복잡한 수술과 긴 재활, 넘어야 할 산들

PRIMA 시스템이 혁신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여전히 극복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 가장 큰 장벽은 수술의 복잡성인데, 이에 대해서 사엘 박사는 "매우 복잡한 수술이며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한다. 예를 들면, 여러 외과의사가 성공적으로 칩 이식 수술을 수행했지만, 이는 결코 쉬운 수술이 아니다. 망막이라는 매우 섬세한 조직에 2mm 크기의 칩을 정확히 이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환자 적합성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우선 망막의 일부 세포가 살아있어야 칩이 작동할 수 있다. AMD가 너무 진행되어 망막 세포 대부분이 손상된 환자에게는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

또한 수술 후 약 12개월간의 재활 프로그램이 필수적이다. 환자는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하여 사후 관리를 받아야 하며, 카메라와 프로세서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이는 단순히 장비를 켜고 끄는 것이 아니라,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새로운 방식에 뇌가 적응하도록 훈련하는 과정이다. 홀츠 교수는 임플란트를 받은 환자가 "지속적인 수술 후 관리를 받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하며, 훈련을 통해 임플란트를 성공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기간 가정에서도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환자가 혼자 살거나 가족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경우, 재활 과정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환자의 생활 환경과 지원 체계가 치료 성공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마지막으로 큰 비용 문제도 있다. 아직 정확한 치료 비용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복잡한 수술과 긴 재활 기간, 그리고 특수 장비의 비용을 고려하면 상당한 경제적 부담이 예상된다. FDA와 유럽 규제 기관의 승인 후 보험 적용 여부가 기술의 실질적 보급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RIMA 시스템이 제시하는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이는 단순히 시력 수치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AMD 환자들의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중심 시력을 잃은 환자들은 주변 시야는 남아있지만 정작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없다는 극심한 좌절감을 경험하는데, PRIMA 시스템은 이들에게 다시 세상의 중심을 볼 수 있는 능력을 돌려줄 수 있다. 

앞으로 기술이 더 발전하고, 수술 방법이 간소화되며, 재활 기간이 단축되고, 비용이 감소한다면, 더 많은 환자가 이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PRIMA 시스템이 성공하면, 비슷한 원리를 망막색소변성증이나 당뇨망막병증 등 다른 망막 질환에도 적용할 가능성이 열린다. 즉, 다른 실명 질환 환자들에게도 희망의 문이 열릴 수 있는 것이다. 

김민재 리포터
minjae.gaspar.kim@gmail.com
저작권자 2025-11-0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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